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하늘로 쏘아올린 나침반,GPS ⑥스푸트니크 쇼크

일반입력 :2013/04/21 00:24    수정: 2013/04/23 11:01

이재구 기자

6■스푸트니크 쇼크

1957년 10월 4일 소련 국영통신사 타스(TACC)는 전세계 언론에 다음과 같이 타전했다.

“지구(궤도를)도는 인공위성의 창조를 위한 과학적 연구실험 설계작업이 지난 수년간 소련에서 수행됐습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대로 소련에서 국제지구관측년(International Geophysical Year IGY)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과학연구소와 설계국의 매우 강도 높은 작업 결과 세계최초의 인공위성이 만들어졌습니다. 1957년 10월 4일 소련에서 최초의 인공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됐습니다...현재 지구를 도는 이 위성은 타원궤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성의 비행은 태양이 뜰 때와 질 때 생기는 빛의 도움을 받아 매우 간단한 광학기구(쌍안경, 망원경 등)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직접적인 관찰에 의해 보완된 계산에 따르면 이 위성은 지구표면 900km상의 고도에서 돌게 될 것이며 위성의 완전한 혁명을 위한 시간은 1시간 35분이 될 것입니다...10월5일 위성은 모스크바지역(상공)을 오전 1시46분과 오전 6시 42분 두차례 걸쳐 지나갈 것입니다. 10월4일 소련에서 발사된 인류최초의 인공위성에 대한 후속 움직임에 대한 보도는 정규적으로 방송국을 통해 발표될 것입니다....하나의 주파수가 보내지는 동안 다른 신호는 쉽니다. 위성은 원 형태로서 지름 58센터미터에 무게 83.6kg입니다. 여기엔 매초 20.005메가사이클(MHz)과 40.002메가사이클의 주파수를 지속적으로 쏘아내는 주파수송신기가 장착돼 있습니다.(파장 길이는 각각 (15미터와 7.5미터입니다.) 송신기의 전력은 광범위한 아마추어 무선사들에게 믿을 만한 신호 수신을 보장할 것입니다. 이 주파수 발신음은 0.3초씩 지속됩니다...이들 후속 위성들은 더 커지고 무거워지며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인공 지구궤도 위성은 행성간 여행의 길을 놓아 우리 동시대 사람들이 새로운 사회주의자 사회 인민의 자유롭고 양심적인 노동이 어떻게 가장 대담한 인류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지를 목격하게 할 것입니다.”

서방세계는 쇼크에 빠졌다. 언제 농업국가 소련이 이처럼 고도의 우주기술을 확보해 미국보다 앞서 발사할 수준까지 올라섰단 말인가? 특히 미국의 정치권과 과학계는 충격에 빠졌다. 대륙간탄도탄(ICBM)까지 만든 소련이 이 위성으로 미국본토 위로 핵탄두라도 떨어뜨린다면?

뉴욕타임스(NYT)는 이튿날인 5일 다음과 같은 전단짜리 3줄 제목으로 소련의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의 지구궤도발사 성공의 놀라움을 표시했다.

소련, 지구궤도 위성 우주로 발사

시속 1만8천마일속도로 지구 선회 ;

미국상공 하루 4번씩 지나쳐

(SOVIET FIRES EARTH SATELLITE INTO SPACE

IT IS CIRCLING THE GLOBE AT 18,000 M.P.H.;

SPHERE TRACKED IN 4 CROSSING OVER U.S.)

발사 수시간 만에 NYT는 “스푸트니크는 여행의 동반자라는 의미라고 보도했다.또 여행자는 지구이며, 우주를 여행하고 있고, 그 동반자는 위성”이라고 전하고 있었다.

서방세계 특히 미국정부와 의회, 그리고 미국민들은 어떻게 소련이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는지 자체부터가 쇼크였다. 여행자니 동반자니 하는 것은 소련쪽 얘기였다. 미국중심의 서방세계국가들에게 스푸트니크는 핵을 장착하고 지구궤도로 올라가 미국 상공에서 핵을 터뜨릴 수도 있는 위험한 존재였다. 미국과 서방세계는 그야말로 핵공포에 떨고 있었다. 전미국, 아니 친서방국가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정치권과 언론은 미국 과학자들을 비난했다.

소련공산당 서기장 후루시초프는 전세계에 그들이 국제지구관측년을 기념한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소련의 선구적 우주과학자 코롤로프는 전세계 아마추어무선사들이 스푸트니크 신호를 잡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스푸트니크1은 아마추어무선주파수밴드인 20MHz와 40MHz 주파수 신호를 쏘아보내고 있었다. 전세계 사람들, 그리고 아무추어무선사(HAM)들은 이 신호를 듣고 소련의 세계 첫 인공위성의 신호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었다. 소련지도부가 기대한 것이상으로 서방세계는 경악과 공포에 휩싸였고 소련 당서기장 후르시초프는 만족스러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푸트니크쇼크에 빠졌다. 어딜가나 냉전과 국제지구관측년과의 연관성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딜 가나 그랬다. 그러나 냉정한 과학자들에게 스푸트니크는 어디까지나 과학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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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미 동부 메릴랜드주 로럴시의 한연구소에 있던 두 젊은이에게도 그랬다.

이들은 스푸트니크 지구궤도 위성을 또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미 존스홉킨스대 부설 응용물리학연구소(APL)의 연구원 생활 6년째인 조지 C. 와이펜바흐(George C. Weiffenbach)와 윌리엄 H. 귀에르(William H.Guier)박사가 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