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부, 지각 출범…“ICT는 난도질”

일반입력 :2013/03/18 13:58    수정: 2013/03/18 17:28

정윤희 기자

“ICT 잃어버린 5년이요? 오히려 더 후퇴하게 생겼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진통 끝에 출범하지만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ICT 업계에서는 탄생 과정에서부터 정쟁과 부처 이기주의에 얼룩진 미래부가 제대로 된 ICT 컨트롤타워 노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다.

여야가 17일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극적으로 타결했지만 당초 ICT 핵심 정책으로 꼽혔던 주파수, 개인정보보호 등이 부처별로 찢어졌다.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흩어졌던 ICT 기능도 다 가져오지 못했다.

ICT 전문가들은 ‘창조경제의 핵심 엔진’이 될 것이라던 미래부는 부처간 힘겨루기에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MB정부 시절 4개 부처로 흩어진 ICT가 오히려 5개, 6개 이상(부처, 위원회 포함)으로 쪼개졌다는 지적이다.

문형남 ICT대연합 사무총장(숙명여대 교수)은 “미래부가 할 일은 잃어버린 5년을 부지런히 회복해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더 후퇴하게 생겼다”며 “당초 인수위원회에서 반쪽짜리 호랑이를 그린 것이 잘못된 출발”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주파수 정책 3분할…“정쟁 대상 아냐”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는 것은 주파수 정책이다. 여야는 전파 주파수 관련 기능은 미래부로 이관하는 대신 통신용 주파수 관리는 미래부가, 방송용 주파수 업무는 방통위가 맡도록 했다. 여기에 신규 및 회수 주파수 분배와 재배치는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 주파수심의위원회(가칭)을 설치해 심의키로 했다.

이에 대해 ICT 전문가들은 거센 비판을 내놨다. ‘디지털영토’인 주파수는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주파수 정책 분할은 세계적,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주파수는 방송과 통신용이 따로 구분돼있지 않은데다,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회수, 재배치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담당부처를 분산한 것은 비효율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해외 여러 국가들이 주파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얘기다.

통신업계 고위 관계자는 “방송통신 융합 환경에서 감행한 주파수 정책 분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주파수 회수, 재배치 때마다 여기저기 눈치 볼 곳이 늘어난 셈”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5일 여당 대표단과 회동한 자리에서 “미래부가 주파수 정책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개인정보보호정책을 관리하지 않으면 핵심적인 사업을 하기 어렵다”며 “핵심들이 빠지면 헛 껍데기만 남는 부처가 돼 원래 취지대로 일자리 창출과 새로운 수요를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래부, 방통위-산자부-안행부-문화부와 기싸움?

미래부와 ICT 정책을 나눠 맡은 부처들 간의 기싸움도 우려된다. 당초 미래부가 ICT 전반을 아우르도록 한 박근혜 대통령의 밑그림과는 달리 5개 부처 이상에 ICT 정책이 흩어지게 되면서 각 부처간의 이해관계가 대립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업계에서는 SO를 미래부로 넘겼다고 하더라도, 통신 이용자 보호 업무, 개인정보보호 정책 등이 방통위에 남으면서 미래부와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놨다.

앞서 여야는 SO, 위성방송, DMB 등 뉴미디어 분야의 인허가권과 법령 제개정권을 미래부로 이관하되, 방통위의 동의를 얻도록 했다. 지상파 방송과 채널사업자(PP), 방송광고, 개인정보보호 정책은 방통위에 존치된다.

또 임베디드 소프트웨어(SW)를 끌어안은 산업통상자원부(구 지식경제부)와 전자정부 및 빅데이터 업무를 남긴 안전행정부(구 행정안전부), 게임 및 디지털콘텐츠 R&D 등을 내주지 않은 문화체육관광부와도 업무 중복 및 혼선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미래부가)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서 누더기를 잔뜩 갖춘 모습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미래부를 산뜻하게 출발시켜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 충분히 반영될 수 없음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 역시 “ICT를 찢어놓은 현 상황에서는 누가 장관이 되던 제대로 된 창조경제를 수행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어찌됐든 출발은 했으니 이를 빨리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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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미래부 출범이 늦은 만큼,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조직 세팅과 인사가 마무리 돼야한다는 현실론도 있다. 지난달 25일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정작 핵심인 미래부는 지각 출범해 ICT 업계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동욱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은 “최근 ICT쪽 중견, 중소기업들과 만나 보면 미래부 출범이 지연되면서 올해 사업 및 투자계획을 전혀 세우지 못하고 있더라”며 “사실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아쉬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세팅이 늦어진 만큼 본격적인 업무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