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지독한 특허집착...그 놀라운 실상

일반입력 :2012/10/09 17:00    수정: 2012/10/09 17:36

이재구 기자

잡스의 지독한 특허 집착 배경은 지난 2006년 싱가포르의 MP3P업체 크리에이티브에 1억달러의 특허침해 배상금을 지불한 데서부터 시작됐다. 크리에이티브사는 아이팟에 사용된 유저인터페이스(UI)가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했고 3개월 만에 배상금을 받아냈다.

이어 새 아이폰이 나오자 잡스는 임원과 엔지니어를 불러들인 가운데 “아이폰에 대한 모든 것을 특허화 해야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애플직원이 꿈꾼(아이디어낸) 것까지 출원해 특허등록이 되지 않더라도 특허출원하고, 광범위하고 모호한 내용에 대해서도 특허를 확보하는 정책을 폈다. 이로 인해 IT업계가 파괴적 특허확보 경쟁에 들어갔다는 애플 출신 엔지니어들의 증언도 나왔다.

애플은 시리에 대한 음성인식 특허를 출원해 9번이나 거부당한 끝에 지친 심사관으로부터 10번 째 출원만에 결국 특허를 확보했다.

구글 전임원으로부터는 “애플이 특허침해소송을 해 와 이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애플은 이를 원치 않는 듯 태도를 바꿔버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8일 ‘특허, 칼로 사용됐다(The Patent, Used as a Sword)’는 제하의 기사에서 잡스의 특허집착과 애플의 특허제일주의 정책, 이를 통해 경쟁자들에게 칼끝을 겨누어 온 애플의 특허전략과 경쟁사 죽이기의 실상을 소개했다.

또 지난 2년간 총 200억달러가 소요된 특허소송비용은 화성에 큐리오시티 탐사로봇을 8번 보낼 수 있는 액수라며 무자비한 특허출원 및 소송비용 남발의 폐해를 함께 지적했다.

보도는 애플 전임원, 지난 2006년 실리콘 밸리를 뒤흔들고 희생양으로 물러난 애플 전 고문변호사 낸시 하이넨, 구글 임원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낸시 하이넨은 지난 2006년 애플 재직시 직원 스톡옵션과 관련, 과거시점을 기준으로 스톱옵션수익을 불려준 이른바 ‘백데이팅 스톱옵션 스캔들’의 희생양이 돼 물러난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잡스, 1억달러 특허침해 배상금 이후 특허 집착

크리에이티브는 싱가포르에 있는 다국적기업으로 초기에 노마드,젠 같은 MP3플레이어 제품을 만든 회사로 지난 2001년 UI특허를 미특허청에 출원해 특허를 확보한 기업이다.

아이팟에 사용된 UI특허는 지난 2005년과 2006년 5월 크리에이티브에 허여됐고 크리에이티브는 애플의 아이팟특허에 대해 특허침해 소송을 냈다. 잡스는 소송 3개월 만에 크리에이티브에 1억달러의 특허침해배상금을 주고 타결하면서 “크리에이티브는 이렇게 초기에 특허를 확보하게 돼 매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저 유명한 잡스와 애플의 특허집착이 시작됐다.

애플 전 임원에 따르면 잡스의 특허집착은 크리에이티브에 1억달러 특허침해 손해배상을 한 이후 2007년 1월 아이폰 공개 때부터 이어졌다.

비밀유지 계약에 따라 익명을 요구한 그에 따르면 아이폰이 만들어진 어느 날 잡스가 개인적으로 임원, 엔지니어들을 부르더니 “우리 아이폰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특허를 내야겠어”라고 말했다.

낸시 하이넨 전 애플 고문변호사는 잡스의 특허 집착에 대해 “그의 태도는 애플의 누군가가 꿈이라도 꾼 것은 모두 특허출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애플직원이 꿈이라도 꾼 것은 모두 특허출원해야

곧 애플의 엔지니어들이 이 월례 ‘발명공개세션’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느날 한 SW그룹 엔지니어가 3명의 특허 변호사를 만났다.

이 행사에 참석했던 애플의 엔지니어들에 따르면 당시 한 변호사는 첫 번째 엔지니어가 웹브라우징 때 유저 선호사이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자 “그건 특허야”라며 노트에 적었다. 또다른 엔지니어는 일반적인 특허출원에 약간의 수정을 하고 있다고 하자 “그것도 특허야”라고 말했다. 세 번째 엔지니어가 자신의 팀은 일부 SW를 정비했다고 언급하자 “그것도 특허”라고 말했다. 애플의 전직변호사는 “비록 이 특허를 출원한다 하더라도 승인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애플은 출원하려했다”면서 “그 밖의 아무 것도 없더라도 또다른 회사가 이 아이디어에 대해 출원하는 것을 막아 준다”는 생각을 전했다.

