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 연합이 오라클을 꺾어야 하는 이유

SAP HANA가 바꾸는 IT업계 지형도③

일반입력 :2012/08/10 16:11

오라클이 엑사데이터를 앞세워 IT업계에 전방위 공세를 가하는 요즘 SAP는 HANA를 통해 오라클 텃밭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에 SAP를 중심으로 IT업체들의 연합군이 구성됐다. IT업계의 세계대전이 벌어진 것이다.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했던 IT업체들은 SAP와 전과 다른 수준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하드웨어 파트너끼리 SAP HANA 어플라이언스 성능경쟁을 벌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SAP의 승리를 바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SAP 연합군에 참가한 HP, IBM, 델, 시스코, 후지쯔 등은 모두 오라클과 어떤 방식으로든 엮인다. 특히 HP와 IBM은 어느 회사보다 오라클과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회사다. 여기에 더해 연합군과 오라클 중 어느곳과도 거리를 두려는 중립국으로 테라데이타가 있다.

■HP, 오라클 십자포화 맞고 최대위기

HP는 오라클과 함께 기업용 IT솔루션 시장의 선두주자 반열에 올랐다. IBM의 메인프레임 왕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HP 유닉스와 오라클 데이터베이스의 긴밀한 동맹이었다.

10년 넘게 이어온 HP와 오라클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현재 두회사의 관계는 가장 극적으로 변했다. 오라클은 동지였던 HP를 향해 연일 공격을 퍼붓고 있고, HP는 무거운 강펀치를 맞고 휘청거린다.

두 회사의 결별은 2009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오라클이 인수한 후부터 시작된다. 두 회사의 갈등은 2010년 9월 HP CEO였던 마크 허드가 회사에서 쫓겨나 곧바로 오라클 공동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폭발했다.

HP는 회사기밀유출을 이유로 마크 허드의 오라클 이직을 문제 삼았고, 이는 법정소송으로 번졌다. 첫 갈등은 두 회사가 모종의 합의를 이루며 무마되는 듯 했다.

오라클은 이후 본격적으로 HP 유닉스를 공격한다. 오라클은 우선 HP 유닉스에 대한 오라클DB 라이선스를 썬 하드웨어 대비 4배 비싸게 조정했다. 작년 3월엔 HP 유닉스에 사용되는 인텔 아이태니엄 CPU에 대해 SW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해버렸다.

오라클은 이 발표로 HP 고객들에게 인텔의 유닉스 CPU는 곧 단종될 것이란 메시지를 던졌다. HP 유닉스에서 오라클DB를 사용하는 기업들의 하드웨어 교체를 유도할 틈을 마련한 것이다. HP는 소송으로 맞섰지만, 오라클의 발표 후 유닉스 매출이 급감했다.

엑사데이터는 DB머신으로서 HP 하드웨어를 대체하는 제품이다. HP에게 유닉스 서버는 고가 제품일 뿐 아니라, 상당한 물량의 서비스 매출을 수반하는 벨류 비즈니스다.

HP는 오라클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오토노미와 버티카를 인수했다. 버티카는 데이터웨어하우징(DW) 솔루션이며 오토노미는 데이터 검색 솔루션이다. 그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협력도 강화했다.

HP는 MS, 버티카, SAP 등 여러 종류의 데이터 분석 어플라이언스를 함께 판매하게 된다. 어느 것으로든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의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방책이다.

HP는 작년 하반기부터 CEO를 1년도 안돼 교체했고, 대규모 구조조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HP는 오라클을 꺾으면서, SAP 연합군 내 경쟁사들과도 싸워야 하는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

■오라클-IBM, 가장 요란한 1대1

IBM은 오라클과 아직 전면전을 치르진 않았다. 다만 오랜 시간 오라클 DB의 유일한 대항마로 통했던 DB2는 엑사데이터 출현 후 설자리를 더 잃어버렸다. 회사 내부적으로 고객사 DW 프로젝트에서 네티자와 경쟁하게 된 DB2는 성장의 힘을 잃은 듯 보인다.

IBM은 보유한 솔루션 포트폴리오 상으로 오라클과 가장 많은 영역에서 충돌하는 회사다. 오라클 엔지니어드 시스템 라인업과 비교할 때 장기적으로 가장 대규모의 경쟁을 치뤄야 한다.

엑사데이터가 DB2나 네티자와 경쟁한다면, 엑사로직은 웹스피어와 경쟁한다. 엑사리틱스는 ISAS와 경쟁하며, DB 어플라이언스는 IBM 스토리지와 경쟁관계다. 애플리케이션의 경우도 곳곳에서 충돌한다. 엔지니어드 시스템뿐 아니라 오라클의 유닉스 서버는 IBM 하드웨어사업의 주요 수입원인 미드레인지급 유닉스 시스템을 위협한다.

IBM은 전면적인 충돌 전에 오라클의 행군을 저지해야 하는 입장이다. 경쟁자인 SAP와 손잡게 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라클이 현재 같은 DB의 힘을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기 전 기세를 꺾어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라클은 IBM 공략을 위한 작업을 조금씩 진행하고 있다. 아직 소송전이나 노이즈 마케팅 등의 수법은 시작되지 않았다. 다만 작년부터 신규 버전의 SW를 출시하면서 IBM의 유닉스 운영체제(OS)인 AIX를 지원플랫폼에서 제외하고 있다. DB 라이선스 체계도 오라클에 유리하도록 유지하는 모습이다. 비교광고의 수위도 높여가고 있다.

