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3사, ‘포스트 인터넷 실명제’ 준비 착착

일반입력 :2012/09/18 08:49    수정: 2012/09/18 09:48

전하나 기자

‘포스트 인터넷 실명제’ 방안이 본격화된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대응책 마련에 고심했던 국내 업체들이 게시판 실명 인증 절차를 폐지하는 대신 모니터링·필터링 시스템 고도화에 나선다.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등 국내 포털 대표 3사는 이르면 이달 중 실명제를 완전히 폐지한다. NHN은 뉴스에 한해, 다음과 SK컴즈는 뉴스와 더불어 각각 다음 아고라에, 네이트판에 이 같은 방침을 적용한다. 이에 따라 사용자들은 곧 로그인 없이도 게시글을 올리거나 기사 댓글을 달 수 있게 된다.

다만 익명성의 뒤에 숨어 소위 ‘악플(악성댓글)’이 활개칠 우려가 있는 만큼 모니터링 및 스팸, 어뷰징(작위적 노출 경쟁), 유해물 필터링 시스템 재정비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포털 1, 2위 사업자인 NHN과 다음은 500여명 가량 되는 모니터링 인력에서 댓글 부분 인력을 각각 2배씩 증원하기로 했다. SK컴즈는 현재로선 인력 증원 계획은 따로 없지만 실명제 폐지를 우선 적용하는 네이트판에 집중 모니터링을 실시, 패널티에 관한 정책 변경을 전반적으로 검토 중이다. 신고된 댓글은 일단 자동 블라인드시켜 관리자 확인 후 모니터링 기준에 따라 재게시 등을 결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들 사업자는 개편에 있어 무엇보다 이용자 중심적인 규제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주안점을 맞출 생각이다. 모니터링 강화 등을 진행하다 보면 사실상 사적 규제의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김유향 국회 입법조사처 팀장은 “민간에 의한 과도한 임시조치 남발은 이용자에게 또 다른 규제로 다가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자들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이용자 권리 침해 분쟁이나 각종 역기능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사업자 몫이 되는 탓이다. 한종호 NHN 정책실 이사는 “사업자가 자율규제 공포로 인해 사적 검열로 가게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황성기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건전한 이용자문화는 ‘피어 리뷰(peer-review, 동료간 검증과 평가)’ 도입을 통해 달성 가능하다”며 “포털사들은 이용자들의 자기정체성 확인을 통한 자발적 자기규제가 가능토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NHN은 ‘자기 댓글 모아서 보기’ 기능을 마련, 이용자의 자기평가와 성숙된 댓글 문화를 유도한다. 다음은 현재 아고라에만 적용돼 있는 댓글 및 게시글 입력 시 악플 방지 문구 삽입을 늘리고, 소셜댓글 역시 확대 적용해 일반 댓글보다 노출을 우선함으로써 이용자 정체성 확인에 기반한 댓글 문화를 조성해간다는 방침이다. SK컴즈도 네이트 뉴스 댓글에 ‘클린 지수’를 운용, 악성댓글 자제를 호소할 계획이다.

NHN은 모바일 통해서도 이용자들이 유해 댓글을 손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앱에 관련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다. ‘네이버 그린 인터넷’에 콘텐츠도 대거 확충한다. 다음은 ‘클린 캠페인’을 상시 진행한다.

실명제 폐지, 포털에는 과제이자 기회

실명제 폐지는 포털 사업자들에게 새롭게 부여된 과제인 동시에 기회로도 작용할 전망이다. 모바일이라는 큰 흐름에 직면하면서 PC 기반의 시장 점유율이 크게 줄어 고민에 빠졌던 사업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용자 유입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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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 문화가 활성화되면 간편한 로그인 기반의 트위터, 페이스북 등 외산 SNS들에게 시장 패권을 내줘야 했던 포털들이 반등을 노릴 수도 있다. 소셜그래프를 기반으로 설계된 외산 SNS에 비해 국내 포털은 검색엔진을 바탕으로 정보 공유보다는 정보 검색에 주된 역량을 한정시켜 이용자들의 자발적 참여가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단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실명제 폐지로 포털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들은 이행해야 하는 사회적 책무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데 유의해야 하는 한편 최근 트위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평사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익명으로 마음껏 쏟아내는 ‘○○옆 대나무숲’ 계정이 잇따라 개설되는 것처럼 사회적 공감을 담아내는 인터넷 문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