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핫이슈 'SDN'…한국서 뜰까?

일반입력 :2012/10/24 09:00    수정: 2012/10/24 11:11

현재 네트워크 관련업계는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크(SDN)와 오픈플로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하드웨어 종속성이 가장 강했던 네트워크를 사용자 입맛대로 꾸미고, 전체 IT인프라를 쉽게 운영할 수 있게 하자는 사상이 어느 때보다 강한 추진력을 얻었다.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연구기관과 네트워크장비업체, 유력 솔루션업체들까지 나서 SDN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클라우드, 빅데이터에 이어 SDN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했다.

SDN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통신사업자와 포털업체들이 SDN 테스트 작업에 들어갔고, ETRI와 대학교를 중심으로 정부와 학계차원의 연구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SDN 열기가 막 국내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려는 시점, SDN을 바라보는 관련업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SDN은 국내의 네트워크 시장을 바꿀 파괴력을 가진 화두지만, SDN으로 국내 시장의 미래가 바뀔 것이냐는 여러 의문부호를 만들어낸다.

■미완성 기술에 환상은 금물이다?

SDN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들은 아직 미완성인 기술이란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기술개발 단계가 막 진행중이고, 많은 기능들이 개념 구상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SDN은 네트워크 장비의 컨트롤 플레인과 데이터 플레인을 따로 분리시키는 것이다. 구현 모습은 컨트롤 플레인을 한곳에 집중시킨 중앙의 컨트롤러와 단순 트래픽 전송을 담당하는 여러 데이터 포트들이 연결하는 형태다. 이때 컨트롤러와 데이터 플레인이 상호 통신하는 프로토콜이 필요한데, 현재 가장 많이 개발된 게 오픈플로다. 또 컨트롤러 상위에 각종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해,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리소스를 통합 관리한다.

오픈소스로서 오픈플로와 SDN을 표준화하는 작업은 현재 여러 조직에서 이뤄지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오픈네트워킹파운데이션(ONF)이다. ONF는 지난해 설립돼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으며, 오픈플로 표준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오픈플로는 1.3 버전까지 나와 있다.

SDN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지적은 오픈플로의 1.3 버전이 몇몇 주요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나온다. 멀티패스를 지원하지 않는 게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일반 기업이 사용하기에 부족한 점도 많다. 표준화작업이 한창 진행단계이므로 기다리라는 조언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SDN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진영은 이에 적극 반박한다.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부분은 오픈플로의 컨트롤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멀티패스 같은 기능들은 애플리케이션 단에서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구글, NTT, AT&T 등 실제 상용망에 오픈플로를 적용한 기업의 존재가 기술적 미완성이란 주장을 무력화하는 가장 큰 근거라고 덧붙인다.

여기서 현재 SDN 주도세력의 면면을 보면, 인터넷서비스업체로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거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이 상용 네트워크에 오픈플로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오픈플로가 클라우드 컴퓨팅과 데이터센터 실제 운영을 뒷받침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SDN의 현재 수준이 모든 기업에서 사용할 만큼 완성된 것은 아니다. SDN은 프레임워크다. 오픈플로 컨트롤러는 애플리케이션이 전체 네트워크를 통할하기 위한 관문일 뿐이다. SDN 프레임워크의 여러 애플리케이션 모듈이 잘 구비돼야 일반 기업체에서 사용 가능해진다.

니시라(VM웨어), 빅스위치 같은 SDN 관련 솔루션업체들은 클라우드 컴퓨팅과 데이터센터에 애플리케이션 개발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일반 기업의 경우 저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현 수준의 프레임워크로 모든 요구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

■“당신의 회사는 구글이 아닙니다”

한국의 SDN 논의가 급부상한 계기는 구글이었다. 구글은 지난 4월 오픈네트워킹서밋에서 오픈플로 기반의 라우터와 스위치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국내의 오픈플로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정부산하기관의 오픈플로 논의도 이때 추진력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통신사업자와 포털업체들은 이미 내부적으로 SDN 프로젝트를 검토중이거나 진행중이었다. 통신사들은 클라우드 서비스와 복잡한 유무선 네트워크를 쉽게 관리하길 원했고, 포털업체들도 더 자동화되고 SW 중심의 인프라 관리를 원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NHN은 기업서비스인 NHN비즈니스플랫폼(NBP)의 가상화 환경에 오픈플로를 시범 적용했다. 그 결과가 최근 NHN의 데뷰2012에서 일부 소개되기도 했다.

NHN의 오픈플로·SDN 추진을 구글 흉내로 폄훼할 수는 없다. NHN도 구글처럼 대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면서, 대외 고객 대상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SDN의 기본적 목표가 대규모 IT인프라를 더 자동화된 관리로 운영하겠다는 점인 만큼 구글과 원하는 바가 같았을 뿐이다.

KT나 SK텔레콤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만하다. 두 회사 모두 내부적으로 SDN 적용을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도 클라우드 서비스와 네트워크사업의 고도화를 위해 SDN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포털업체나 통신사업자가 SDN을 고민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시중의 SDN 관련 상용 솔루션과 오픈소스들은 클라우드 서비스 운영에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또한 이 회사들은 내부 인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풍부해 SDN 추진의 기본 동력을 갖췄다.

