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SW개발자 대기업 가면 막아야 할까

SW업계, 징벌적손해배상 어떻게 보나

일반입력 :2013/01/26 22:18    수정: 2013/01/29 09:28

이달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중소기업이 공들여 키운 인력을 채용해버리는 대기업 관행을 막겠다고 '징벌적손해배상' 제도를 적용할 뜻을 밝혔다. 소프트웨어(SW) 업계는 그 내용에 좀더 업계 현실이 긴밀하게 반영되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최근 인수위에서 중소기업정책을 담당하는 경제2분과 이현재 간사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인력빼가기 등 부당행위에도 징벌적손해배상을 매기는 `하도급거래공정화에관한법률(이하 하도급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 위반시 적용되는 징벌적손해배상이란 사업자가 시장을 왜곡해 경제적 피해가 크고 중대사안일 경우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배상책임을 지우는 제도다.

인수위 하도급법개정안에는 기존 하도급업체의 기술탈취와 유용에 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를 다른 행위까지 넓히는 내용이 담겼다.

■중소SW업체 인력이 대기업으로 유출되는 양상

법은 11조의 하도급대금부당감액(일명 `단가후려치기`)과 12조 경제적이익제공강요(불법리베이트)를 우선 적용 대상으로 검토했다. 대금지급을 구두로만 약속하는 3조 서면미발급,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납품대금을 부당하게 정하는 4조 부당한하도급대금결정, 이밖에 10조 부당반품, 신설 18조 인력빼가기 등을 함께 거론했다.

인수위는 앞서 유사 개정안이 국회에 다수 발의돼 있었다는 판단에 따라 새정부 출범 이후 국회와 협의해 하도급법 개정에 속도를 내겠다고 예고했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 15일 중소기업보호를 뼈대로 하는 인수위 업무보고 당시 부당행위 판단기준을 명확히 하고 손해액의 배상범위를 최대 10배까지 늘리는 내용도 담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대기업으로의 인력유출과 관련된 실제 손실사례는 일반적으로 거래관계였던 기업이 업무를 맡긴 업체의 담당자를 채용하면서 거래를 일방적으로 끊는 형태로 나타난다. 대기업의 중소SW업체 인력빼가기 과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일단 대기업내 담당자가 특정 IT관련 이슈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어 외주를 준다. 하청업체가 일정기간 업무를 수행해 능력을 검증받으면 그에 숙련된 실무자에게 하청업체 노동자 신분보다 훨씬 유리한 채용 조건을 제시한다.

실무자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업무를 더 나은 조건으로 하게 된다. 그를 채용하는 대기업 입장에서도 하청을 주며 중간관리자를 거쳐야 했던 업무절차를 간소화하며 외주거래에 따른 비용부담도 줄일 수 있게 된다.

다만 개별 인력의 숙련도에 의존성이 큰 중소SW업체는 당장 대기업에 빠져나간 경력직을 대신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유능한 신입 엔지니어를 뽑더라도 그만한 업무경험을 쌓기까지 물리적인 시간이 최소 1년은 걸린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그나마 그런 유능한 인재가 일부러 대기업보다 업무여건이 불리한 경우가 많은 중소SW업체에 지원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인력빼가기는 '곁가지'

이처럼 국내 SW업계는 오랫동안 구인난과 인력유출로 2중고를 겪어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 하도급법개정안의 방향성과 취지에는 일단 공감하는 모습이다.

공공시장과 중견 이상 대기업 고객을 상대해온 SW개발업체 A사 대표는 징벌적손해배상제 강화가 중소SW업계 전문인력 이직에 영향을 주겠지만, 대기업으로 이동했는지 여부를 확인, 증명하기가 쉽지 않기에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후조치보단 애초부터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인력양성시스템을 갖추게 만들거나, 별도기관에서 인재를 키우고 그 운영기금을 대기업에서 거두거나, 프로스포츠선수들처럼 대기업이 스카우트하는 인력의 소속 업체에 '이적료'를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다수 SW사업자들은 인력빼가기를 하도급법개정안의 직접적인 제재대상으로 넣겠다는 접근을 선뜻 반기지 않는다. 인력유출은 대기업 불공정행위의 과정 내지 현상일 뿐, 그 원인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고객을 다수 상대해온 IT 전문 컨설팅업체 B사 대표는 법을 위반한 대기업이 '걸리면 죽는다'고 인식할 정도라면, 함부로 거래업체의 인력을 빼오던 관행에 예방효과를 기대할만 하다면서도 대기업의 거래담당자에게 그 행위에 책임을 지우고 시장에 고착된 '갑을'간의 역학관계를 깨뜨리지 않는한 본질적 문제를 풀기 어렵다고 말했다.

SW사업자 입장에서 기술인력의 가치가 매우 크고 유출될 경우 부담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과연 이를 제한하는 것이 근본 문제 해결로 연결되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공공부문과 국내외 금융 및 통신업체에 주요 시스템SW를 공급해온 C사 대표도 중소SW전문기업들이 제품에 제값을 받고 공정한 유지보수요율을 보장받으면 회사 이익을 늘려 직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고, 기술인력 업무와 기업의 구인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며 SW전문인력들이 이직하는 것은 더 나은 조건을 확보하기 위함일 뿐, 법적 제재보다는 근본적인 국산SW업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권 침해 우려…대기업 못잖은 정부, 반성해야

일각에선 오히려 인수위의 개정안이 기술인력들의 직업선택 자유를 침해해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한다. 오히려 장려돼야 할 전문인력들의 커리어 계발이 대기업의 경력직 기술인력 채용에 대한 제재 부담으로 위축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통신업체와 제조부문 대기업을 고객사로 둔 외국계 임베디드 관련 SW업체 D사의 지사장은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문제를 공론화할 기회가 생긴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인력빼가기 등 몇가지에 대한 규제로 문제를 풀긴 어렵고, 그 내용이 당사자인 SW엔지니어들의 입장에선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마저 침해할 소지가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언급했다.

대기업에겐 인력시장에서 자체 경쟁력을 키워줄 전문가를 우대해 영입하는 게 효율적인 선택이다. 해당 전문인력은 자신의 업무여건을 개선하고 경력관리를 하는 차원에서 더 큰 조직에서 일하는 길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걸 제재할 명분을 찾긴 쉽지 않다.

즉 더 근본적인 해법은 전문인력이 등을 돌리게 만들 정도로 중소SW업체들의 업무여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진 원인을 제거하는 방안이다. 업계는 이런 측면에서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못지 않게 정부의 나쁜 관행에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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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정보화 사업 경험을 다수 갖춘 협업관련 SW개발업체 E사의 대표는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SW엔지니어를 대기업이 채용해가는 관행에 대해 경쟁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며 오히려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해당 기업이 타격을 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업여건을 정부에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데도, 여태 안 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SW제품 라이선스에 포함된 유지관리서비스 요율을 외국계 SW업체 수준만큼 인정하고 발주처의 사업대금 체불이나 단가 후려치기와 납품된 기술의 저작권 탈취 행위를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