엔지니어, 애플 베테랑 들은 12개 이상의 특허가 이런 식으로 출원됐다고 전했다. 또 이 모임에 참석했던 변호사는 “나는 이 모임 참석을 거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시의 한 엔지니어는 자신은 “기업이 기본SW컨셉트를 소유하도록 허용되면 안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NYT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했다.

보도는 “엔지니어들은 이후 IT업계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불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애플이 광범위하고 모호한 기술을 바탕으로 소유권에 대해 푸시하자 파괴적 특허경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제임스 베센 하버드대법대교수는 “그런 광범위하고 모호한 특허출원이 승인되자 특허경계가 모호해 졌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침해했다고 소송하는 일이 정말 심각한 수준까지 됐다”고 꼬집었다.

■애플, 10년간 축적된 4천100건 특허로 경쟁사 겨냥

애플은 특허를 확보하려 노력해 온 결과 지난 10년간 출원된 특허숫자는 10배로 늘어났다.

찝어서 화면을 확대하는 핀치투줌 기술,태블릿컴퓨터용 자석커버, 애플스토어의 계단인 유리계단 특허 등이 이 기간 동안 확보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이래 애플이 확보한 특허가 4천100개에 이르자 경쟁자들을 대상으로 이 특허 칼(Patent sword)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지난 2010년 안드로이드 폰을 만드는 HTC를 시작으로 이듬해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폰 등을 대상으로 한 특허공세의 포문이 시작됐다. 노키아, 모토로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어 특허소송전은 MS가 모토로라를 제소하고, 모토로라가 애플과 리서치인모션(림)을 제소하고, 림은 비스토를 제소하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특허소송전이 이어졌다.

물론 애플도 지난 2006년 이래 135건의 특허소송을 당한다. 이들 소송의 대부분은 특허괴물들로부터 당한 것이었다. 기업 가운데에서는 무소불위였던 셈이다.

보도는 하지만 이러는 사이에 IT산업계의 경쟁력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해 나온 보스턴대 보고서는 “SW와 전자분야의 특허, 특히 스마트폰 분야의 특허관련 출원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의 연구개발비용을 20%나 늘어나게 해 소비자에게 특허세를 내게 해야 할 만큼 기업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특히 IT공룡기업들의 특허전쟁은 IT성장의 원동력이 됐던 참신한 아이디어 기반의 벤처 창업의지를 꺾는다는 우려감을 높이고 있다.

하이네 전 애플 고문변호사는 “특허변호사가 록 스타처럼 인기를 얻는다면 이는 산업계가 뭔가 잘못 돌아가는 증표다”라고 말했다.

■ 9번이나 거절당한 시리 10번만에 특허확보

애플의 특허집착을 시리 특허출원 및 확보(미특허 8086604)과정을 보면 잘 나타난다.

시리의 최초 특허 출원시 이를 심사했던 라힘 호플러 미특허청 심사관은 “음성 텍스트기반 검색엔진은 명백히 기존 아이디어의 변형이었다”고 말했다.

레이몬 페르시스 심사관은 애플이 지난 2007년 시리를 특허 출원했다가 거부당한 출원서를 다음번에 가져왔을 때 출원서 상의 ‘문서(document)’라는 ‘정보아이템(items of information)'이라고 제목만 바꿔 가져오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후 5년간 애플은 이 출원내용을 거듭 수정했고 그 때마다 거부당했다.

특허전문가인 아르틱 라이 듀크대교수는 “시리 특허출원 및 허여과정에서의 많은 어려움은 이 과정에 많은 잘못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애플이 처음으로 시리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을 때엔 이론적인 제목인 ‘유니버설 인터페이스’라고 쓰여있었으며 이는 사용자들이 인터넷,기업DB,HDD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SW가 기능하는지에 대해 개괄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공하지 않았었다. 단지 일부 사람들이 키보드를 사용하는 대신 검색어를 말할 수 있다고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애플, 구글, MS, 뉘앙스는 물론 많은 다른 회사들이 개발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NYT는 ‘출원된 특허기술을 지속적으로 출원하면 비용이 쌓여가지만, 출원내용을 바꿔가면서 심사관을 지치게 하면 결국 70%정도는 특허가 허여되며 결국 이런 특허출원은 때로 효율적인 것이 된다’며 특허심사제도의 허점을 꼬집었다.

시리 특허출원은 지난 2007년 첫 특허등록을 거부당한 이후 2008년 3번, 2009년 한 번, 2010년과 2011년에 한번씩 거부당하다가 결국 지난 해 12월 애플은 시리 특허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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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애플은 지난 2월 삼성전자의 17개 단말기를 대상으로 시리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SW특허비평가인 오리일리미디어의 팀 오라일리CEO는 “특허는 정부가 부여한 독점이며 우리는 이를 다루는데 있어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애플이 스마트폰 산업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