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특허, 기술혁신의 발목을 잡다

전문가 칼럼입력 :2012/05/14 08:33

권희웅
권희웅

특허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적 장치인가? 애플과 삼성의 특허 소송 덕에 이제 특허가 갖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처럼 특허가 곧 기업의 힘이자 혁신의 원천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반면, 특허 시스템이 갖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필자는 특허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특허 소송에 휘말린 경험이 있다. 규모는 다르지만 애플과 삼성의 대결과 유사했던 기억이 있다. 기업 간의 소송은 가볍게 보면 ‘기 싸움’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실제 당사자들의 속은 그렇지 않다. 특히 벤처기업에게는 기업 존폐의 위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큰 이슈다. 개인적으로 특허는 IT와 같이 지식 기반 산업에 있어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는 것 역시 특허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IT 산업계에서 특허의 역사는 짧다. 특히 하드웨어와 달리 상대적으로 독창성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소프트웨어의 경우 더욱 짧다. 미국 특허청이 소프트웨어 특허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이 1994년의 일이다.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았을 정도다. 역사는 짧지만 특허 시스템이 갖는 부작용은 타 산업계를 추월하고 있다.

이 부작용의 피해는 고스란히 벤처기업의 몫으로 돌아온다. 얼마 전 TED에 올라온, Fark.com 창업자인, 드루 커티스(Drew Curtis)의 특허 괴물(Patent Troll)과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의 강연의 핵심은 “특허 괴물은 테러리스트다. 그들과 협상하지 말아라”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공감이 되었고 이는 필자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IT 업계에서 “특허 시스템은 더 이상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특허 괴물의 왕성한 활동이 자리하고 있다.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연구 개발 현장 그리고 이를 상품화 하는 기업의 중간 지점에 자리한 특허 괴물들의 장난질로 이미 특허 시스템은 제 기능을 못한지 오래다. 특허로 돈 버는 주체는 기업이 아니라 특허 전문 법률 회사가 된지 오래다.

열심히 제품을 개발하거나 서비스를 시장에 소개하고 나서 비즈니스가 본 궤도에 올라갈 즈음 특허 괴물이 나타나 특허 소송을 제기한다면 어떨까? 법무팀을 갖추고 글로벌 법무법인과 공조해 특허 괴물에 대항할 수 있는 대기업이 아닌 이상 대다수 중소중견기업에게는 비즈니스의 존속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중대 사안이다. 우리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특허 괴물의 관심 밖이라고 안심할 수도 없다. 특허는 비슷한 규모의 기업간 서로를 시장에서 밀쳐내기 위한 무기로도 쓰이기 때문에 특허는 어느 기업에게나 잠재적인 위협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특허 남용의 부조리, 해결돼야...

그렇다면 비상식적인 특허의 남용을 바라만 볼 것인가? 특허 남용은 기술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 아이디어의 산실이 되어야 할 벤처기업들은 연구개발에 소극적이게 되고, 더불어 혁신을 주도하는 벤처 경제는 제 힘을 내지 못하게 된다.

다행이 이런 부조리를 깨기 위해 힘을 쓰는 단체가 있다. 바로 미국의 EE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란 단체다. EEF는 나름 유서 깊은 단체다. 1990년 설립된 이 단체가 하는 일은 주요 소송 케이스에 대한 분석, 백서 제작, 업계 관계자들의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한 발안이나 캠페인 활동 등 다양하다.

최근 EEF의 활동 중 주목할 것은 지난 2월 시작된 “특허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Patent Fail: In Defense of Innovation)”라는 멋진 이름의 캠페인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특허 관련해 EEF가 특허 시스템 개혁을 위해 추진했던 프로젝트(Patent Busting Project)의 뒤를 잇는 소프트웨어 관련 대표적 활동이란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 캠페인은 현 특허 시스템이 갖는 문제점에 대한 공감 확대를 위한 교육, 특허 이슈 관련한 리소스 제공, 중장기적으로 어떤 관점에서 특허 시스템을 개혁해야 할 지에 대한 연구 등 세 가지 활동을 주요 축으로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힘 없는 젊은 기업들이 무지로 인해 특허 괴물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더 나아가 현 특허 시스템 개혁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EEF가 나선 것이다.

EEF가 지향하는 개념의 철학적 기원을 따져보자면 오픈 소스를 떠올릴 수 있다. Free and Open Source Software(FOSS) 운동에서 소프트웨어 특허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떠올려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질 것이다. GNU의 기본 취지는 EEF가 말하는 특허 시스템 개혁과 다르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혁신을 불러오고, 이를 통해 세상이 발전하도록 하자는 즉 소프트웨어 기술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철학적 공감은 서로 맞다 아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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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F가 추진하는 캠페인을 굳이 칼럼을 통해 소개하는 이유는 개발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코드로 표현해 내는 데만 집중하여 세상에 좋은 제품을 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얘기하였듯이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술이 발전해 갈수록 더 많은 특허가 등록될 것이고, 기존 특허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걸 개발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그 특허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대기업이 될 것이며, 개인개발자, 중소기업, 갓 창업한 회사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러한 차원에서 특허 제도는 기술의 발전을 오히려 방해해 버릴 수 도 있을 것 같다는 게 필자의 의견이다. 물론 극단적으로 소프트웨어 특허 제도가 폐지된다면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만 말이다.

현 시점에서는 자신이 만든 기술에 대해 특허를 내봤거나 고려 중인 개발자라면 아마 공감할 것이다. 특허 시스템은 개발자가 언제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대상이란 것을… 특허의 위험을 피해가는 것 그리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당당히 지키는 것을 누구에겐가 의존할 수 있다면 마음 놓고 개발에만 집중하면 되겠지만 대한민국 개발자 대다수가 몸담고 있는 벤처기업에서는 사정이 다르다고 본다. 개발자, 특히 중간 관리자 이상의 직급이라면 기술 트렌드 못지 않게 특허 이슈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희웅 IT컬럼니스트

리눅스 커널을 들여다 보고 개발을 해온지 어언 십수년, 현재 네트워크 장비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개발을 고민하고 있으며, 리눅스 및 커널 네트워킹과 시스템의 작동 원리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