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들을 당혹시킨 애플의 3대 반전

일반입력 :2012/10/18 22:31    수정: 2012/10/19 16:58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세계 모바일기기 시장 선두를 달리는 업체다. 세계 각지에 400곳 가까이 운영중인 애플스토어 소매점과 함께 몇년새 회사 규모와 사업영역을 확 키웠다. 국내서도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중심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뒤 그 제품간 통합성과 클라우드 연동으로 윈도 컴퓨터에 밀려온 맥OS PC 사업까지 늘렸다는 게 업계 평가다.

일례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말까지 회사는 세계 6만3천명 이상 정직원을 뒀다. 최근 연매출도 1천488억달러(약 164조3천억원) 규모다. 애플은 지난해만 아이폰 7천만대, 아이팟 4천만대, 아이패드 3천만대 이상을 팔았다.

또 회사의 모바일기기 3종은 각각 4천가지도 더 되는 타사 제품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iOS 점유율은 조사업체 넷애플리케이션즈 기준으로 63%를 웃돌고 스탯카운터 자료로 봐도 23% 이상이다. 주력제품인 스마트폰의 경우 높은 재구매율로 제품 사용자 충성도도 입증했다. 시장조사업체 UBS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아이폰 사용자 89%가 다시 아이폰을 샀을 정도다.

이는 회사가 시장상황에 맞게 제품 하드웨어(HW) 설계구조나 소프트웨어(SW) 구성요소를 전략적으로 변화시켜 온 성과다. 애플도 이윤추구라는 대원칙을 뒷받침하기 위해, 좋게 말하면 혁신과 유연성을 발휘한 것이고 나쁘게 보면 고집을 꺾어온 이력이 적잖다.

제품 사용자와 업계에 중대 변화를 초래한 몇몇 선택은 일종의 '반전'으로 비쳤다. 그 내용은 애플과 그 제품에 열성적인 팬들을 '멘붕'에 빠뜨리거나 세간의 비웃음을 사게 만들었다. '내가 아는 애플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거나 뜻밖이란 점을 인정하면서도 '숨은 필연적 이유가 있을 것'이라 감싸주는 애호가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주요 사례로 ▲중앙처리장치(CPU)를 IBM과 협력 개발한 '파워PC(PPC)'에서 인텔 x86 칩으로 변경 ▲아이폰과 아이팟터치 화면크기를 3.5인치(약 8.9cm)에서 4인치(약 10.2cm)로 확대 ▲iOS6 버전에 선보인 지도 서비스 품질개선을 수작업으로 진행, 3가지를 들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다음 주 출시가 유력한 아이패드 미니의 등장도 일종의 전향적 시도로 읽힌다.

■인텔맥, 파워PC 아키텍처의 종언

현재 애플이 만드는 PC는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처럼 인텔 x86 계열 프로세서를 쓴다. CPU뿐아니라 맥 컴퓨터를 조립하는 부품들이 모두 윈도용으로 쓰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부트캠프'란 SW를 쓰면 맥에 윈도를 설치해 쓸 수 있다. 불법이지만 일반 PC에 코드를 조작한 설치프로그램으로 맥OS를 적용하는 '해킨토시'도 구현 가능하다.

이는 처음부터 그래왔던 게 아니라 애플이 기존 맥 운영체제(OS) 설계구조를 대수술함으로써 실현된 것이다. 맥에서 윈도와 그 프로그램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편리하지만, 그 단초가 된 변화를 초기 맥 애호가들은 상당히 꺼렸다. 당시 이들이 즐겨 쓰는 PPC기반 맥용 SW를 향후 인텔맥에서 쓰지 못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국내 맥OS와 iOS용 소프트웨어(SW) 개발 전문업체 한 곳의 대표는 당시 나를 포함해 스스로 애플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적잖은 사람들은 절대 애플이 PPC를 버리고 인텔CPU를 전면 채택하지 않을 거라고 어느정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며 그런데 애플이 실제로 그렇게 결정했다는 사실을 접하고나서 많은 이들이 허탈해 했다고 회고했다.

