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N-오픈플로, 한국의 먹거리는 어디에

일반입력 :2013/02/19 08:12    수정: 2013/02/19 09:28

전세계 네트워크업계가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으로 들썩이고 있다. 한국도 SDN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면서 SDN 열풍이 부는 모습이다. 특히 네트워킹 산업의 역전 드라마를 쓰겠다는 열망이 하늘을 찌른다.

SDN은 네트워크 장비의 컨트롤 플레인과 데이터 플레인을 분리하고, 컨트롤 플레인을 한곳에 모아 중앙집중형태의 네트워크 관리를 구현한다는 사상이다. 컨트롤 플레인을 빼낸 네트워크 장비는 데이터 전송만 처리하고, ACL, 컨피규레이션, 배포, 보안, 모니터링 등의 기능은 중앙의 컨트롤러가 맡는다.

SDN은 통신사, 데이터센터사업자의 네트워크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해 IT 인프라 전체를 쉽고 빠르게 운영하자는 취지다. 이런 개념을 실제로 구현하려면 컨트롤러와 데이터 플레인 사이의 통신을 위한 프로토콜이 필요하다. 이를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진행해 나온 게 오픈플로란 기술이다.

오픈소스인 오픈플로를 활용해 컨트롤러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 시스코시스템즈를 위시한 기존 네트워크 장비업체의 시장 주도권을 흔들 수 있다. 사용자의 벤더종속성 탈피의 의미다. 그러나 한국에선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외국계 네트워크장비업체에 뒤켠으로 밀려난 국산 네트워킹 솔루션업체의 반격이다.

■치열한 SDN 선점 경쟁, 한국도 참전

네트워크는 여러 IT기술 가운데 하드웨어 종속성이 가장 강했던 분야다.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의 ASIC은 업체마다 독자적으로 설계돼 폐쇄적이며, 복수 업체의 제품을 사용할 경우 통합적인 관리는 불가능하다.

오픈소스인 오픈플로는 네트워크의 하드웨어적 종속성을 없앨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범용 프로그래밍 언어로 각종 네트워크 관리 기능을 구현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어 네트워크장비업체에서 제공하는 고가의 SW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오픈플로 기술개발은 당초 대학교와 연구기관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연구진들이 빠져나와 다수의 벤처기업을 설립했고 니시라, 빅스위치, 미도쿠라 같은 오픈플로 컨트롤러 개발업체들이 등장했다

전문업체의 등장 이후 SDN과 오픈플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자 HP, IBM, 델, NEC 등이 R&D 연구소 내에서 홀대받던 오픈플로를 사업전면에 내걸었다. 네트워크장비업체 가운데선 브로케이드가 가장 앞서 오픈플로를 지원했다. 미온적이던 시스코, 주니퍼, 익스트림 등도 오픈플로와 SDN 전략을 대대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무수한 관련업체들이 등장하고, 대형 IT업체와 기존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이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선점을 위한 불꽃튀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강건너 불구경 상황은 아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연구진들이 한국에 들어와 SDN과 오픈플로 관련사업을 벌이겠다고 나섰다. 한국의 첫 번째 상용 오픈플로 컨트롤러가 나왔고, 비슷한 시기 또 다른 오픈플로 컨트롤러가 개발을 마치고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쿨클라우드와 아토리서치코리아가 그 주인공이다.

쿨클라우드는 지난해 9월 한국의 첫 번째 상용 오픈플로 컨트롤러인 ‘물(MUL)’을 공개했다. 작년 상반기 오픈플로 1.2 버전에 기반한 100기가비트(Gb)급 데이터플레인 장비와 컨트롤러의 개발을 완료하면서 이뤄졌다.

연세대학교의 박성용 교수가 최고기술책임자(CTO)로서 기술개발을 이끌고 있다. MUL 오픈소스 버전은 해외 오픈소스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아토리서치는 ‘앳넷(ATTNET)'이란 컨트롤러를 개발했다. 1분기 중 소프트웨어와 전용 하드웨어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아토리서치는 당초 복잡한 네트워크 패킷처리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던 중 SDN을 채택했다. 금융권의 실시간 거래시스템을 노린 솔루션 개발이 목표였던 만큼 ‘앳넷’은 보안과 성능을 중심에 두고 개발됐다. 아토리서치는 전용 하드웨어를 통해 네트워크 가속 성능을 내재시켰다.