반면, 일반 기업체들의 SDN에 대한 환상은 위험하다. SDN의 기술적 현 상태뿐 아니라 주변 환경이 갖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라 해도 내부 IT인력이 오픈소스 개발 및 운영 역량을 갖춘 경우는 극히 드물다. 외부의 SDN 전문회사도 찾기 힘든 상태다.

국내 네트워크업체 관계자는 “한국의 기업들은 IT를 생각할 때 자신들이 구글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내부의 엔지니어링 역량과 외부의 시장 성숙도를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SDN을 시도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일반 기업체의 SDN에 대한 채택은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는 직언이다. 이 관계자는 현재 기업들의 SDN에 대한 생각이 뚜렷한 실체를 갖지 못한 신기루라고 우려했다.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좀 더 현실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한국 시장의 SDN에 대한 준비상황은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인적 자원의 문제다. 국내 네트워크 엔지니어 태반이 독창적인 아키텍처를 그리지 못한다. 장비제조업체에서 제공하는 레퍼런스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는 수준에 그친다.

SDN은 인프라 운영자에게 각자 상황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역량을 요구한다. IT 엔지니어는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에 이르는 데이터센터 전반의 동작 구조와 기능을 이해해야 한다. IT조직 내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각 분야의 담당엔지니어 모두가 긴밀히 협력하고, 각자 일정 수준 이상의 개발 역량을 갖춰야 SDN의 성공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다.

한 네트워크 전문가는 “작동중인 인프라의 장애 대비에 매달려야 하는 엔지니어들에게 네트워크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다”라며 “인력과 예산을 유지하기 위해 IT조직 내 알력싸움에 급급한 조직체계 하에서도 SDN의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현 상황에서 국내 시장에 수혈할 수 있는 SDN 인력은 국내외에 퍼져 있는 연구인력 정도다. 당장 현업의 네트워크 엔지니어 중 SDN 프로젝트에 투입할 인력은 양적, 질적 모두 태부족이다.

SDN 인력부족의 문제는 오픈소스 SW 프로젝트가 겪는 상황을 똑같이 만들어낸다. 단순히 SDN 솔루션업체의 패키지를 구매한다고 끝이 아니다. SDN은 무수한 오픈소스 SW와 마찬가지로 설치 이후의 운영과 최적화에 무수한 장애물을 돌파해야 한다.

해외의 SDN 컨트롤러를 실제 업무에 적용하려면 그를 맡을 높은 수준의 인력을 내부에 갖춰야 한다. 운영자가 내부의 인프라 아키텍처를 세부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만큼 아웃소싱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SDN에 열광하는 이유 '네트워크 주도권 획득'

한국은 세계 SDN업계에서도 발빠르게 움직이는 국가에 속한다. KT는 ONF 설립에 참여한 회사로서 오픈플로 진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 시장 반응도 매우 뜨겁다.

한국에서 SDN에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네트워크 분야에 대한 오랜 숙원에 기반한다. 한국은 옛부터 통신기술 국산화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달성하지 못한 숙원사업이 네트워크 핵심 기술의 국산화였다. 정부 중심의 코어 라우터, 스위치 국산화 사업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KT의 한 관계자는 “라우터, 스위치 국산화에 실패한 결정적 이유중 하나가 하드웨어 기술이었다”라며 “장비 ASIC 개발에 실패했던 네트워크 기술 국산화가 하드웨어를 벗어나 SW로 구현되는 SDN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의 네트워크는 대부분 해외 솔루션의 차지다. 이는 국부 유출의 문제를 떠나 해외의 기술흐름에 항상 뒤처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를 만들어낸다. 세계 네트워크 시장의 얼리어댑터로 신기술에 대한 수요는 어느 국가 못지 않지만, 결국 테스트베드에 머무를 뿐이다.

SDN 개발은 단순히 데이터센터 운영 자동화란 결과만 낳지 않는다. SDN 기술이 아직 개발단계에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주도하지 말란 법이 없다.

SDN 상용솔루션 개발업체들이 아직 클라우드 서비스 운영 분야에 치우쳐 있는 가운데, 가장 빨리 일반 기업용 SDN 솔루션을 개발한 회사가 국내에서 등장할 수 있다. 국내 SDN 엔지니어가 세계 시장에 목소리를 내는 상황도 그려볼 수 있다. 니시라나 빅스위치 같은 회사가 한국에서도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우리와 매우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미도쿠라(midokura), NEC, NTT 등이 SDN 컨트롤러를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미도쿠라와 NEC는 미국의 니시라, 빅스위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SDN 표준화 주도세력으로 자리잡았다. NTT는 내부에 SDN을 접목한 경험을 외부 사업화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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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는 SDN을 장기적 안목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 서두르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경고다. 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게 선행돼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국내 SDN 분야 관계자는 “일단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고, 국내 인력을 고도화할 교육지원도 필요하다”라며 “이와 함께 엔지니어의 역량과 노력에 걸맞는 대가를 지불하는 처우 체계를 갖추고, 기술 내재화에 대한 의지를 유지하며 기다리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