IBM은 오라클의 엔지니어드 시스템에 대항하는 범용 어플라이언스를 올해 4월 출시했다. 전문가통합시스템이라고 자체 분류하는 ‘퓨어시스템’이다. 퓨어시스템은 인프라 구축시간을 줄여주는 퓨어플렉스시스템과, 애플리케이션 구축을 자동화하는 퓨어애플리케이션시스템으로 나뉜다.

IBM은 퓨어시스템에 대해 100년간 쌓은 전문지식을 집약한 제품이라고 강조한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운영체제(OS), 가상화, 미들웨어, 애플리케이션 등까지 IBM이 통합 최적화하고 테스트해 고객에게 공급한다. 오라클은 퓨어시스템에 대해 자사의 엔지니어드 시스템의 아류라며 견제하고 있다.

■시스코와 델, 사업모델의 위기

시스코시스템즈나 델의 경우 HP나 IBM처럼 오라클과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는다. 다만 오라클 엔지니어드 시스템은 시스코와 델의 비즈니스 모델을 무너뜨릴 잠재력을 갖고 있다.

오라클 엔지니어드 시스템은 내부적인 네트워크를 사용하게 된다. 이 때 사용되는 통신방식은 이더넷이 아닌 인피니밴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준 랙에 서버와 스토리지 일부를 담고 이더넷 랙스위치를 붙이는 형태를 무너뜨린 것이다.

시장에선 오라클이 네트워크업체를 추가로 인수할 것이라 예상한다. 랙과 랙, 인프라와 인프라를 연결하는 지점도 오라클 것으로 채우려 할 것이란 얘기다.

오라클의 구상대로 데이터센터 전체를 오라클 엔지니어드 시스템만으로 구성한다면, 시스코는 서버사업뿐 아니라 오랜 텃밭인 네트워크 사업까지 위협받게 된다. 단순히 x86서버 판매 확대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인 것이다.

델은 서버 판매 방식에서 오라클과 충돌한다. 델이 일반인 대상 PC사업에 주력하면서도, x86서버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델의 사업방식에 있다. 델은 x86서버를 치열한 영업으로 판매하는 게 아니라 특정 대형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단순 판매방식을 유지했다.

고객이 특정 사양으로 서버를 주문하면, 그에 맞게 조립해 배송하는 것이다. 델은 판매하는 제품에 밀도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는 무관심했다. 델의 서버를 가져다 고객이 알아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서버 고장으로 서비스센터에 문의하면 ‘택배로 부치라’는 식의 답변을 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엔지니어드 시스템은 이와 정반대의 접근이다. 오라클은 고객이 제품을 받아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IT를 공급한다. 여기에 높은 수준의 유지보수 서비스를 더한다. 엔지니어드 시스템과 유사한 벨류비즈니스 모델은 HP나 IBM 모두 경험을 갖고 있으며, 현재도 진행하고 있다.

그에 비해 벨류비즈니스에 경험이 부족한 델은 오라클의 공세를 두고 볼 수 없다. 벨류 비즈니스를 할 역량과 경험을 쌓을 때까지 시간을 벌여야 한다. 엔터프라이즈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델은 조직재편과 숨가쁜 M&A뿐 아니라 솔루션 공급 체계를 수정하면서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후지쯔, 테라데이타 “애매하네”

후지쯔가 오라클 반대편에 서는 것은 SAP 연합군 내부에서 가장 의아한 모습이다. 후지쯔는 오라클과 스팍 프로세서를 공동개발할 뿐 아니라, 각국에서 오라클 유닉스 서버를 판매할 수 있는 플래티넘 파트너기 때문이다.

오라클 유닉스 프로세서는 T시리즈와 M시리즈로 나뉘는데, T시리즈가 썬의 울트라스팍이며, M시리즈는 후지쯔의 스팍64 프로세서다. 후지쯔는 일본 시장에서 M시리즈란 이름 대신 스팍64란 이름으로 제품을 판매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2015년이면 오라클은 T시리즈와 M시리즈를 하나의 아키텍처로 통합할 계획이다. 후지쯔와 오라클의 현재 협력 관계가 그때 이후로도 유지될 수 있을 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라클 편에 서기엔 후지쯔가 얻을 이득이 크지 않아보인다.

더구나 후지쯔는 스팍 프로세서 개발비용을 회수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 갈수록 유닉스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만큼 투자회수 가능성은 줄어든다. 후지쯔 내부적으로도 유닉스 서버 대신 자체적인 x86 서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SAP HANA 연합군에 참전하지 않고 오라클과도 대립하는 회사가 테라데이타다. 일찌감치 목적별 어플라이언스란 개념을 시장에 내놨던 이 회사는 최근들어 엑사데이터의 공세에 위기를 맞았다. 오라클도 엑사데이터를 DW 시장에 공급할 때 우월한 속도를 앞세워 터줏대감인 테라데이타를 공격한다.

관련기사

테라데이타는 오라클의 엑사데이터에 대해 스토리지를 여러 서버노드가 공유하는 아키텍처라는 점을 들어 깎아내린다. 공유 아키텍처는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오라클 엑사데이터가 SW 아키텍처 상으로도 많은 한계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테라데이타가 SAP HANA에 동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테라데이타와 SAP는 그동안 BI 사업 파트너였다. SAP HANA는 테라데이타의 몫까지 노리는 구상이기 때문에 SAP와 협력을 확대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