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전문 출판사의 스무살, 전자책을 말하다

김태헌 한빛미디어 대표

일반입력 :2013/04/11 08:21    수정: 2013/04/11 08:26

국내서 전자책 뉴스라곤 디지털에 기반한 '상호작용' 그리고 무슨 기능을 탑재해 얼마에 판다는 '단말기' 얘기 뿐이었다. 얼마 내면 몇권씩 볼 수 있다는 '물량공세' 외에 콘텐츠로 주목받은 전자책 얘기는 드물다. 다소 보수적인 출판사업의 속성과 IT, 콘텐츠, 유통업계 첨단에 있는 전자책이 어우러지기엔 시기상조인 까닭이다.

아직 전자책을 둘러싼 논의에서 '책 만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출판사가 IT를 좀 안다면 다르지 않을까. 지난해부터 전자책전용콘텐츠 서비스를 시작한 IT전문도서 출판사 한빛미디어의 김태헌 대표를 만나 이를 추진한 동기와 관련 현황, 비전을 들어봤다.

한빛미디어는 공식사이트에 종이책과 구별해 '이북(eBook)'이라는 전자책 소개란을 따로 뒀다. PDF파일 또는 전자책 표준형식인 이펍(ePub)으로 유무료 콘텐츠를 제공한다. 회사는 지난해 디지털 형태로만 제공되는 전자책서비스 '리얼타임'을 내놨다. 전자책에 알맞은 콘텐츠와 그 특성을 살린 형식을 고민해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IT만큼 민첩한 콘텐츠

리얼타임을 시작하는데에는 시장확대를 유도할 의지와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 2가지 모두 작용했죠. 선도업체가 될 욕심도 있었고, 사업적 가능성도 기대했어요. 실무적으로는 IT분야 내용으로 종이책을 기획, 집필, 출판하는 과정에서 한계를 느낀 부분들을 극복할 수 있겠다 싶었고요.

IT분야 변화는 종이책에 담아내기엔 너무 빠르다. 기술전문가들의 이슈와 관심사도, 사실관계도 금세 바뀐다. 전문가들이 최신동향에 맞춰 이를 담아내기엔 '수백페이지' 분량의 집필과 출간 과정이 부담된다. 저자가 될 고급개발자가 기술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2~3시간 정도로 강연하는 주제를 '불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빛미디어의 리얼타임과 같은 전자책은 일단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분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종이책과 같은 '기승전결'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본론만 다루면 된다. 짧으면 교정과 편집 등 제작기간도 준다. 출간 이후 최신 내용을 반영하기도 좋다.

종이책의 4분의1~3분의1 분량 정도로 핵심만 딱 모아서 가자, 이러면 쓰는 사람도 편하고 교정, 편집, 제작하는 기간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종이책에서 최소분량을 수백페이지로 잡는 이유는 유통 차원의 이슈도 있어요. 시집 아니면 수십쪽짜리 책이 없잖아요. 디지털환경에선 그런 제약도 없죠. IT전문 출판사다 보니 디지털 파일 형태가 개발자 비중이 높은 독자들에게 친숙한 형식이기도 해요.

김 대표는 전자책 출판이 콘텐츠 수요층이나 공급자 입장에서 종이책에 비해 분명한 장점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실무자들에게는 종이가 아니라 디지털파일에 놓일 정보를 구성하는 일이 낯선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독자를 이해하기

일례로 인쇄할 종이책의 판형을 그대로 디지털로 옮기면 되는 듯 여겨질 수도 있지만 많이 다르단다. 확대나 축소 없이 PC 모니터나 태블릿 단말기 한 화면에 적정비율로 표시되게 만드는 것도 만만찮은 작업이란 얘기다. 교보문고같은 대형 유통업체가 대량으로 내놓은 전자책의 품질에 실망한 독자반응을 보면 앞으로 더 중시될 노력이다.

우리 책은 (다른 전자책 콘텐츠와 달리) 아이패드같은 모바일기기보다 오히려 PC에서 보는 경우가 더 많아요. 개발자들이 모니터에 참고자료 띄워놓고 프로그래밍하는 경우를 고려했어요. 오히려 모바일기기로 보려면 화면비율이나 페이지 넘기는 게 좀 불편할 수도 있어요.

리얼타임처럼 IT업계에 적합한 콘텐츠를 전문으로 다루려면 사용자 편의성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디지털저작권관리(DRM) 기능도 걸지 않았다. 협력관계 없이 한빛미디어에서 독자 운영하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한빛미디어도 DRM이 걸린 전자책을 팔긴 한다. 한국출판콘텐츠협회(KPC)를 통해 교보 등으로 유통시키는 콘텐츠다.

이는 종이책을 이펍형식의 전자책으로 변환한 것이다. 다루는 콘텐츠나 대상 독자 등에서 리얼타임과 차이를 둔다. 사실 KPC를 통한 전자책은 DRM 자체에 대한 문제, 시장활성화와 수익성 및 수수료율 등 해결할 문제가 많아 출판사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진 못한 상황이다. 리얼타임은 매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매출은 아직 투자규모를 못 넘겼어요. 불법복제 유통이 꽤 많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죠. PDF파일같은 경우는 1명이 사서 여러사람이 카피해 볼 수 있으니까요. 라이선스 추적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소프트웨어(SW)처럼 정교하진 않죠. 그래도 (DRM 걸지 않은 이유는) 공급자의 이슈 때문에 독자에게 불편을 떠넘길 순 없으니까요.

