3D프린팅, 21세기 대중의 연금술

일반입력 :2013/05/17 07:33    수정: 2013/05/18 13:30

일반인들 사이에서 확산중인 3D프린팅 기술이 최근 유용성에 대한 전망보다는 잠재적 위험과 사회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연금술처럼 3D프린팅 기술 저변 확대도 일각의 우려섞인 전망으로 가로막힐 가능성이 불거진다.

중세 연금술은 13세기 유럽에 유입돼 16세기까지 유행했다.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에 근거했다. 모든 물질이 물, 공기, 불, 흙, 4가지의 조합이며 단지 그 구성비만 알면 원하는 물질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통용됐다. 연금술을 익힌 중세인들은 불로장생약과 비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법을 찾는 데 애썼다.

당시 권력층이 모여 있던 주류 대학이나 가톨릭 교회에선 연금술 확산을 막으려 했다. 이들 눈에 연금술은 손을 쓰는 천한 일에 불과했고 종교에 반하는 신비주의적 요소도 다분했다. 싸구려 소재로 귀금속을 만들 수 있다고 대중을 현혹하고 사행성을 부추기는 행위였다. 여러 문제로 권력의 탄압 대상이었지만 그 대중적 인기는 지속됐다. 연금술 실험의 주재료인 수은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적잖았던 것은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다.

연금술 탄압이 본격화된 시점은 1317년 교황 요한22세가 내린 교서로 그 학습을 금지하면서부터다. 그 배경에 대해 일각에선 14세기 유럽에는 가톨릭의 종교적 문화가 확고히 자리잡고 있었으며, 연금술에 잠재된 신비주의나 사행성이 사람들에게 해로울 것을 우려했던 탓이라 풀이한다.

■3D프린팅, 21세기판 연금술

이달초 일반인들도 총기 제작이 가능함을 증명한 3D프린팅을 21세기판 연금술에 빗댈 만하다. 3D프린팅이란 말 그대로 평면이 아니라 입체적인 형상을 '프린트'할 수 있는 기술이다. 3D디지털 설계도와 플라스틱 소재를 통해 물건을 만들 수 있다. 몇년간의 태동기를 지나 최근 대중화 시기를 맞은 3D프린팅 기술을 놓고 산업계가 그리는 장밋빛 기대와, 정부 당국이나 법조계 등이 제기하는 우려와 경고가 나란히 쏟아졌다.

최근 미국 연방정부가 호주서 '해방자'란 이름으로 공개된 플라스틱권총 설계도면 배포를 금지시킨 게 대표사례다. 미 정부 조치는 해당 권총이 금속탐지기에 걸리도록 일부러 집어넣은 소재 외엔 플라스틱으로만 만들어졌는데 실탄 발사까지 가능해 테러 등에 악용될 우려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미 1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뒤였다.

이에 미국처럼 3D프린팅을 통해 어떤 물건을 만드는 시도나 그 설계도를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 디지털 정보유통을 막는 시도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콘텐츠업계의 교훈에 비춰볼 때 단순한 배포금지 이상의 규제도 나타날 수 있다.

아직 3D프린팅 기술은 소재, 정밀성, 가격 등에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일반인도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의 저가 장비와 재료가 출시되는 추세다. 고화질사진이나 2D 정밀인쇄를 필요로하는 전문가용으로 제작됐던 고성능 잉크젯프린터가 이제 일반 가정용으로 판매된다. 3D프린터로 다양한 소재로 된 미세한 물건을 제작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지금은 장식용 공예품, 플라스틱 식기나 컵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지만 총기 사례처럼 응용하면 가습기, 열쇠,크고 복잡한 물건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충분하다. 배양된 세포를 프린팅 재료로 삼아 인공장기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중이다.

■불법복제, '디지털' 밖으로

이렇게 3D프린팅 기술이 고도화되면 소설 '프린트범죄(Printcrime)'에서처럼 일용품을 만드는 것조차 범죄가 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를테면 비싼 특허 로열티를 매겨 파는 조제약들의 상품가치가 직접적으로 위협받는다. 제약회사의 특허권 침해 가능성때문에 불법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특정 사업의 기반이 3D프린팅으로 위협당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그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도 커질 수밖에 없다.

