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하는 윈도8, 눈 감고도 쓰려면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백남중 팀장 인터뷰

일반입력 :2013/02/21 08:33    수정: 2013/02/21 09:22

윈도8이 뒤늦게 한국말을 배웠다. 해외선 터치스크린 기기를 겨냥한 운영체제(OS)로만 알려졌는데 국내서는 화면의 글과 구성요소를 읽어주는 '내레이터' 기능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윈도8의 목소리만 듣고 OS,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인터넷을 다룰 수 있을까.

내레이터는 말 그대로 PC 화면의 글을 읽어주는 윈도 기본 기능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앞서 윈도에 다져온 사용자인터페이스자동화(UIA) 환경에 기반한다. 윈도7까지 없던 한국어를 윈도8부터 들려줄 수 있게 됐다.

이 기능이 대중에게 큰 관심을 못 끌고 있지만 시각장애를 겪는 국내 사용자들에게는 상당한 희소식으로 비친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보화교육 업무를 맡고 있는 백남중 팀장의 설명이다.

윈도 내레이터 기능은 일종의 보조과학기술(AT)로, 모니터를 활용하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이 PC를 다룰 때 보조 도구로 활용할 수 있죠. 모니터를 전혀 못 쓰는 전맹이나 시력은 있지만 단시간만 모니터를 써도 눈에 피로를 느끼는 사람에게 유용합니다.

■한국어 지원-터치스크린, 확 달라진 접근성

그에 따르면 운영체제(OS)는 PC사용자라면 누구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모니터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윈도가 과거 지원하던 내레이터 기능은 OS 수준에서 영어를 들려줄 수 있지만 한국어는 그렇지 않았다.

이제껏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은 내장된 기능만으로 OS를 조작할 수 없었죠. 외부 업체가 만든 '스크린리더'를 설치한 후에야 접근할 수 있었어요. 이번에 나온 윈도8부턴 별도 프로그램 없이 한국어 내레이터 기능이 지원된다는 게 중요한 변화죠.

뒤집어보면 이전에도 외부 프로그램을 하나 설치해 윈도 화면을 한국어로 읽게 만들 수 있었단 얘기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입장에선 초기 OS 환경에 스스로 프로그램 하나 설치하는 게 상당한 부담이다.

윈도 OS에 내장된 기능은 단축키를 통해 직접 켜고 끌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사정이 낫다. 처음 윈도 사용자에게 '로고키와 로마자 유(U)를 함께 누르면 내레이터 기능을 켤 수 있다'고 알려주면 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시각장애인도 쉽게 할 수 있다'고 표현하긴 무리다.

(시각장애인들이) 기본적으로 모니터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건, 컴퓨터를 키보드만으로 다룬다는 뜻입니다. 마우스 없이요. 스크린리더의 세부 기능들은 자판의 여러 키를 조합해 작동시켜야 하거든요. 모든 기능을 제대로 쓰기까진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하죠.

윈도8은 태블릿용 OS로도 등장했다. 일반 PC모니터에선 불가능했던 터치스크린 기반의 한국어 음성 지원이 가능한 첫번째 윈도란 얘기다. 화면상의 요소들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게 터치스크린 기기의 장점이다. 터치 환경에서 윈도8 내레이터를 쓰는 방식은 '로고키'와 '음량 높이기'를 함께 누르는 것으로 표준화됐다.

원래 윈도8 터치스크린 화면을 건드리면 그 위치의 구성요소가 내장된 기능으로 실행되거나 연결된 프로그램을 연다. 그런데 내레이터를 켠 채 손을 대면 윈도가 그걸 활성화하는 대신 이름이나 내용을 읽어준다. 사용자가 손을 끌면 그 밑에 스치는 구성요소들을 일일이 확인할 수 있다. 원하는 항목을 찾은 뒤엔 두번째손가락으로 아무데나 터치해 실행할 수 있다.

원래 윈도 내레이터 기능을 키보드로 쓸 땐 캡스록(CapsLock)을 기본으로 삼는 복잡한 조합을 익혀야 합니다. '현재 줄읽기'를 하려면 캡스록과 컨트롤(Ctrl)과 오(O)를 함께 누르는 식이에요. 시각장애인이 키보드로 PC를 다루려면 최소 100시간 교육을 받아야 '스크린리더 활용에 조금 눈을 뜰 수 있는 정도'가 돼요.

