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은 없다”던 샤프, 60년만의 평행이론

일반입력 :2012/08/12 12:52    수정: 2012/08/12 12:55

정현정 기자

최근 일본 샤프가 1912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5천명의 인원삭감을 포함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그 동안 몇 차례 위기에도 경영진의 의지로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등 일본의 종신고용 문화를 대표해왔던 샤프의 몰락으로 일본 경제계에도 큰 충격을 몰고 왔다.

일본 지디넷은 이 같은 최근 샤프가 처한 위기상황을 전후 1950년도 상황과 비교해 분석했다. 지디넷 분석에 따르면 최근의 상황은 1950년도 당시와 매우 흡사하다. 샤프가 경영이념에서 벗어난 무리한 투자를 강행하다가 현재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일 샤프는 2012년 회계연도가 끝나는 내년 3월까지 전체 직원의 8.8%에 해당하는 5천명을 감축한다는 구조 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5만6천756명 규모의 임직원을 내년 3월 말까지 5만1천700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자연감소나 전환배치 등 인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3천명 이상의 직원들이 희망 퇴직에 의해 회사를 나간다.

오쿠다 다카시 샤프 사장은 재고, 설비, 사람이 그대로 있다면 실적은 회복될 수 없다면서 잠시의 유예도 허용되지 않는 경영상황인 만큼 가능한 빨리 과감한 전례없는 구조개혁을 추진해 실적을 회복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샤프가 희망 퇴직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1950년 이후 62년 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노동조합 측이 자발적으로 희망 퇴직자를 모집해 회사 측에 제안하는 이례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경영진의 의사에 따라 희망 퇴직을 실시하는 것은 올해 창업 100주년을 맞이하는 샤프에게 사실상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창업자이자 1950년 당시 사장을 맡고 있던 하야카와 도쿠지는 생전에 이 때를 생애 최대의 위기라고 표현했다. 이와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원 감축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1950년 위기의 발달은 전후 부흥기의 '닷지라인'(긴축재정조치)에 의한 대불황의 영향이었다. 닷지라인의 영향으로 디플레이션 기운이 강해지는 가운데 개인소비가 침체돼 샤프를 비롯한 라디오 업체들 약 80개사가 격전을 벌이면서 업체들이 매출 회복과 재고 처분을 목적으로 덤핑을 시작했다. 또 이전 라디오 모델로는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없다는 정보가 퍼지면서 대량 반품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1949년 월 평균 8만700대였던 라디오 생산량은 1950년 월 1만8천대까지 떨어졌다.

이는 현재 샤프가 처한 상황과 유사하다. 원화 약세를 무기로 세계 시장에서 가격 공세를 펼치는 한국 기업과 비교해 엔고에 직면한 샤프는 가격 경쟁에 대응하지 못하고 뒤쳐졌다. 일본 내에서 지상파 디지털 방송 완전 전환으로 TV 판매 대수가 격감하면서 지난해 하반기 TV 판매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떨어지는 등 악재가 겹쳤다.

1950년 당시 라디오 제조 업체는 불과 1년 만에 10개로 감소했다. 60년이 지난 지금 평판TV 시장에서도 사업을 철수하거나 축소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샤프는 1949년도 상반기 712만엔의 순이익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하반기에는 급감해 465만엔의 적자체제로 전락했다. 은행 차입금은 1959년 6월 1억3천200만엔까지 늘어났다. 1949년 주식 시장 재개와 함께 42엔을 호가하던 샤프의 주가는 이후 14엔까지 떨어졌다. 최근 38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한 샤프의 주가 하락도 과거와 정확하게 같은 상황이다.

당시 샤프는 유휴 시설을 매각하고 하야카와 사장의 개인 소유 토지도 매각했다. 이전에 없었던 임금 지급 지연까지 발생했다. 실제로 하야카와 사장은 수기에서 난 몰래 마지막 각오도 다지고 있었다며 적었을 정도다.

하야카와 사장은 회사를 정리하는 방법까지 고려했지만 이를 간파한 실무진들이 이대로 회사를 닫을 수는 없다며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희망퇴직자를 모집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이를 통해 210명의 인원감축이 제안됐고 조건으로 퇴직금 외에 가산금, 재고용시 우선 채용조건, 라디오 1천대 지급 등이 포함됐다.

이러한 노조와 임직원들의 노력과 함께 당시 후지은행을 필두로 하는 협조 융자에 의한 금융지원으로 샤프는 기적적으로 파산을 피할 수 있었다. 그 이후 60년 이상 샤프는 다시는 인원감축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지켜져 왔다. 이 불문율이 이번 구조조정 발표로 62년 만에 깨지게 됐다.

샤프의 올해 매출 전망은 예상치 대비 2천억원 감소한 2조 5천억엔, 영업이익은 1천200억원 감소한 마이너스 1천억엔의 적자 체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쿠다 다카시 사장은 재무 구조 개선과 더불어 규모에 맞는 경영 체질로의 전환이 요구된다면서 고정비용을 절감하고 각 분야의 구조 개혁을 진행하면서 새로운 성장 분야를 향해 가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샤프는 창업 이후 경영 이념으로 공연히 규모만을 좇지 않는다는 문장을 서두에 넣고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진행해왔다. 경쟁업체가 시설확장을 도모하던 중에도 긴축 경영 체제를 유지한 덕분에 1951년 동란 종결 이후 재계 혼란 속에서도 타격을 받지 않고 경영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65년 도쿄올림픽 이후 대불황과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에도 희망퇴직 제도를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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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카이 공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 결정 등은 결과적으로 경영이념에서 벗어나 규모를 벗어난 것에 대한 후유증이 나타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디넷 재팬은 오쿠다 사장의 발언 속에 담긴 '규모에 맞는 경영 체질 전환'이라는 문구도 이같은 경영 이념으로 회귀하려는 노력의 일부로 읽힌다면서 5천명 인원 삭감 후의 주목할만한 점은 샤프가 다시 경영 이념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는지 여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