고도화된 3D프린팅 기술이 구현된 사회에서 권력기관이 이를 규제할 때 일어남직한 일을 상상한 소설이 있다. 비영리단체 전자프론티어재단(EFF) 소속 활동가로 알려진 캐나다 출신 SF소설작가 코리 닥터로우 씨의 2006년1월 발표작 프린트범죄다. 오늘날은 소프트웨어(SW)나 디지털콘텐츠만이 불법복제의 대상이지만, 3D프린팅 기술이 고도화된 세계에서는 모든 사물이 복제배포될 수 있다는 상상에서 소설은 출발한다.

프린트범죄의 주인공은 화자 레니의 아빠다. 그는 3D프린팅 기술로 노트북이나 믹서 또는 모자같은 것을 만들어 쓰다가 감옥신세를 진다. 3D프린터로 뭔가 만들어 쓰고 나눠주는 일이 소설 속 세계에선 '불법제조행위'라 표현되는, 수감생활 10년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그는 자식이 8세 되던 해에 집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끌려간뒤 18세가 됐을 무렵 노쇠한 몸으로 풀려난다.

소설 속에서 레니의 아빠가 저질렀다는 불법제조 행위가 금지된 까닭은 불분명하지만 믹서기나 모자를 위험물이라 보기는 어렵다. 디지털파일로 유통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 복제가 불법인 것처럼 해당 물건을 만들어 파는 입장에서 이익을 침해당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 보는 게 알맞다.

과거 유럽서 중세 연금술을 금지했던 배경도 실은 '돈 문제'라는 분석이 있다. 역사학자 윌리엄 뉴먼 씨는 지난 1989년 '중세 말 기술 및 연금술 논쟁'이란 저술에서 이 (연금술 학습을 금지한) 교황령은 가짜로 연금(artificial gold)을 제조하는 연금술사들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데, 순전히 재정적 이유에서였다고 지적했다.

뉴먼 씨는 이어 연금술이든 또는 다른 방법으로든, 위조로 동전을 주조하여 발생하는 가치절하가 중세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며 즉 여기(가톨릭의 연금술 탄압)에는 이론적 정당성이 희박했다고 설명했다. 탄압 이유가 학계와 교계의 정신을 더럽혀서가 아니라 권력자가 경제적 혼란에 따른 재정불안을 우려해 내린 조치라는 풀이다.

■3D프린팅의 가능성

어찌 보면 연금술은 돌밭 깊이 보물을 숨겼다는 농부의 유언을 철썩같이 믿은 아들들이 별 소득 없이 구덩이를 실컷 파헤친 끝에 포도를 심어 큰 수확을 거뒀다는 우화의 중세판이었다. 당대 사이비과학에 불과했던 중세 연금술은 18세기 후반 출현한 근대 화학의 전신으로도 평가된다. 연금술사들이 진짜 금이나 불로장생약을 만들진 못했지만 유용한 물질을 만드는 화학적 방법을 찾아낸 덕이다.

앞으로 높은 수준으로 발전된 3D프린팅이 일상화되면 제조와 유통을 정부가 관리해온 다른 물건의 성분표나 제조법이 SW복제와 같은 방식으로 규제될 수 있다. 앞서 미 정부가 디지털 파일 형태로 돌아다닐 수 있는 권총 설계도 배포를 금지한 이유도 위험성보다는 '등록제'인 현행 총기 규제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란 진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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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팅을 둘러싼 일각의 우려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규제가 생기더라도 ▲소비자가 직접 기계장치의 구동부품을 만들어 제조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제조 혁신 ▲웬만한 소규모 물품은 아예 생산하지 않고 '전송'해버리는 물류 혁신 ▲의료현장에서 당장 필요한 인공장기나 의약품을 직접 조달하는 의료 혁신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보장돼야 할 듯하다.

사실 프린트범죄 내용의 결말은 레니의 아빠가 과거를 후회하고 다시는 3D프린터로 뭔가를 만들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모든 이들에게 1대씩 돌아갈 정도로 더 많은 (3D)프린터를 프린트하겠다면서 그건 감옥에 갈만한 일이고 어떤 일보다도 가치있는 일이라고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