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만이 쓰는 인터넷, '공공성을 논하다'

일반입력 :2013/03/13 09:17    수정: 2013/03/13 11:29

전하나 기자

몇 해전 영국 런던에선 ‘픽스 마이 스트리트(우리 길거리 고치기)’ 운동이 일었다. 시민들이 자기가 사는 지역 어딘가에 맨홀 뚜껑이 열려 있거나 가로등이 나가는 등의 문제가 생기면 이를 직접 구글 맵에 표시하는 ‘커뮤니티 맵핑’ 프로젝트였다. 이는 공무원들이 일일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도시 곳곳에 생긴 일들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행정 효율을 가져왔다. 총 3만2천여개의 파인 도로가 고쳐졌다.

서울시에서도 지난해부터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이 같은 실험을 시작했다. 시민들이 포털 다음 지도를 활용해 교통, 생활정보, 각종 시설물 등을 표시하고 실시간으로 건의사항을 올리는 것이다. 다음이 이에 필요한 플랫폼을 운영하고 서울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물을 바로 공유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시민 참여형 서비스가 탄생한 셈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해야 한다는 인터넷의 철학이 공공의 목적을 위한 국가 자원과 결합돼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시민들의 참여가 폐쇄적인 공공부문의 개방을 이끌어내고, 또 공공정보의 공유가 시민들의 협업을 유도하기도 한다.

■공유도시 서울, IT를 통한 행정혁신

서울시는 IT인프라를 이용해 시민들에게 필요한 각종 행정 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예를 들어 실시간 교통·날씨·문화 정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포털, 도시계획 정보와 자료를 공개한 도시계획정보시스템, 납세자가 가정이나 사무실에서도 지방세를 납부할 수 있는 지방세 납부시스템, 재정업무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가 공공기관 최초로 만든 클린재정시스템 등이 있다.

또 ‘열린데이터광장’을 운영하면서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도 적극 개방하고 있다. 서울시 공간정보기획팀 관계자는 “시 정책에 따라 서울시 공간정보를 열린데이터광장에 올려 개발자들과 시민들이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온 대표적인 서비스가 서울 시내버스의 실시간 운행 정보를 제공하는 ‘서울버스’ 앱이다. 지난 2009년 한 고등학생이 만든 이 앱은 순식간에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면서 국내서 공공정보의 시장성을 처음 조명했다. 이후 유사 앱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현재 서울시 공공 DB의 오픈API를 활용해 제작된 앱은 ‘공영 주차장 실시간 이용 정보’, ‘ 자전거 도로 공간정보’, ‘대기 환경 상황 정보’, ‘추천 관광 정보’, ’문화예술 공연 및 행사 정보’, ‘부동산 공시지가 정보’, ‘안심 먹거리 정보’, ‘노인/장애인/보육시설 정보’ 등 50여종 가까이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공의 정보를 민간이 활용하는 사례가 쌓일 수록 폭넓은 시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공공정보 개방은 사회적 화두

공공정보의 개방은 세계적 흐름이다. 공공정보 공개를 통한 새로운 고용이 늘고 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EU집행위원회에 따르면 공공정보의 직간접적 경제효과는 연간 1천400억유로(약210조원)로 예상된다.

미국, 영국, EU 등 선진국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공공 정보를 적극 개방하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지난 2009년 ‘오픈 거버먼트 다이렉티브’ 전략을 발표, 공공정보 전면 개방을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뉴욕시에선 매년 공공정보 활용 경진대회가 열린다.

영국은 지난해 3월 ‘공공정보 재이용 규칙’을 제정하고 총리 자문기구인 ‘데이터 전략위원회’를 신설했다. 27개 EU 회원국은 2013년까지 공공데이터 개방 정책 수립을 의무화한다는 내용의 데이터 개방전략에 합의했다.

반면 국내는 공공정보의 개방에 있어 여전히 소극적인 상황이다. 행정안전부가 1999년 이후 국가지식포털을 통해 약 1천400개 기관과 연계해 제공하고 있는 공공정보는 약 3억여건. 전체 데이터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민간에 공급하는 데이터도 4천여건에 머물고 있다.

한 벤처업체 대표는 “문화재, 음식점, 숙박업소 등의 지역관광DB를 활용한 앱개발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공공기관들이 API가 아닌 데이터 소재정보만, 그나마 일부 지역에 대해 제공해 무산된 적이 있었다”며 “공공기관들이 보유 데이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보다는 과도하게 보호하려는 경향이 큰 것 같다”고 지적했다.

행안부는 연내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공공부문에서 축적된 정보의 민간 개방과 이용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올해 공공 데이터 운영, 관리 중장기 종합계획을 만들고 공공 정보들의 개방 우선 순위를 선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정보의 민간 활용 활성화돼야

문제는 민간에서의 공공정보 활용 활성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정보 민간 활용으로 연간 5조3천억원의 시장과 1인 창조기업 42만개를 창출할 것”이라는 육성 의지를 밝혔지만 민간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결국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공공정보 개방을 단순히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적 비용을 절감한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령 항공사진, 거리뷰 등의 지리 정보부문을 인터넷에 개방하면 지자체 예산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민간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단순히 사회적 기여 차원에서의 공공정보 활용이 아닌 공신력을 제고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한다는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NHN은 현재 공공정보 활성화를 위한 민관 상생협력 모델 구축에 힘쓰고 있다. 경기도 버스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네이버-경기도 버스 정보 등이 그러한 예다. 인천시는 강화도, 석모도, 소개포구, 송도국제신도시, 인천국제공항 등의 관광지역 항공사진이나 전통시장의 거리뷰를 네이버에 제공하고 있다. 다가오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경기장 세부 위치도 네이버 지도에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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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에는 NHN과 대법원이 대법원 판례 중 비 실명화돼 있는 약 7만여건의 판시사항, 판결요지 및 색인정보 등을 네이버 서비스를 통해 제공키로 업무제휴를 체결했다. 옥상훈 NHN 제휴협력실 부장(공공정보활용지원센터 자문위원)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포털의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사용자들에게는 정보 접근성을 확대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구글노믹스> 저자 제프 자비스 뉴욕시립대 저널리즘 경영대학원 교수는 “공공 정보는 기본적으로 공개돼야 하고 필요에 따라 비밀이 유지돼야 하는 것”이라며 “인터넷이 개방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공공성을 창출할 수도 없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