일단 애플은 PPC기반 맥을 단종시키려고 지난 2006년부터 자사 PC에 인텔CPU를 쓰기 시작했다. '클래식'이라 부르는 맥OS 9 이하 버전과 달리 인텔칩과 PPC에서 함께 돌아가는 맥OS X을 등장시키면서다. 여기서 X는 알파벳 '엑스'가 아니라 숫자 10을 가리켜 '텐'이라 읽혔다.

애플은 이어 2010년부터는 모든 맥PC를 인텔CPU만 써서 만들기 시작했다. PPC 전용SW를 인텔 기반 맥에서 돌리게끔 만들어준 기술 '로제타'도, 2011년 맥OS X 10.6 라이언을 내놓은 뒤 완전히 지원을 끊었다. 이로써 PPC 기반 맥 컴퓨터의 명맥을 그 전용 SW와 함께 완전히 중단시켰다.

업계는 6년전 애플이 '인텔맥'을 함께 만들려하자 PPC 아키텍처를 버릴 가능성을 점쳐왔다. 정작 그 가능성을 애써 부인한 것은 스스로 '애플을 잘 안다'고 여겼던 일부 구버전 맥 사용자들이다. 어쩌면 애플이 PPC 아키텍처를 버리지 않길 바라는 '희망사항'을 얘기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시장 흐름과 달리 기기 하나를 5~6년 이상 쓰는 경우가 많았고, 업무상 필수적이던 프로그램이 인텔맥에 지원되지 않을까도 걱정했다.

■4인치 화면, 대세와 절충? 옹색한 고집?

애플은 지난달 4인치 화면이 달린 아이폰5를 선보였다. 처음으로 3인치 화면을 벗어난 스마트폰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거의 1년 전부터 여러 외신과 루머를 통해 예측됐다. 화면비율이 3대2에서 16대9 와이드 해상도가 될 것도, 단말 출시 전 배포된 개발자용 iOS6 베타버전의 시뮬레이터가 640x1136 화소를 표현한다는 정보를 통해 미리 알려졌다.

다만 앞서 애플은 아이폰 초창기부터 약 1년전 출시한 4S 모델까지 3.5인치 디스플레이를 지켜왔다. 화소수를 가로세로 2배씩 늘려 해상도를 4배로 만든 '레티나디스플레이'로 한차례 바꾸긴 했지만 물리적인 화면 크기는 3.5인치를 유지한 것이다.

아이폰5 출시전까지 그 배경에 대해 국내외 iOS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개발자나 애플 제품을 오래 써온 애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이 오갔다. 그중 기존 제품들과의 경험 일관성을 깨뜨리고 한동안 앱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지게 될 부담도 늘릴 우려가 있다는 근거가 제법 설득력을 얻었다. 애플 입장에서 HW 측면의 디자인 완성도를 깨뜨리기 싫을 것이란 주장도 함께 묶여 나왔다. 그래서 애플이 아이폰5부터 화면비율과 해상도를 바꾸리란 루머가 헛소문일 것이라 여기는 분위기였다.

3.5인치를 유지해온 추정 근거에는 단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생전 3.5인치 크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란 얘기도 있다. 어느 디자이너는 '한 손으로 터치 조작이 가능한 평균 범위에 맞춘 것'이란 주장도 했다. 어쩌면 단순히 비용 절감 때문일 수 있었다.

결국 최신 아이폰 화면은 4인치다. 어쩌면 '대화면'이란 사용자 요구와 기존 애플의 고집을 절충한 최적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폭을 유지한 채 길이만 늘려 화면비율을 바꾸면서 와이드 동영상같은 콘텐츠를 위아래 여백없이 보여줄 수 있게 됐고, 스프링보드에 표시되는 앱도 4줄에서 5줄로, 아이콘을 12개밖에 못 담던 폴더 공간은 16개까지 늘렸다.

