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EMC, 영원한 동지로 남을까

일반입력 :2012/09/07 08:24    수정: 2012/09/07 14:02

지난달 VM웨어는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 솔루션업체 니시라(Nicira)를 인수했다. 이에 VM웨어가 돈독한 파트너였던 시스코시스템즈와 경쟁관계로 돌아서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SDN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온 시스코로서 VM웨어의 SDN 행보가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업계의 시선에 대해 시스코, VM웨어는 긴밀한 협력을 유지한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두 회사는 파트너십을 강화·확대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의미심장하게 포장해 터뜨렸다. 여기에 VM웨어의 모기업으로서 시스코와 협력해온 EMC도 공식적으로 파트너십 강화를 천명했다.

표면상 VM웨어와 시스코, EMC의 관계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세 회사가 공동으로 일관된 발표를 하고, 실질적인 협력 강화의 성과물을 선보이면서 세간의 시선은 조금이나마 사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3사의 관계유지는 ▲EMC가 서버기업을 인수하거나 ▲시스코가 스토리지기업을 인수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VCE 파트너십은 변함없다”

팻 겔싱어 VM웨어 CEO는 지난달말 열린 ‘VM월드2012’ 컨퍼런스 현장에서 기자의 질문에 “시스코와 파트너십은 확고할 것”이라며 “VM웨어는 수직적 통합을 추구하는 다른 벤더와 달리 파트너 전략에 주력한다”라고 못박았다.

그는 SDN과 니시라 인수로 시스코와 관계악화 우려에 대해 “(SDN 때문에) 근본적으로 네트워크를 제거할 필요는 없다”라며 “SW는 물리적인 인프라 위에 올라가야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스코와 SDN 영역에서 파트너십을 돈독히 할 것”이라고 답했다.

시스코와 VM웨어는 VM월드2012 기간중인 지난달 27일 소프트웨어정의데이터센터(SDD) 제공에 필요한 통합 제품 및 솔루션 개발을 위해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시스코 네트워킹 및 패브릭 플랫폼과 VM웨어 클라우드 인프라 및 관리 스택 간에 깊이 있는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협업을 진행할 전담 엔지니어링 조직을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지난 6월 연례 IT컨퍼런스인 ‘시스코라이브 2012’에서 시스코는 '오픈 네트워크 환경(ONE)'이란 더 큰 그림을 제시했다. SDN을 포함하는 전체 네트워크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은 오버레이네트워크(L2oL3), 프로그램 가능한(Programmable) 개방형 API, 자사 스위치·라우터·서버·보안 제품군에 사용되는 원플랫폼키트(onePK), SDN용 컨트롤러SW와 오픈플로 에이전트 및 컨트롤러SW 등으로 구성된다.

니시라는 SDN의 핵심기술 개발을 주도해온 업체였다. 오픈소스로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가상화한다는 목표로 개발되고 있는 SDN은 시스코를 위협하는 가장 큰 잠재요소로 꼽힌다. 네트워크 기능을 SW로 구현함으로써 네트워크 장비의 필요성을 없애기 때문이다.

SDN은 네트워크업체 장비의 구성요소 중 ASIC 부분에서 담당하는 제어영역을 떼어내 x86서버 기반의 컨트롤러에 구현한다. 기존 톱오브랙(TOR) 스위치 자리엔 이더넷 포트를 가진 박스만 남는다. 패킷 포워딩, QoS, 컴플라이언스 등 각종 네트워크 기능들은 오픈소스 SW로 구현된다.

이에 시스코는 SDN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정의조차 되지 않았고, 엔터프라이즈급으로써 현실성이 부족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벤더 중심의 네트워킹 솔루션이 더 우월하다는 게 시스코의 주장이다. 결국 VM웨어는 SDD 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시스코의 SDN 입장과 일정 수준에서 타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VM웨어의 라구 라구람 클라우드인프라스트럭처 총괄부사장은 “시스코와 확장된 파트너십으로 조인트 엔지니어링이 나올 것”이라며 “VM웨어 소프트웨어를 시스코 하드웨어와 접목시키는 여러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시스코-VM웨어 간 파트너십 강화발표와 함께 처음으로 공개된 솔루션은 ‘브랜치 인 박스(Branch In a Box)란 제품이다. 시스코의 라우터 제품인 ISR G2에 VM웨어 뷰5.1를 통합해 제공한다.

