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갑(甲)의 저주..."뿌린 대로 거두리라"

전문가 칼럼입력 :2012/07/03 15:11    수정: 2012/07/06 17:20

이정규
이정규

열정적인 사업가이긴 하지만 문학도의 이미지를 가진 지인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옥스포드 드레스 셔츠에 감청색 벨벳 자켓을 걸친 그의 모습이 너무도 멋스러워, 그날 이후 패션의 롤모델로 삼고 유심히 옷차림을 살피곤 했다. 그는 대규모 개발사업의 하청을 수행하다가 섬기던 ‘갑’의 부조리가 드러나 사업이 중지됐고, 갑이 검찰조사를 받는 동안 참고인으로 불려 다니며 고초를 겪었다.

사업을 진행할 때에는 갑의 무리한 스케줄에 자신의 일정을 억지로 맞추며 동분서주 수행하던 분이, 또 다른 무서운 갑인 검사 앞에 난생 처음 앉게 되니 그냥 죄인이 돼버린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희한한 발심이 생겼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런 갑이 어렵고 무섭다가, 나중에는 갑의 행태를 보면서 갑자기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사줄 돈이 있는 갑, 구속할 권한이 있는 갑이 자신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지만 그러한 힘이 사라져 버린다면 느끼게 될 갑의 상실감과 멘탈을 떠올리게 됐다는 것이다. ‘갑의 저주’라는 말은 그에게서 처음 들었다.

그의 말대로 갑의 저주란 “갑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저주”를 말하지만, IT업계의 동료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어떤 이는 ‘갑질’이라는 표현을 쓴다. 갑이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게 될 경우, 그들이 저지르는 사려 깊지 못하거나 예의 없는 행동을 갑질이라 비하하여 부른 것 같다. 아마도 상대인 갑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서러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러나 누구든 어떤 환경에서는 갑이 된다. 고용인으로서, 구매자로서, 상사로서, 고객으로서 때론 실수한 배우자를 다그치는 집의 마님도 갑이 될 수 있다. IT 업계에서 ‘갑’이라 하면 당연히 구매 의사결정권자가 될 것이고, ‘을’이라 하면 영업직 임직원이나 하청업자가 될 것이다.

오랜 사회생활을 을로 지낸 동료들에게 물었다. "지금껏 경험했던 나쁜 갑에게 어떤 것이 생각나? " 동료들이 답하는 갑의 부정적 행태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었다.

- 개인역량과 조직의 힘을 혼동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잘난 줄 안다.

- 조직의 이익 보다는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

- 을을 하인 부리듯이 대하며, 을이라면 손윗사람에게도 반말을 한다.

- 자신의 과오를 을에게 떠 넘긴다

-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무조건 따르기만을 강제한다.

- 부탁할 때는 비굴하게 굴기도 하지만 도와 줄 때는 끊는다.

그들에게 이러한 갑질이 어떤 부정적일 결과를 갑에게 되돌려 준다고 생각하는지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들이 말한 답은 이렇다.

- 자신의 사회적 경쟁력을 상실한다.

- 조직 내에서 승진을 못한다.

- 결과는 좋아도 과정의 트러블이 자신의 평판에 해를 끼친다.

- 조직을 떠나면 도와주려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

많은 을의 중역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갑의 상사나 동료와 한 다리 건너 관계를 맺고 있을 수 있다. 학교나 고향 선후배 사이일 수도 있고, 이전에 신뢰를 쌓았던 ‘갑/을’ 관계였을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부하직원인 갑의 말 보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닌 을의 말을 더욱 신뢰할 수도 있다. 당신이 만나는 어리숙한 을이 어떤 경우에는 갑인 당신을 아무도 모르게 해고시킬 힘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세상은 얽히고 설켜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좋은 갑은 을을 파트너로 대한다. 투명한 거래를 도모하고 가능한 한 상호 윈-윈하는 방법을 찾는다. 로직을 가지고 요청을 하고, 시킨 만큼 비용을 지급하려는 노력을 경주한다. 상대가 전략적 파트너라면 멀리 떨어진 을의 경조사에 찾아가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고위직에 근무하던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고자세로 오래 일한 임원들이 퇴직 후에 후회한다. 그런 사람은 갓끈이 떨어지니 찾아 오는 사람도 없고 외롭다” 그러므로 목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당신의 커리어는 끝이다.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 당신이 갑이라면 알아야 한다. 당신도 언제고 을의 입장에 설 때가 있다는 것. 당신이 만나는 을이 여러분의 경력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주변인과 한 다리 건너면 동창이고 친구고 지인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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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에 애플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인 스티브 워즈니악의 강연을 들었다. 그가 던진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마음에 박혔다. “I measure me with my smile.” 나름대로 번역하면 “나는 내가 얼마나 잘 웃는가로, 인생을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 평가한다”라는 뜻일 것이다. 당신이 때때로 갑이라면 이 글을 읽고 난 후부터 해야 할 첫 번째 실행 계획은 이제부터 만나는 모든 을에게 웃음짓는 일로 시작하는 일이다. 스마일, 그것이 갑의 저주를 푸는 주문의 시작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주문을 속으로 외쳐라.

“우랑바리 나바라! 갑질아 사라져라 쏭~”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