또 기존 단말기와 다른 화면비율도 아이패드에서 아이폰 앱을 돌리는 것처럼 검은 여백을 남기는 식으로 실행되게 하거나, 자동으로 해상도 비율을 맞춰주는 레이아웃 조정 기능을 쓰게 만들었다. 물론 HW 파편화에 따른 앱개발 비용 증가는 피할 수 없게 됐지만 우려했던 사용자와 개발자 입장의 불편은 비교적 '우아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다.

■'디지털 지도 수정을 아날로그 감성으로'

구글은 아이폰에 지도 앱, 유튜브 동영상, 사파리 브라우저 검색기술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이제 안드로이드 제조사들과 손잡고 iOS 생태계를 위협중이라 애플은 그 의존성을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지난달 iOS6 업데이트와 아이폰5 출시 후 세간의 관심은 애플이 직접 서비스하는 자체 지도 앱에 쏠렸다. 그런데 막 등장한 애플 지도는 깨지거나 누락된 이미지, 잘못된 지명과 부실한 데이터 등 오류 투성이였다. 애플은 구글 의존성을 벗기 위해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고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국내 사용자들은 포털 지도와 통신사 내비게이션을 쓰면 그만이란 반응을 보였지만 구글맵 의존도가 높았던 해외서는 달랐다. iOS 내장 지도를 써온 위치기반서비스(LBS) 앱 개발자들도 사용성 저하에 우려를 나타냈다. 결국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부실한 지도 앱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 달 하순 외신에 따르면 구글의 지도 담당 인력은 7천명을 웃도는 것으로 확인됐다. 애플이 그보다 적은 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애플이 서비스 개선을 위해 지도 DB업체와 제휴하거나 다른 인수합병을 추진할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나 이달초 애플관련 블로그들에 따르면 회사는 '직영점 애플스토어 직원을 동원해 매장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데이터를 검증하고 첨삭한 자료를 본사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 IT블로그는 직원을 구글 지도담당 인력만큼 더 투입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온라인에선 역시 지도 수정에도 감성이 묻어나는 애플이라는 빈정거림도 있었다.

■한가지 더…아직 보여줄 게 남았다

7.85인치짜리 아이패드 미니가 나올 것이라던 관측이 결국 사실로 굳어졌다. 유출된 시제품, 단말기, 다음주로 예고된 공식발표에 이어 내달 2일부터 시판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외신을 탔다.

애플은 이제껏 9.7인치 아이패드만을 내놨다. 과거 스티브 잡스는 삼성전자가 7인치 갤럭시탭을 내놓은 다음달 7인치는 너무 작다는 것을 실감케 되고 더 큰 단말기를 출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삼성은 이를 입증하듯 첫 7인치 태블릿 '갤럭시탭' 후속 제품으로 10.1인치, 8.9인치 단말기를 줄줄이 내놔 빈축을 샀고 7인치 태블릿 시장은 없다는 평까지 들었다. 그런데 올상반기 구글 넥서스7, 아마존 킨들파이어, 삼성 갤럭시탭2, 심지어 반즈앤노블의 누크까지 7인치 휴대기기 시장에 다시 뛰어드는 움직임이 확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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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치대 미니아이패드 등장설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7인치 태블릿 시장에서 홀로 뛰고 있을 무렵에도 돌았다. 다만 지금은 그리고 추측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가 훨씬 늘었다. 애플이 뭔가 더 보여줄 거라는 행사 초대장을 뿌리기에 이르러 신빙성이 높은 것이다.

애플은 결국 시장점유율을 늘려 대중화로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기업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과거 파편화, 앱 최적화 부담, 시장성 부재를 근거로 7인치대 아이패드의 출현 가능성을 일축한 애플 팬들이 막상 실물을 접한 뒤엔 그 말과 생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