시스코 ISR G2는 기업의 원격 사무소 및 지사에서 사용되는 라우터다. 라우터지만 L2 스위칭 기능과 무선랜(WiFi) 기능을 제공하며, 내부에 UCS와 스토리지를 장착해 소형 서버로도 활용할 수 있다.

VM웨어와 시스코는 브랜치인박스를 이용하면 소규모 가상데스크톱환경(VDI)을 고가 서버, 스토리지를 구매없이 구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각지에 흩어진 지사의 경우도 이제품을 활용해 쉽고 빠르게 본사와 동일한 VDI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제품은 VM월드2012 둘째날 기조연설에서 스티브 헤로드 CTO가 직접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시스코와 VM웨어가 여전히 단단한 협력관계에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스코-VM웨어-EMC “복잡하고 또 복잡한”

시스코, VM웨어, 그리고 EMC는 복잡 미묘한 관계를 가진 회사다. VM웨어는 EMC의 자회사이며, EMC는 VM웨어 지분 80% 지분을 보유하며, 시스코도 지분 5%를 갖고 있다. VM웨어는 시스코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시스코의 네트워크 솔루션과 VM웨어의 가상화 솔루션은 각사의 독자적인 기술들을 공유한다.

EMC와 시스코 역시 공동출자회사 VCE를 통해 V블록이란 IT패키지 제품을 판매한다.VCE의 V블록은 시스코의 UCS서버, 넥서스 스위치와 EMC의 스토리지, VM웨어의 v스피어 등을 사전 통합해 공급하는 제품이다.

EMC와 시스코는 VCE에 8억7천만달러를 투자했다. EMC는 VCE 지분 58%를 보유했으며, 시스코는 지분 35%를 보유했다. VM웨어 역시 VCE의 일부지분을 갖고 있다.

올해 65세인 EMC의 조 투치 회장과 63세인 시스코의 존 챔버스 회장은 공식적인 협력사로서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끈끈한 친분을 과시하는 사이기도 하다. HP, IBM, 델 등이 네트워크, 스토리지 회사들을 인수하며 경쟁관계로 돌아서자 조 투치 회장과 존 챔버스 회장은 의기투합해 공고한 파트너 전략으로 난국을 돌파하려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게 VCE였다.

때문에 VM웨어와 시스코의 사이가 틀어진다는 건, EMC와 시스코의 사이가 틀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달말 미국의 주요 외신은 니시라를 시스코가 인수하려 했지만 VM웨어에 빼앗겼다는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시스코는 2007년 니시라 창립 당시 6억달러에 인수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논의가 진행돼 시간이 흐르면서 시스코 내부의 니시라 평가액은 7억5천만달러로 책정됐다.

지난 7월 23일 니시라는 시스코에 VM웨어가 두배의 금액을 제시했다는 내용을 통보한다. VM웨어는 니시라를 12억달러에 인수했고, 시스코에게서 낚아챈 셈이 됐다. VM웨어가 시스코를 의식해 가격을 설정했다는 증거는 없다.

보도는 또한 몇몇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EMC가 시스코의 경쟁 네트워크업체를 인수하려 했다고도 전했다. 아리스타네트웍스, 브로케이드, 주니퍼네트웍스 등이 물망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도는 시스코도 EMC의 경쟁사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작년 시스코 내부에서 EMC와 경쟁하는 유력 스토리지업체를 인수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시스코는 최근 UCS 서버의 캐시용 플래시 카드 공급업체로 퓨전IO를 선정했다. EMC가 VF캐시란 퓨전IO의 경쟁제품을 판매중임에도 이뤄진 결정이었다.

또한 퓨전IO는 EMC의 경쟁사인 넷앱과도 플래시 카드 재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시스코와 넷앱은 UCS 서버, 넥서스 스위치, FAS 스토리지에 VM웨어나 시트릭스 가상화 솔루션을 사전설치해 공급하는 플렉스포드를 공동으로 판매하는 관계다. 시스코-넷앱의 조합에선 EMC VF캐시 대신 퓨전IO가 사용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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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챔버스 시스코 회장은 최근의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VM웨어의 니시라 인수에 대한 질문에 “VCE 파트너십은 변함없다”고 답변했다. 당시 컨퍼런스콜에 참석했던 애널리스트들은 답변 당시 그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격양됐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고 목격담을 전한다.

챔버스 회장은 “EMC와 파트너십은 강고하지만, 시스코는 경쟁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열려 있는 선수이고, 그동안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보여온 우리의 모습은 매우 터프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