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SDN' 갑자기 왜 떴을까?

일반입력 :2012/11/01 08:40    수정: 2012/11/01 08:42

데이터센터 업계에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 열풍이 불고 있다. SDN이 대규모 클라우드 서비스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충분조건으로 부각되는 상황. 빨라도 너무 빨리 뜬 SDN 열풍의 이면엔 데이터센터 운영인력 간 정치 싸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네트워크 이슈로 출발한 SDN을 두고 서버 진영과 네트워크 진영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다. 솔루션 공급업체가 아닌 실제 인프라 운영 측면의 싸움이다.

기업 데이터센터 운영은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보안 등 각 영역에 따라 별도의 관리조직에서 이뤄진다. 각 분야별 관리조직은 일종의 정부 관료조직처럼 작동한다. 예산과 인력운영 등이 각 조직에 분배되면서 더 많은 힘을 얻기 위한 정치적 암투가 벌어지기 일쑤다.

SDN의 향배에 따라 기업의 인프라 관리조직의 전체 틀이 큰 변화를 겪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클라우드, 빅데이터? 문제는 네트워크야”

최근 수년 사이 데이터센터 조직 중 각광받은 곳은 시스템 분야다.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란 트렌드는 시스템 측면으로 부각됐다. 스토리지 영역도 클라우드, 빅데이터 이슈 속에서 함께 각광받았다.

반면, 네트워크 분야는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의 이슈에서 소외된 인상을 준다. 가상화,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에서 네트워크 분야는 장애물로 여겨졌을 뿐이다. 관심사가 몰리면 자연스레 투자도 몰린다. 기업의 인프라 투자가 서버, 스토리지에 집중되고, 인력에 대한 지원도 집중됐다. 상대적으로 네트워크 분야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었다.

네트워크 진영은 SDN을 IT시장의 주목을 되찾을 기회로 여긴다. SDN으로 전체 데이터센터 인프라에서 네트워크의 비중이 어느때보다 부각됐다. 그런데 상황은 엉뚱하게 흘러갔다. 시스템 진영이 SDN에 더 뜨겁게 반응한 것이다.

네트워크업계 관계자는 “SDN은 당초 네트워크 진영이 헤게모니를 되찾으려 부각시켰지만, 지금은 오히려 서버 진영이 SDN에 더 크게 호응하는 상황이다”라며 “SDN에 대해 포털업체나 호스팅업체 시스템 운영자들이 더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가상화’ 서버 VS 네트워크 주도권 다툼의 시작

가상화 환경에서 가상 네트워크 스위치를 구성할 수 있게 되면서, 네트워크 진영의 설자리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였다. 서버로 네트워크 영역의 흡수는 한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네트워크 진영은 살아남았다. 서버 운영자에게 가상의 네트워크를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은 제공됐지만, 실제로 활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관리는 서버 운영자에게 너무 복잡하고 이질적이었다. 운영 조직끼리 네트워크 관리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버와 네트워크는 이질적인 영역이다. 서버 운영자가 네트워크의 IP기술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또한 서버나 스토리지가 가상화 환경으로 관리 포인트를 통합하기 쉬운 데 비해 네트워크는 하드웨어 종속성이 강해 단일 관리를 가로막는다.

네트워크업계는 이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VM 이전 시 기존 네트워크 설정을 유지하는 기능을 강화했다. 시스코 VN태그나 EVB 같은 기술이 부각됐다. 서버 영역과 네트워크 영역의 역할 충돌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되는 듯 했다. 전체 인프라는 통합됐지만 운영조직은 분화되는 상태가 유지됐다.

국내 호스팅업체의 한 관계자는 “클라우드 인프라를 도입하려고 할 때 네트워크는 자동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졌다”라며 “가상서버를 할당하려 해도 실제 네트워크에 붙이려면 네트워크 담당자에 요청하고, 작업 완료를 기다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스템 중심의 네트워크, 권한은 누구에게?

서버 조직과 네트워크 조직이 원활히 협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은 투자효과를 거두기 어렵게 된다. 운영 조직 간 협업이 불안정하면 대형 사고로 번진다.

예를 들어 가상서버가 물리적 위치를 이동하는 경우다. VM의 물리적 위치를 바꾸게 되면 새로운 IP주소를 할당받아야 한다. VM웨어 가상화 환경에서 서버 운영자는 V모션과 함께 이용하는 네트워크 장비의 별도 관리도구로 작업한다.

이 작업이 만만치 않다. 네트워크를 잘 모르는 운영자는 실수를 하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네트워크 운영자가 도와주지 않으면, 서버 운영자가 이동시킨 VM은 네트워크를 잃고 죽은 상태로 남는다. VM이 죽으면 서비스 중단으로 이어진다.

이같은 자산 관리 주도권 문제는 국내외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장애의 주요 요인이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물리 서버가 중단되더라도 고객의 VM을 자동으로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 이 때 새로운 IP주소를 할당해야 이용자의 서비스가 유지될 수 있다. 서비스 이용자든, 클라우드 인프라 운영자든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인프라 운영 측면에서 SDN은 기술적으로 중앙집중 관리와 자동화를 구현하며, 서버를 운영 측면에서 타 부서와 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불편함을 해소시켜줄 수 있다. 네트워크 장비 제조업체의 관리도구를 별도로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SDN에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 진영이 네트워크 관리 능력을 습득하게 되면, 기존 네트워크 운영조직은 존재의 의미를 잃게 된다. SDN은 프로그래밍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업무 성격은 오히려 네트워크 조직보다 서버 조직에 익숙하다.

때문에 네트워크 업계의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국내 SDN 전문가는 “네트워크 엔지니어의 발빠른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SDN이 보편화되면 네트워크 엔지니어의 역할은 컨트롤러 폴리시 관리나, 컨트롤러 모듈 작성 작업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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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관리조직의 전체 틀변화도 예상된다. 시스코 본사의 인프라 운영조직은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등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업무 성격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기준으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기획, 개발, 테스트, 운영 등 인프라 주기에 따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조직에 모두 포함돼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 자동화를 이룩한 미국 기업들이 이같은 조직 형태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시스코코리아 측은 “조직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려며 소모적인 정치에 휘말리기보다 실제 운영 효율화를 위한 협업체계를 갖춰야 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