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로 쏘아올린 나침반, GPS⑦스푸트니크 추적자

일반입력 :2013/04/22 00:20    수정: 2013/09/10 13:53

이재구 기자

7■스푸트니크를 쫓은 사나이들

“왜 아무도 스푸트니크호의 위성신호를 잡으려 하지 않지?”

소련이 세계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다음 날은 월요일이었다.

두 젊은이는 점심을 먹기 위해 카페에 모여 식사를 하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이들이 참여한 응용물리학연구소(APL) 내 소그룹의 임무는 전쟁 수행과 연관된 문제 해결에 수학과 과학을 적용해 푸는 것이었다.

프랭크 맥클뤼어(Frank McClure)소장이 이끄는 존스홉킨스대 부설 연구소의 연구분위기는 미소 냉전시대의 분위기만큼이나 냉랭하고 긴장된 바로 그것이었다. APL은 텅 비어있었다..

“스푸트니크가 지나가면서 보내는 신호를 들었어?”식사를 하던 중 조지 와이펜바흐가 말을 건넸다.

소련 국영 라디오방송의 스푸트니크 발사소식은 군대의 무선병들은 물론 전세계의 수많은 아마추어무선사들에게 하룻 밤새 그들의 무선장비를 40MHz의 주파수 수신용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10월 6일 일요일 밤. 두사람역시 도플러방식의 위성추적장비를 만들고 그들의 무선장비를 수정하면서 보냈다.

두 젊은 연구원은 이 인류최초의 인공위성에 대해 얘기를 하면 할수록 그 신호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갔다.

마이크로파 분광학 연구논문으로 학위를 받은 조지 와이펜바흐박사는 스푸트니크의 신호를 받을 수 있는 핵심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그에겐 아주 훌륭한 200MHz 수신기도 있었다.

게다가 이들의 연구소는 미국 표준국(Bureau of Standard) 단파기지국(WWV)에서 12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기지국은 최적의 시간 표준 및 방송용 단파를 쏘아주고 있었다. 스푸트니크에서 오는 전파를 수신하기 위한 안테나를 만드는데 60cm의 전선이면 충분했다.

이 기지국을 이용하는 200MHz대역 수신기는 마이크로 분광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엄청난 비교값(레퍼런스)를 제공했다.

스푸트니크는 지구를 96분마다 한바퀴씩 돌고 있었다. 무게 83.6kg짜리의 이 농구공만한 위성의 속도는 시속 2만9천km로 약 한시간 36분만에 지구를 한바퀴 돌았다. 하루에 지구를 7번이나 돌고 있었다.

“위성 신호음이 궤도를 도는 동안 전혀 죽지 않고 지속되고 있어.”

소련과학자들은 인류 최초로 쏘아올린 스푸트니크 위성의 주파수를 정확히 20MHz에서 1kHz까지 사이로 설정해 놓고 있었다. 따라서 어떤 수신기로도 스푸트니크가 궤도비행을 하면서 기지국에 가까이 올 때와 멀어질 때마다 들려오는 1KHz 내외의 신호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신호음을 어디엔가에 녹음해야겠어.”

7일 오후 늦게 조지 와이펜바흐가 말했다.

이들의 이런 계획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방에 들렀다. 두 사람은 더욱 더 신나서 스푸트니크 위성 신호 수신에 전력을 기울였다. 와이펜바흐는 이날 신호 대 잡음비를 향상시키려 애쓴 결과 녹음용 표준 오디오앰프 수준에 이르는 출력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윌리엄 귀에르도 덩달아 “내가 새로 산 고성능 오디오 테이프레코더를 연구소로 가져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녹음할 수 있게 만들겠어”라고 말했다. 이 날 저녁 그역시 20MHz주파수상에서 변조없이 스푸트니크가 수평선에서 올라와 수평선 저편으로 질 때까지 완벽한 신호를 받아 녹음할 수 있었다.

뱅가드위성 발사에 대비해 궤도추적을 준비중이던 해군연구소 인공위성추적시스템 미니트랙을 운영하는 팀은 이미 시스템을 40MHz전파수신에 적합하도록 수정했다. 40MHz 교차파는 즉각 미 동부 메릴랜드주 블라섬포인트, 서남부 샌디에이고, 페루의 리마, 그리고 칠레의 산티아고와 호주 우메라기지국 등에도 인스톨됐다. 몇 일이 지나자 훌륭한 추적데이터가 수신되기 시작했다. 이로써 미국은 인류최초의 인공위성발사에는 늦었지만 스푸트니크1,2를 통해 아주 훌륭한 지상기지국 기반의 위성 추적 시스템 운전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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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달 후인 이듬 해 1월 미국위성 익스플로러(1958.1.29.)와 뱅가드(1958.3.17.)가 발사됐을 때 미니트랙은 이 위성을 손쉽게 추적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외에도 해군연구소에서 다양한 전쟁연구 프로젝트를 돕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새 참여한 GPS위성의 창세기를 쓰는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