■전자책 가격과 시장 인식

가격에 대한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유통업체들이 종이책 데이터를 전자책으로 자동변환한 저품질 콘텐츠로 저가 물량공세에 나서면서 일부 독자 사이에선 가격거품이 있다는 인식이 형성될 조짐을 보인다. 하지만 도서제작 원가 대부분이 콘텐츠 편집활동의 인건비라는 사실은 디지털 환경이라고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비쌀 근거가 많다.

내용을 변환하는 경우가 아니라 새로 만든 전자책의 원가는 사실 종이책과 마찬가지죠. 편집자 인건비, 저자 인세는 그대로고, 빠지는 비용은 인쇄와 물류에 드는 비용인데, 그 비중이 책값에서 많게 잡아도 20%예요. 전자책을 종이책 만들듯 하면 그 75~80%로 파는 게 적당하겠죠. 소비자가 기대하는 비율은 종이책 60% 정도로 더 낮아요.

전자책 가격의 적정성에 대한 문제는 신간과 구간 등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좀더 복잡하다. 이미 손익분기를 넘긴 구간 종이책의 경우 전자책을 2차매출 창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 경우 저자 인세 등 원가에 대한 부담이 줄어 더 싸질 수 있다. 전자책 신간의 경우 저자가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카피당 인세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김 대표는 3년정도 지나야 리얼타임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한다. 담당자들이 업무에 숙달되면 편집과 가독성 높이기 등 실무적인 효율성도 늘어나고, 그럼 출간 종수도 늘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DRM같은 기술적 조치보다는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주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도록 콘텐츠 품질에 전념할 계획이다.

지금은 매출보다 종수 늘리기가 관건이에요. 콘텐츠 수요는 충분하다고 믿어요. 서비스의 장점을 보여주면 시장이 알아줄 것 같아요. 앞으로 편집자들이 원고, 적합한 주제, 알맞은 저자를 더 잘 찾아야겠고요. 지금처럼 디지털콘텐츠에 특화된 가독성 높은 활자크기 삽화, 기타 서비스요소 개선에 대한 연구도 계속하고요. 유통방식도 지금은 단순 파일배포인데 나중엔 더 나은 방식이 나올 거라 기대하고요. 지금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전자책 전용 콘텐츠 연 50권씩

회사는 연간 종이책 120종, 리얼타임에 50종 출간을 목표삼았다. 1권을 1명씩 담당했던게 일반적인 방식이라면, 출간도서 10% 정도는 1권과 그 저자를 여러 편집자가 맡아 품질을 높이는 방식의 사업도 실험적으로 진행중이다. 독자반응과 내부 평가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단다.

사실 김 대표는 리얼타임 서비스에 대한 구상을 꽤 오래 전부터 해왔다고 한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는데 서비스는 애매하게 지난해부터 시작했고, 올해는 20주년이라고 뭔가 내세우지도 않아 다소 뜻밖이다. 김 대표의 출판사는 갓 시작한 전자책 사업으로 대단한 기념비를 세우는 대신 정직한 이정표를 새기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회사는 오는 2023년까지 향후 10년을 바라보고 갈 방향과 실행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사내 IT 전공 인력들의 전문성과 경쟁력으로 리얼타임 서비스를 강화하고 '리더스클럽'같은 독자와의 소통 노력도 이어갈 방침이다. 서비스를 위한 노하우를 더 발굴해 IT를 넘어 다양한 콘텐츠를 전자책으로 제공할 계획도 있다.

숫자로 표현하면 지난해 목표한 걸 90%정도 이뤘어요. 올해 2분기중에 10년뒤, 2023년에 어떤 회사가 되겠다는 점을 다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전자책도, 산업환경이 젊은층의 소비성향을 따라 IT쪽으로 바뀌어가니까 기본적으론 맞는 방향이고 개발이나 서비스 측면에서 어떻게 잘 풀어갈지가 관건이겠고요. 독자가 지식과 아이디어를 얻고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출판업의 근본 요소는 같은 거죠.

김 대표는 최신 내용을 빠르게 제공받길 원하는 수요에 대응한, 아직은 종이책에 가까운 전자책을 좀더 발전시키면 종이 형태로 불가능한 멀티미디어와 양방향 콘텐츠 쪽으로 확장될 것이라 예상한다. 그렇다고 전자책이 종이책을 아예 대체하리라 보진 않는다. 옛날 '운동화'가 지금은 조깅화, 등산화, 농구화, 축구화 등으로 나뉘었지만 결국 신발매장에 가면 다 있듯이 종이책과 다양한 전자책이 나올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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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의 출판업계 경력은 지난 1989년 두산동아에서 시작됐다. 편집부 뉴미디어팀에서 4년을 일했다. PC에 CD롬 드라이브가 기본 장착될 것인가가 업계 화두였고, 백과사전이 CD롬 2장에 담긴다는 얘기가 일반인들의 주목을 끌 때였다.

그는 1993년 퇴사후 한빛미디어를 차렸다. 1997년 개발자서적으로 유명한 외국 출판사 오라일리의 한국파트너계약 체결했다. 1999년엔 웹사이트를 열었다. 지난해 DRM없는 전자책서비스 리얼타임을 시작했고 지난 1월 한빛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지난 2월부터 한국출판인회의 전자출판위원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