미국 텍사스A&M대학에서 SDN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신승원 수석 엔지니어와 정재웅 아토리서치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시장붕괴자 오픈플로, 애플리케이션이 핵심

오픈플로가 컨트롤러 하나 만든 것으로 끝이 아니다. 컨트롤러가 SDN 구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SDN 전체로 볼 때 여러 구성품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컨트롤러는 SDN을 시작하기 위한 기반이자 출발이다. 오히려 네트워크 전반을 운영하고 관리하기 위한 여러 애플리케이션이 핵심이다. 존재의 가치로 보면 컨트롤러와 애플리케이션은 동등하다. 하지만 애플리케이션이 다양해야 SDN이 기존 네트워크장비를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쿨클라우드와 아토리서치 역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쿨클라우드는 맥플러딩 기술에 대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아토리서치는 디도스 방어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두 회사 외에 오픈플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나서고 있는 곳은 눈에 띄지 않는다. 쿨클라우드와 아토리서치 모두 소규모의 벤처기업에 불과하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의 원활한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적은 인력과 국내 오픈플로 개발자의 태부족으로 컨트롤러 고도화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빠르게 병행하기 어려운 한계를 갖고 있는 탓이다.

현재 미국과 일본의 상황은 컨트롤러 개발을 일정부분 마무리하고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노스바운드 API 분야로 초점을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통신사 네트워크, 홈네트워킹, 데이터센터 네트워킹, 보안, 로드밸런싱 등등 현존 네트워킹 산업분야 전반에 걸친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빅스위치, NEC, 미도쿠라 등은 오픈플로 컨트롤러를 출시한 뒤로 애플리케이션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 네트워크 솔루션 개발업체와 파트너십을 맺는 한편, 독자적인 애플리케이션 개발에도 투자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시스코, 주니퍼, 브로케이드 등 기존 네트워크벤더의 경우는 자사의 솔루션에 포함됐던 애플리케이션을 언제든 SDN 환경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고 있다. 시스코는 OnePK를 통해 NX-OS와 오픈플로 등 다양한 환경을 위한 네트워크 기능 개발을 지원한다.

네트워크 벤더의 반격은 위협적이다. 이들은 수십년간 쌓은 네트워크 개발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준비만 완료되면 SDN 시장을 빠르게 장악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국내의 네트워킹 전문가는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중국 역시 엄청난 속도로 SDN과 오픈플로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라며 “세계적으로 기존 SDN이란 새 시장의 여러 영역들을 선점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에 반해 한국의 경우 컨트롤러를 3년 뒤에 개발하겠다는 식의 발상을 하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덧붙였다.

■남들은 앱만드는데, 3년뒤 컨트롤러 개발 공언만

현재 오픈플로와 SDN은 다음 단계의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현재의 컨트롤러는 초기의 네트워크 허브처럼 단순한 기능만 구현하고 있다.

향후의 컨트롤러는 아랫단의 데이터 플레인 통신을 위한 브로커를 맡게 되고, 전반적인 SDN은 전용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으로 구현된다. 또한 각종 클라우드 관리 플랫폼과 긴밀하게 통합되는 노스바운드 API 문제도 경쟁지점으로 거론된다.

현재 정부의 SDN 투자 계획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올해초 방송통신위원회가 공고한 기술개발 사업 중 미래인터넷 원천기술 개발 신규과제에는 ▲캐리어급 서비스 인프라를 위한 SDN 핵심 기술(40억원) ▲오픈플로 기반 유무선 장비 통합 제어·관리 시스템 개발(20억원) 등의 과제가 포함됐다.

이 사업은 3~4년짜리 중기과제다. 계속과제를 포함한 올해 미래인터넷 기술개발 과제 지원 예산은 230억원 규모다.

지식경제부의 개발과제는 ▲하향 40Gbps 및 상향 10Gbps 전송속도를 지원하는 차세대 수동형 광가입자망 시스템 기술 개발 ▲오픈플로/SDN 기반의 기업용 네트워크 컨트롤러 기술 개발 과제를 새로 포함하게 됐다. 총 19억원으로, 3년 과제다. 계속과제와 합한 네트워크 관련 기획과제는 모두 156억원 규모다.

정부에서 개발한 오픈플로 컨트롤러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FIRST가 있다. 그러나 이 컨트롤러는 KOREN망 시범 적용결과 상용화는 이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약 3년 개발을 거쳐 나온 컨트롤러는 미국과 일본의 경쟁에 무용지물인 것이다.

현재까지 정부에서 내놓은 개발과제를 종합해보면, 컨트롤러 개발에 온 역량을 쏟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 3년 이상의 중기 과제로 한국형 오픈플로 컨트롤러의 완성 시점은 2015년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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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SDN이 상당 수준으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다. SDN을 지지하는 진영과 반대하는 진영 모두 오픈플로가 모든 기업에서 원활히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되고, 기존 레거시 네트워크를 잠식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때 한국은 컨트롤러를 막 개발하게 되는 셈이다.

한 네트워크장비업체 관계자는 “현재 상황은 컨트롤러 개발에 매달릴 게 아니라 향후 네트워크를 위한 운영체제, 애플리케이션, 미들웨어와 클라우드 관리플랫폼과의 연동성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또한 어떤 분야를 선점해야 승산이 있을지 빠르고 구체적으로 연구해 상용 솔루션을 육성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