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범죄 꼼짝마' IT특채 수사관이 있다

일반입력 :2012/11/15 08:55    수정: 2012/11/15 10:02

손경호 기자

해킹, 개인정보 침해 등 사이버 범죄가 늘어나면서 경찰청은 매년 일정 수의 IT 전문인력을 사이버수사요원(경장 급)으로 채용해 기존 수사인력과 시너지를 내고 있다. 사이버 범죄 발생 빈도와 그 사회적 파급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15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이병귀 경정은 IT분야의 중요성을 고려해 지난 2000년부터 사이버 수사요원을 매년 20명씩 특채로 채용하고 있다며 일반 수사관들과 반반씩 팀을 이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일반 수사관들에게는 부족한 IT 지식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해당분야 석사 이상, 혹은 IT기업 근무자를 대상으로 특채를 실시하고 있다. 법률적 지식과 범인 검거 경험만으로는 사이버 범죄를 해결할 수 없어서다.

이 경정은 경찰청이 사이버범죄 수사를 위해 법전공자에게 IT기술을 교육시킬지, 반대로 IT전문인력에게 법적인 부분들을 교육시킬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특채가 생겼다고 말했다. 분야는 보안/프로그램/디지털포렌식/무선통신/데이터베이스로 분류된다.

특채로 입사한 수사관들은 일반 수사관들과의 업무 공조를 통해 굵직한 성과를 내왔다. 특채 출신으로 2004년부터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수사2팀에 근무하고 있는 김진환 수사관㊴은 2005년 하나은행 해킹사건, 2006년 LG전자 입사지원서 유출사건, 2008년 미래에셋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사건 등의 수사에 참여했다. 3.4 및 7.7 DDoS 대란과 SK커뮤니케이션즈의 개인정보유출사건, 최근 KT 개인정보유출사건 등도 그가 속한 팀에서 진행했다.

김 수사관은 사이버범죄 수사 역시 최종목적이 범인 검거이기 때문에 IT 특채 인력과 일반 수사관들이 가진 법률적인 지식, 범인 검거 경험을 합쳐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해킹 사고가 터지면 내용을 분석하고 해킹기법을 연구하는 업무가 절반이라면 나머지는 용의자를 추적해 검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이버 범죄 수사 '시간 싸움'

김 수사관은 SBS 드라마 '유령'의 자문을 맡기도 했다. 그는 사이버 범죄 수사가 시간 싸움을 해야한다는 점에서 일반 수사에 비해 어려운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장면들처럼 디지털 증거물은 위변조가 워낙 쉬운데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3개월이 지나면 로그기록 등이 삭제돼 범인 검거가 힘들다는 것이다.

강력사건은 4년, 5년이 지나서도 해결했다는 사례가 나오지만 사이버범죄 사건은 3개월 안에 모든 수사를 완료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김 수사관은 말했다. 초동 조치가 중요하다보니 사건 해결 여부는 거의 2주 안에 판가름난다는 설명이다.

중국에 근거지를 둔 사이버 범죄의 수사는 더욱 힘들다. 김 수사관은 지난해 중국 공안에 사건수사 협조를 요청했는데 실제로는 얻은 것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부산에서 용의자의 IP주소가 확인됐다고 하면 바로 출동할 수 있지만 북경 관할 공안이 적발한 IP주소가 심천 지역이라면 시간 싸움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IT전문 수사관들은 대개 야근이 많다. 공무원이라는 직종에도 불구하고 사이버범죄 수사관들은 퇴근시간이 밤 10시, 11시를 넘을 때가 많다. 중요한 사건이 터지면 밤샘 근무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근무환경 자체는 일반 IT회사들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김 수사관은 범죄 수사에 상당히 매력이 있다며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힘들 정도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을 해결했을 때의 성취감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부부-커플 수사관도 많아

특채 출신 중에는 부부 수사관도 있다. 추현탁 수사관㉟과 류정은 수사관㊱ 부부가 그렇다. 이들은 모두 안랩 출신으로 4년 전에 추 수사관이 먼저 특채로 경찰청에 근무하게 된 뒤, 류 수사관은 1년 뒤에 서울지방경찰청에 특채로 입사했다.

두 수사관은 경찰로 근무하게 된 지 1년만에 결혼했다. 9개월된 아이도 있다. 추 수사관은 경찰청에 근무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수사관들끼리 이곳에 와서 커플이 되고 결혼하는 경우도 많다며 아는 것만 3~4커플이라고 귀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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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수사관은 몇 년 전 부부 수사관으로 기사가 난 바람에 잠복 근무할 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일반 사람들이 신문에 나온 사람이라면서 아는 척하는 바람에 용의자 추적에 곤란을 겪은 경험도 있다. 그렇지만 업무 자체에 대해서는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병귀 경정은 미국의 경우 IT분야 인력이 공공쪽에 채용됐다가 일반 회사로 가는 경우가 많으나 우리나라는 오히려 공공쪽을 선호하는 편이라며 사이버보안이나 사이버범죄 수사 분야에서도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어하는 IT전문가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