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추락…“신에서 평민으로”

일반입력 :2013/01/01 09:31    수정: 2013/01/02 09:43

김태정 기자

“애플 주가 1천달러 시대가 열린다”

지난해 9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이 앞다퉈 쏟아낸 분석이다. 정확히 2012년 9월21일(이하 현지시간) 애플은 주가 705.07달러라는 신기록을 썼다.

당시 애플의 하청공장 폭스콘은 ‘아이패드 미니’ 생산에 한창이었다. ‘아이패드 미니’만 나오면 안 그래도 고공행진인 애플 주가가 더 치솟을 것이라는 장미 빛 시나리오가 나왔다. 시장 기대치는 역대 최고. 애플 주식 매수 행렬이 이어졌다.

■애플 거품 대 붕괴…임원도 주식 던져

이 같은 기대가 섣불렀음을 깨닫기까지는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1천달러 돌파는커녕 500달러 붕괴 위험선이 애플 주가의 현 주소다. 애플 투자자들에게 공포가 본격화됐다.

705.07달러 사건 후 연일 급락한 애플 주가는 지난 달 28일 뉴욕증시서 종가 509.58달러를 기록했다. 허공에 사라진 주가가 9월 대비 30%에 육박한다. 1천달러를 논했던 애널리스트들의 화제는 500달러선 붕괴로 이동했다. ‘아이폰5’와 ‘아이패드 미니’ 등의 판매 호조 소식이 각국서 들려와도 주식시장 분위기는 차갑다.

시티그룹은 아이폰5 수요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투자의견을 '중립'으로 하향조정했고, UBS는 중국서 아이폰5 인기가 전작들만 못할 것이라며 780달러였던 목표 주가를 700달러로 내렸다.

이 와중에 애플 핵심 임원들은 잇따라 주식을 던졌다. ‘잡스의 왼팔’로 불린 밥 맨스필드 부사장은 지난해 11월28일 애플 주식 3만5천주, 당시 가격으로 무려 2천37만달러치를 팔았다. 하드웨어 총괄 댄 리치오도 주식 1만9천726주를 처분했다.

애플의 돈 잔치가 막 내렸음을 임원들이 미리 예상했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분노한 소액 투자자들에게 애플은 이미 ‘신’이 아니다.

■진흙탕에 나온 ‘전직 신’

주가 추락 이유는 다양하지만 애플이 과거의 위상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대부분 귀결된다. ‘혁신의 대명사’는 옛 말이고, 다른 주자들처럼 시장 점유율 싸움에 분주한 처지가 됐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역시 애플’보다 ‘애플도 역시’라는 말들이 나왔다.

주력 제품 가격을 보면 애플이 ‘평민(?)’으로 내려왔음이 보인다. 출시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폰5를 월마트가 고작 127달러(13만6천원)에 판매 중이다. 약정 조건을 감안해도 전작들 대비 확연히 빠른 가격 추락이다. 월마트가 깐깐한 애플의 협의 없이 벌이기는 어려운 일이다.

월마트뿐만 아니라 베스트바이와 라디오샥도 아이폰5 가격을 기존 대비 50달러가량 내렸다. ‘아이폰은 명품’이라며 지갑을 열던 소비자들에게 불편한 진실이다.

이는 스티브 잡스 사후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팀 쿡이 점유율 방어에 급해 고가 정책을 포기했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혁신이 없으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월스트리트는 설명한다.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피터 미섹 애널리스트는 “애플이 협력업체들에게 아이폰5 부품 주문량을 크게 줄이겠다고 통보했다”며 “아이폰5 재고가 과도하게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혁신의 곳간에 바닥이 드러났다

애플 제국에 균열이 보이자 투자 전문가들은 저마다 어두운 전망을 그려냈다. 이 가운데 근래 유독 회자되는 것이 마크 안드레센의 이른바 ‘애플판 저가전략 회의론’이다. 안드레센은 넷스케이프 창업자로 유명한 벤처투자가다.

“잡스는 새로운 제품으로 늘 시작하기에 점유율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지만 쿡은 다르다. 시장점유율 방어에 더 치중하기 위해 저가 정책, ‘아이패드 미니’와 같은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점유율이 떨어지면 애플리케이션 시장서도 밀리게 된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도 분석을 보탰다.

“애플 주가 하락은 계속될 것이다. 투자자들은 호재보다는 악재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애플은 잡스 사후 ‘혁신 곳간’이 비었음을 드러냈고,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저가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투자가들은 부정적 소문과 분석을 더 의식하는 방어 전략에 나섰다. 숙적 삼성전자와 구글의 위협적 성장세가 애플을 다급하게 만들었다.

관련기사

이 밖에도 삼성전자와의 법정 싸움과 생산시설 부재에 따른 장기적 공급 한계, 승부처인 중국 시장서의 고전, 태블릿 시장 영향력 감소, 미 정부의 일자리 창출 압박 등의 악재가 애플 앞에 산적하다.

애플의 후속 카드들이 어느 정도 전투력을 발휘할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스마트 시계와 자동차 연동 모바일, 텔레비전까지 각종 비장의 카드들이 대기 중으로 알려졌다. 이 역시 삼성전자와 구글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뛰어든 분야여서 애플 투자자들은 낙관하지 않는 모습이다. 애플 제국의 품위 유지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