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보더리스를 넘다

문화 입은 IT, 시대를 비추다②

일반입력 :2012/06/11 11:11    수정: 2012/06/19 08:40

남혜현, 전하나 기자

오늘날 게임은 더이상 마니아들만 즐기는 하위문화가 아니다. “나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최소한 고스톱 게임 한두번 정도는 해봤을 것이다. 점잖은 척, 고상한 척 하는 이들도 이제 스마트폰 게임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는 낯선 일이 아니다.

국내 PC 게임 보급 20년, 게임은 누구나 즐기는 오락거리가 됐지만 그만큼 많은 누명도 얻었다. 게임은 그간 모든 폭력, 외톨이, 집단 따돌림의 원인으로 지적받았다. 소외와 폭력 문제의 근원이 모두 게임에 있는 양 오도를 했다. 정작 중요한 공동체 내 소통, 복지, 교육에 대한 문제는 마녀 사냥 뒤에 숨었다.

누구나 게임을 즐긴다. 유명 게임 디자이너인 제인 맥고니걸은 오히려 “게임을 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게임 예찬론’에 따르면 게이머는 음침한 방에서 혼자 게임에 몰두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쓰는 협업의 대가다.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은 각박한 현실세계서 쉽게 누릴 수 없는 동기, 보상, 승리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게임에 ‘몰입’함으로써 현실서 느끼는 좌절감을 극복하는 계기를 얻는다. 몰입 이론의 창시자 칙센트 미하이 박사는 게임을 하는 사람이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나 똑같은 경지의 ‘몰입’에 도달한다고 설명한다. 몰입은 적절한 동기를 갖춘 인간이 능동적으로 일에 참여해 느끼는 만족감이다.

이런 배경에서 최근에는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게임적인 사고와 기법을 활용해 이용자를 몰입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정의되는 이 용어는 IT산업 전분야에 핵심 원리로 자리잡는 모양새다.

해외선 게임에 대한 평가가 한발 더 나아간다. 예술의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것이다. ‘문명’의 주제곡은 미국 그래미상을, ‘데드아일랜드’는 칸국제광고제 금상을 차지했다. 또 지난해 미국법원이 게임을 책, 음악, 영화와 같은 예술로 규정하면서 게임 개발자는 예술가와 동등한 입장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됐다.

다시 한국이다. 우리 사회에서 게임은 여전히 주변문화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게임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려는 접목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가 물꼬를 떴다. 넥슨이 얼마 전 개최한 게임 관련 아트 기획전이 한 예다. 이 전시에서 게임 디렉터, 개발자, 디자이너 등은 게임 캐릭터를 컴퓨터 화면이 아닌 캔버스에 그려내고 게임에 대한 여러 이미지를 설치 작품으로 형상화하면서 게임의 예술적 가치 알리기에 나섰다.

물론 그럼에도 게임과 예술의 경계는 흐릿하다. 이 전시를 주최한 넥슨 이은석 실장이 아예 “가상과 현실, 혹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자”고 마음먹고 전시의 테마를 ‘보더리스(borderless)’로 정한 이유다.

■게임은 기술이자 상품, 또한 문화

“게임에는 기술, 문화, 상품 세 영역이 있다. 기술은 계속 눈부시게 변하니 수명이 짧고 생존경쟁을 위해 상품성은 과도하게 부각된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문화적 가치가 과소평가되는 것 같다.”

넥슨 이은석 실장은 지난 2010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상을 포함, 총 6개 부문을 석권한 ‘마비노기 영웅전’ 개발을 총괄했다. 업계에선 미래 온라인 게임 산업을 이끌 차세대 리더로 손꼽힌다. 다수의 게임팬을 보유한 스타 개발자이기도 하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문화 예술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게임에 대한 시선은 예전보다 다채로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실장은 게임을 가리켜 ‘서브컬처(주변문화)’라고 말한다.

게임이 오늘날 최신 기술과 문화를 결합한 매체로 소통 매개체로의 활용 가치가 무궁무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게이머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음침한 외톨이다. 시종일관 게임의 부정적 단면을 걱정하는 한국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이 실장은 “아직 우리가 정신적 가치의 풍요로움을 영위하기 보다 생존과 경쟁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진단한다.

그래서다. “게임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대중문화로 바라보고 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시도가 많아지면 사람들의 일상을 보다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보더리스전이 게임의 예술적 가치를 알리고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보탬이 될 거라 확신했다. 이 같은 시도가 때때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게임 회사가 특기를 살려 사회에 기여를 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도 여겼다. 이러한 생각은 김정주 창업자의 공감과 후원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붓과 조각칼을 쥐고 뚝딱뚝딱 만들어낸 작품이 10여편이다. 게임 캐릭터는 컴퓨터 모니터가 아닌 캔버스에서 뛰어놀고 가상세계 속 픽셀 조각들이 관객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에서 설치작품으로 구현됐다. 반대로 현실의 관람자가 가상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아바타가 되는 작품도 탄생했다.

“이들 작품 모두 가상과 현실, 혹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틀을 깨고 경계를 넘어 게임을 바라보는 일이 쉬워질지 모른다. 게임은 기술인가, 상품인가. 또는 문화인가. 복수의 답안지가 인정될 때까지 그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연재 순서]

①소통, 21세기 천재들의 키워드

②게임, 보더리스를 넘다

관련기사

③일상의 혁신, 습관을 바꾸다

④숨어 있던 고수들, 세상에 나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