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에 대한 디지털 기록

일반입력 :2012/10/22 11:03    수정: 2012/10/22 11:37

전하나 기자

‘샤머니즘’은 사라져간다. 작가는 사라져 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1985년 전국의 굿판을 시작으로 아시아 전역을 ‘신들린 듯’ 누빈 세월이 10년이 넘는다.

2006년 타지에서 들려온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 소식. 눈물 속에 49재를 치르고 정신이 번쩍 든 아들에게는 16만장에 달하는 아버지의 다큐멘터리 필름이 남아 있었다. 샤머니즘처럼 가만히 놔두면 존재 가치가 사라질 것들이었다. 아들은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게끔 해야 한다.”

유작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현실적으로 수천만원이 드는 전시회를 매번 열기는 어려웠다. 연구 논문이나 책을 내는 것도 들인 비용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높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떠올린 게 디지털이다. 작품들이 ‘디지타이징(디지털 자료화)’ 돼 포털에 인터넷 사진관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검색만으로 사라져가는 샤머니즘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이런 바람이 6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NHN은 지난달 고 김수남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유작 16만점을 디지털화한다고 밝혔다. 고 김 작가는 ‘한국의 굿’, ‘아시아의 하늘과 땅’ 등 수십 권의 사진집을 남기고 십여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는 것은 물론 각종 최고 권위의 국제사진상을 받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한 인물이다.

그가 찍은 사진 속 광경도 사람들에게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천대받는 무당, 인간과 신을 연결시키는 의식의 현장. 고 김 작가가 담아낸 장면 전부다.

김 작가의 사진을 디지털로 옮기기로 결정한 건 그의 아들 김상훈 씨(동아일보 기자)다. “산악 지방에 한 때 거주했던 소수민족의 생활양식을 연구할 때, 아름다운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문화가 반군 활동 때문에 세계로 알려지지 못할 때, 아버지의 사진들은 충실한 문화적 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단 손에 닿는 곳에 있다면 말이죠.” 그가 아버지의 생전 작업실 한 켠에 놓여 있던 사진을 밖으로 들고 나온 까닭이다.

왜 디지털일까. “사진들이 ‘검색되면’ 어떨까 싶었어요. 사라져가는 기록을 가장 잘 보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인터넷이니까요.” 김 씨가 아버지의 사진을 알리기 위한 고민을 하던 당시 구글은 ‘구글 아트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정보를 디지털화해 모두가 쉽게 접근하게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바로 구글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아직 유사한 사례가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NHN과의 만남은 우연에 가까웠다.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남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NHN 관계자에게 지나가는 말로 ‘구글이 거절했다’고 말했더니 곧바로 “우리랑 하자”는 제안이 돌아왔다. 이 일을 맡게 된 한성숙 네이버서비스 1본부장은 김수남 작가의 유작 전시회 기념책자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아버지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16만장을 전부 디지타이징하는 조건으로 비영리목적의 2차 활용을 허용했다. 저작물에 대한 사용료도 ‘0원’이라는 파격적 대가에 합의했다.

NHN은 3명의 전담직원을 배치, 현재 기술로 필름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스캔을 시작했다. 이르면 연말쯤 작업이 완료될 예정이다. 내년이면 네이버에서 고 김 작가의 이름을 검색하는 것만으로 미지의 세계를 눈 앞에서 맞닥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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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특별 페이지가 만들어지면 동료 사진가, 인류학자, 민속학자들이 본 아버지, 그리고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는 것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디지타이징이 끝나고 돌려받게 될 원본 파일은 국가기록원, 박물관 등에 기증할 계획도 있다.

“아버지의 사진 뿐만 아니라 각자가 보관해 온 사진, 글, 화가들이 공개하지 않은 그림들…세상에는 아직 ‘장롱 속에 있는 보물’들이 많습니다. 이들 기록에 대한 디지타이징 작업은 계속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