백 팀장이 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 정보화교육과정을 맡아온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고 한다. 이는 화면상의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손을 대는 걸로 충분한 터치스크린 기기 사용에 비하면 너무 지난해 보인다.

물론 세분화된 조작을 하려면 터치스크린용 고급기능에 필요한 조작법을 따로 익혀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키를 조합하는 방식에 비해선 훨씬 간단할 수밖에 없다. 태블릿의 물리적 단추는 거의 5개 미만이고 터치스크린 조작은 '제스처'를 통해 다양화시킬 수 있다. 나머지 아쉬운 부분은 OS 자체보다는 그 외부 앱개발자 몫이다.

■접근성높이기, 개발자 관심과 정부 '성의' 문제

원래 스크린리더는 OS, 응용프로그램, 인터넷에 접근이 가능해야 돼요. 내레이터는 MS에서 만든 거라 OS와 (내장 브라우저에 기반한) 인터넷을 다루기엔 문제가 없을 거 같아요. 하지만 HWP(한글과컴퓨터 아래아한글 워드프로세서)같은 파일을 다룰 응용프로그램이나 (플러그인 프로그램을 깔아 쓰는) 인트라넷 환경은 보완돼야죠.

MS는 개발자들이 터치스크린 대응 환경인 윈도8 '스타일UI' 또는 '메트로UI' 환경에서 '접근성기준'에 맞춘 앱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접근성기준은 회사가 시각장애 외에 시력장애와 이동장애를 겪는 사용자용 앱을 만들 수 있도록 고안한 기반으로, 앞서 언급한 UIA를 통해 구현됐다.

개발자들은 웹접근성 정보를 선언하는 스키마 'ARIA'를 포함한 HTML5 표준으로 스타일UI앱을 만들거나, 실버라이트와 WPF용에 필요한 스키마로 XAML 앱을 개발 가능하다. MS로부터 개발툴 비주얼스튜디오 익스프레스, 개발센터 가이드라인 및 샘플코드, 테스트도구도 주어진다. 결과물을 윈도스토어에 '접근성지원앱'으로 등록하면 된다.

백 팀장은 OS와 앱 개발자들의 관심과 노력이 장애인들의 접근성 높이기, 정보취약계층과 일반 소비층의 정보 격차 완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기술 발전이 정보 격차를 줄일 거란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는 더 깊어가는 추셉니다. 일례로 아이폰을 제외하면 스마트폰도 시각장애인이 제대로 접근하기에 아직 요원해요. OS와 앱 개발자들이 장애인 접근문제에 기본 해법을 제시해줘야 하고,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할 때 매뉴얼 내용과 교육방법도 전혀 다르게 제공돼야 합니다.

이어 국내 장애인들의 정보화교육 지원 상황에 대해서는 이를 책임져야 할 정부의 활동과 지원이 너무 무성의함을 비판했다.

현재 IT에서 가장 소외된 게 장애인 관련 교육이에요.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장애인 집합교육장을 선정해 운영중이긴 해요. 그런데 업무조건이 비정규직에 월 80시간 전과목 강의인데 급여는 보너스 없이 월급 160만원, 이런데 누가 선뜻 나서겠어요. 컴퓨터 안다고 누구나 시각장애인을 가르칠 수도 없고요. 전문강사 교육기관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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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움직이려면 일반인들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관련 움직임에 관심을 가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국내서는 접근성 논의 자체를 장애인들만을 위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고령사회에 접어든 현재, 장애인을 위한 AT 뿐아니라 노인과 저시력자 등 '일반인'에게도 도움을 주는 개념으로 넓게 인식될 필요가 있다.

백 팀장은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보화교육 외에도 점자도서관과 ARS전화 도서관 및 전자도서관 등에서 녹음도서 제작, 점자 및 녹음도서대출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정보화진흥원(NIA) 웹접근성연구소에서 내놓은 한국형 웹콘텐츠 접근성지침1.0과 2.0 개발위원으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