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먹이던 소년, 애플의 심장을 겨눴다

이준우 팬택 사업총괄 부사장

일반입력 :2012/09/10 09:00    수정: 2012/12/17 20:39

김태정 기자

방과 후 어둑해질 무렵까지 소를 돌봤다. 여물을 베다가 낫에 다친 흉터들이 손에 늘어갔다. 풀어둔 소가 산으로 올라가면 곤욕이었다. 얼른 돈 벌어 울타리 높은 목장을 차리고 싶었다.

고향 강원도 홍천을 떠나 낮선 구미의 공고 기숙사서 죽도록 공부했다. 조기 취업이 목표였으나 성적이 전국 톱클래스까지 오르자 욕심이 났다. 농장 주인을 포기(?),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포항공대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대한민국 휴대폰 산업 리더로 꼽힌다. 이준우㊾ 팬택 사업총괄 부사장의 인생 스토리다.

상암동 팬택 집무실서 만난 이 부사장은 여전히 시골 목동의 분위를 감추지 못했다. 털털한 말투와 ‘고향 이미지’가 손에 낫 자국처럼 영 없어지지가 않는단다.

“소 키울 때부터 편해지고 싶다는 욕심이 많았어요. 모순이지만 편해지고 싶어 노력했더니 사람들이 ‘대박’이라고 말해주는 결과물들이 생겨났어요. 소가 못 도망갈, 울타리 목장 가져보겠다고 시작한 공부였는데...”

‘이준우’라는 이름은 일반에 생소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 1999년 현대큐리텔 재직시절 만든 19.8mm 두께 폴더폰 ‘걸리버 메이트(Gulliver mate)’가 ‘이준우 데뷔작’이다. 세계 최초로 20mm 미만 두께 폴더폰이 등장한 장면이다.

이것도 중독인지, 이 부사장은 세계 최초 타이틀 제품을 계속 쏟아냈다. 450㎒ 주파수 휴대폰(CDMA450)을 처음 만들어 해외에 수출, 2000년대 초 팬택&큐리텔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카메라 내장 휴대폰도 그의 손에서 처음 나왔다. 근래 팬택이 ‘세계 최초’라며 스마트폰에 탑재한 각종 기능들 역시 마찬가지다.

■“팬택은 절박하다, 그리고 강하다”

순탄치는 않았다. 팬택의 연구소장을 맡은 2007년부터 가시밭길은 더 험해졌다. 스마트폰 시대에 들어서자 삼성전자와 애플 등 공룡 싸움에 비집고 들어서야만 했다. 달력 넘어가듯 단순 판매량만 늘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팬택의 연구인력 규모는 여전히 1천900여명, 경쟁 대기업의 1/10 수준이다. 이 마저도 디자인과 품질관리 등의 인력을 포함한 수치다.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이 부사장을 올 초부터 ‘사업총괄’로 임명했다. 연구 뿐 아니라 경쟁사들과의 기싸움에 선봉으로 서라는 뜻이다. “우리는 절박해요. 남들이 잘한다고 칭찬해주지만 하루하루가 매우 어려워요. 글로벌 공룡들도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는데 우리는 더 그렇습니다. 공룡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 때로는 그 이상의 제품으로 맞불을 놓으려고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

피해갈 수 없는, 삼성전자와 애플에 대한 얘기도 과감하게 꺼냈다.

“삼성전자나 애플의 신제품에 빠르게 맞불을 놓자. 그리고 그들에게 밀리지 않는 기술을 선보이자. 이런 각오를 동력으로 듀얼코어, 쿼드코어, 모바일 클라우드 등을 만들어 세계적 호평을 받아냈습니다. 부족한 자원 때문에 한계가 어쩔 수 없는 마케팅 부문만 제외하면 결코 밀리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팬택이 잘 해왔다는 얘기는 더 이상 뉴스감도 아니다. 워크아웃 기간을 포함해 올 2분기까지 20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왔다. 지난해 미국 AT&T가 꼽은 최우수 협력 제조사는 삼성전자도, 애플도 아닌 팬택이었다. 노키아와 리서치인모션 등 공룡들이 추락했지만 팬택은 생존을 넘어 진화했다. 워크아웃은 올해 시작과 함께 끝냈다.

■3G 스마트폰, 왜 없어졌나?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팬택의 질주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여전히 자원이 부족한 ‘다크호스’임은 그대로다. 체력전, 장기전에 들어서도 살벌한 스마트폰 시장서 지분 확보가 가능할까. 더 보여줄 것이 얼마나 남았을지도 궁금하다.

“스마트폰 시장서 누군가의 독식이 오늘날처럼 심해질지 몰랐습니다. 거대 경쟁사와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까지는 퀄컴처럼 휴대폰을 제조하지 않는 부품업체들과 거래를 확대, 빠르게 제품을 내는 전략이 통했지만 앞으로는 모릅니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우선, 기술을 이끈다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팬택이 일반 휴대폰, 요즘은 3G 스마트폰 전력을 확 줄이고 LTE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부족한 자원을 최대한 크게 활용하는 게 관건입니다.”

“1차 목표는 국내 안착. 남들은 어느 정도 됐다고 말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이 부분이 돼야 해외 파트너들이 우리를 더 찾고, 부품조달이 수월해집니다. ‘영속’을 논할 때 제시할 주제로는 작아 보이지만 ‘현실적인 핵심’입니다.”

지난 10년간 팬택이 연구소에 쏟은 투자액은 약 2조원에 달한다. 워크아웃 기간에도 매년 2천500억원~3천억원을 투자했다. 무모한 승부로 보였지만 팬택의 성공 DNA로 자리 잡았다.

■포식자, 비밀병기, 격랑 속으로

팬택의 올 연말 성적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애플 아이폰5(가칭) 출시가 임박했고,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대형 승부수를 준비했다. 팬택의 대응력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것. 이 부사장은 여름휴가는 물론, 다소 과장해 주말도 잊은 지 오래다.

올 초 박병엽 부회장은 주주총회서 “올 하반기 살아남는 회사와 사라지는 회사가 나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연말을 앞두고 팬택 내부 분위기는 더 비장해진 이유다.

“골고루 잘 사는 것이 가능한데 파이를 너무 뺏는 주자들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생태계에 침투한 외산 포식자 물고기 ‘베스(BaSS)’를 연상케 합니다. 대응 전략은 꽤 면밀히 완성했어요. 우리 연구소 기술력을 믿습니다.”

구체적인 제품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5.3인치 대화면과 쿼드코어 프로세서를 탑재한 LTE 스마트폰이 연말 팬택의 비밀병기다. 이미 지난 5일 전파인증을 마치고 출시 준비가 한창이다. ‘기술 포화’라는 시장 환경을 극복할 무기라고 이 부사장은 강조했다.

내년께 여유가 생기면 마이크로소프트 윈도폰 운영체제(OS) 스마트폰을 연구할 계획이다. 태블릿 사업 본격 진출도 만지작거리는 카드다. 다른 주자들도 흔히 말하는 ‘검토사항’이지만 ‘역량’에 ‘절박함’까지 갖춘 팬택에게는 의미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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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달라 했더니 꽤 살벌한 얘기가 나왔다.

“자신이 판단했던 내용을 정확한 근거 없이 바꾸는 이, 시키는 일만 하는 이, 팬택에 없는 유형인 ‘낙하산’. 제 주위에는 물론, 산업 전체에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