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샤프 손잡자 타이완 배신감에...

일반입력 :2013/03/13 10:44    수정: 2013/03/13 10:45

정현정 기자

삼성전자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샤프에 104억엔(한화 약 1천200억원)을 출자해 지분 3%를 취득하기로 하면서 ‘타도 삼성’을 내세우며 손을 잡으려던 일본과 타이완의 동맹이 흔들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샤프와 혼하이 간 출자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샤프가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의 숙적이었던 삼성에 도움을 청하면서 타이완은 깊은 배신감에 휩싸이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2일 ‘샤프·삼성전자 제휴…무너진 일본·타이완 공동 투쟁’이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와 샤프의 막후 협상 과정을 소개하고 이번 제휴가 한국·일본·타이완 디스플레이 3강 구도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2월13일 일본 오사카 샤프 본사를 찾아 오쿠다 다카시 샤프 사장과 기타야마 미키오 회장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이 먼저 샤프의 10세대 액정표시장치(LCD) 공장인 사카이 공장에 출자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당시 사카이 공장은 혼하이로부터 출자를 받아 공동 운영에 착수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오쿠다 사장과 가타야마 회장은 곤란하다는 의사를 삼성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당시 자리에 배석했던 후지모토 토시히코 이사의 제안으로 샤프 본사에 대한 자본제휴 협상이 시작됐다.

당시 샤프는 2년 연속 큰 폭의 적자가 전망되면서 절박한 상황이었다. 특히 중소형 패널과 TV용 패널을 생산하는 가메야마 제2공장의 경우 공장 가동률이 약 30%까지 저하되면서 경영의 발목을 잡았다. 샤프의 경영을 지탱하던 애플향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아이폰5용 패널을 생산하는 제1공장의 가동률도 문제가 됐다.

그런 샤프에게 삼성은 동아줄과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2월부터 삼성전자향 패널 물량이 증가하면서 제2공장의 삼성전자 32인치 TV용 패널 생산이 증가해 가동률이 약 60%까지 상승했다. 샤프 고위임원이 “삼성전자와의 거래가 무너지면 우리도 무너질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상태였다는 게 니혼게이자이 분석이다.

그 동안 샤프와 출자 협상을 진행해왔던 타이완의 표정은 엇갈렸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자본제휴가 발표됐던 지난 6월 밤 오사카 시내의 한 중화요리점에 모습을 드러낸 궈 타이밍 혼하이 회장은 “삼성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일본 기업은 없었다”고 이야기하면서 불편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냈다.

사전에 양사의 제휴 소식을 전달받은 궈 타이밍 회장은 5일 저녁 예정됐던 오쿠다 사장과 가타야마 회장과의 회담을 직전에 취소했다. 이후 오쿠다 사장의 친필 편지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6일 밤 회식에도 샤프 관계자들을 초대되지 못했다.

샤프와 혼하이는 지난해 3월부터 출자 협상을 진행해왔지만 이후 샤프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경영 관여에 대한 입장이 엇갈리면서 협상은 결렬 수순을 밟고 있던 상황이다. 보도에 따르면 궈 회장의 목적은 샤프와 손을 잡고 LCD TV 등 디지털 제품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궈 회장으로서는 샤프에게 배신당했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한편 양사의 제휴가 샤프 내부에서도 강렬한 거부 반응에 부딪혔던 것도 사실이다. 샤프의 한 고위 임원은 가타야마 회장단으로부터 전후사정을 듣고나서 “삼성에게 출자를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한 거부 반응을 나타냈다고 전해졌다. 일부 사외이사들도 샤프를 역경에 빠뜨린 숙적 삼성전자에게 출자를 받는 것에 반대론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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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당초 약 400억엔의 출자도 제안했다고 알려졌다. 최종 출자금액인 103억엔(발행주식의 약 3%)에 그친 것은 이러한 사내 감정을 배려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의 출자가 발표된 지난 6일 오후 오쿠다 사장은 사내 사이트를 통해 “삼성의 출자가 경영 관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사업 규모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LCD사업의 파워 게임에서 삼성과의 협업을 통해 당사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