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②SI 전문 엔지니어 구제는 관심 밖

일반입력 :2012/04/13 08:52    수정: 2012/04/13 14:57

정부가 주도하는 소프트웨어(SW) 생태계 구축전략은 SW산업진흥법 개정법률안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다만 스마트기기 등 SW플랫폼 기반 융합IT 산업을 다지는 준비 과정이라는 산학연계 프로젝트는 추진되고 있다. 초기 실행전략이 인재육성과 로드맵 수립으로 투입된 예산을 활용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인재육성과 신규분야 산업 활성화에 따라 해당 분야 성과는 시시각각 발굴, 홍보될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시기에 주목되지 못할 수 있는 기존 SW업계의 실상에 대해 짚어 보기로 한다.

최근 정부는 현행 등급분류체계를 기반으로 업계 종사자 비율을 볼 때 초급 인력에 비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중고급 인력을 늘리겠다는 방침과 함께 현재 종사자들의 임금에 직결되는 ‘SW기술자 등급제’와 ‘SW사업 대가기준’을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비현실적으로 낮은 임금 수준을 격상시키고 체계적인 경력 관리를 지원해 고급인재를 양성한다는 게 주된 목표였다.

여기서 임금 수준을 높여 줄 대상은 시스템 통합(SI) 전문 개발자고, 정부가 원하는 고급인재는 자체 솔루션이나 서비스 개발 목표를 가진 SW개발자에 가깝다는 게 ‘함정’이다. 본 편에서는 정부나 민간업체의 SI프로젝트에 동원되는 정규직 엔지니어 또는 프리랜서, 즉 SI 전문 개발자들의 고질적인 어려움을 다뤘다.

[연재 순서]

①SW생태계 전략, 이대로 괜찮은가

②SI 전문 엔지니어 구제는 관심 밖

③독립SW개발자와 벤처CEO의 고민

④공개SW없는 최신동향 대응은 모순

■SI업무와 SW개발은 다르다

사실 SI 전문 개발과 SW개발은 서로 다르다. SI업무는 프로젝트 발주사 또는 기관이 원하는 것을 만들면 된다. SW개발은 직접 참여하는 엔지니어 팀이나 기업의 이상을 추구하는 활동이다. 건축에 비유하자면 SI업무는 돈을 받아 남의 집이나 사무실을 지어주는 일이고, 독립SW개발은 돈을 들여 내가 원하는 건물을 만드는 일이다. 즉 차이는 SW를 만드는 활동이 누구의 의도를 따르느냐다.

그런데 정부는 SI 전문 개발자를 명목상 ‘SW개발자’라 부른다. SW개발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정부 규정도 SI 전문 개발자들을 얽는다. 공공정보화 사업 예산 집행에 필요한 임금과 경력 산정 방식에 대한 규정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SW산업진흥법에서부터 SW개발과 SI업무를 가려 쓰지 않은 탓일까. 그 활동에 대한 노동의 성격도 엄밀히 구분되진 않는 모양새다.

그 결과 SW개발자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영향을 미치는 대상은 대개 SI전문 개발자에 한정된다. 독립SW개발사(ISV)처럼 직접 제품화된 SW를 만들거나, 자체 사업 또는 비즈니스모델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한 이들은 거의 논외다. 이는 아무래도 나머지 SW개발자들에게 축복이다.

실제로 여러 SW개발자에게 정부의 SW관련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며 “내 세금을 좀 낭비한다 해도 평소에 방해만 안 하면 봐 주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물론 더러는 “쓸데 없는 짓 좀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그간 정부가 SW관련 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계획만으로 숱한 헛발질을 자초했을뿐 아니라 그 손길이 미치는 SI전문 개발자들이 SW산업 관련 제도로 입은 피해를 구제를 받은 사례가 거의 없어서다. 오히려 정부 지원 정책에 일선 독립SW개발자를 위한 비중이 미미한 게 다행이라는 평가다.

따지고 보면 SI종사자들에 해당하지 않는 미미한 SW개발자 대상 정책도, 현직 개발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향후 SW개발자를 지망하는 학생이나 기술 기반 서비스 사업을 운영해보려는 예비창업자들을 위한 것이다. 이제 막 발을 들이는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는 있어도 한창 활동중인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는 게 당연하다.

■깎고 쥐어짜고…제때 주기라도 하면 다행

SI 전문 개발자들의 어려움은 노동문제와 맞물린다. 임금체불이나 저임금노동, 부족한 성장 기회와 이에 따라 심화되는 경쟁상황 등이다. 별도 수당 없이 자동화된 주말 출근이나 무한 야근 등 열악한 근무환경도 단골 소재다.

어떤 민간, 공공발주자들은 정부 정책에 따른 사업대가기준에 포함하는 노임단가제를 근거로 경력에 대한 급여 상한치를 적용해왔다. 기존 제도가 현실을 반영치 못하고 불합리함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는 종전 기준들을 없애고 시장에 가격결정권을 넘기기로 했다. 그러자 일부 기업들은 기존 경력기준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이전보다 같은 경력자들에 더 낮은 임금을 지불하려 드는 부작용이 나타날 기세다.

또 전문SI 업체에 단기 계약 또는 임시직으로 채용된 피고용자 신분의 SI종사자들은 ‘단가후려치기’로 상징되는 하도급 계약관계의 말단에서 만성적인 저임금체제에 시달린다고 하소연한다. 항상 빠듯한 일정과 모자라는 투입인원은 익숙한 풍경이다. 단순 저임금이 아니라 별도 수당을 보장받지 못하는 야근과 주말출근, 일부 악덕 고용주의 횡포에 따른 건강악화 등 열악한 노동환경이 문제로 꼽힌다.

혹자는 SI바닥에서 깎더라도 제때 주는 게 양반이라 했다. 현재도 개별 발주되는 프로젝트에 직접 지원하거나 인력 풀에 등록돼 사용자와 연결되는 프리랜서들은 임금체불 문제로 사용자측과의 소송을 경험한 비중이 높은 편이다. ‘지루한 싸움’이라 표현되는 법정싸움이든 소액소송이든 활동에 제약을 받는 시간이 수입과 직결되는 프리랜서들에게 불리하고 가능하면 피해야 할 일이지만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오갈 데 없는 고급 SI엔지니어

연차가 늘어갈수록 숙련된 SI엔지니어들의 설자리가 좁아지는 추세도 문제다. ‘나이 많은 SI 엔지니어들이 살아남는 방법’류 제목으로 다양한 내용이 공유되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국내서 SI 전문 개발자는 우선 나이 제한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 이차적으로 등급이 높더라도 그에 못 미치는 상한선 계약가에 합의해야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또 프리랜서 인력 풀을 관리하는 한 업계 관계자는 “원청 대기업이 프로젝트에서 젊고 경험이 부족한 프로젝트 매니저(PM)들을 지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밑에 들어올 SI인력들은 또 PM이 일을 시키기 편하도록 어리면서도 화려한 경력과 뛰어난 스킬을 갖춘 ‘천재’를 찾는 억지 요구가 흔하다”고 설명했다.

실력이 중요하지만 그만큼 비싼 인력을 데려오긴 싫다는 얘기로 들린다. 물론 프리랜서가 아니더라도 SI 하청사 직원들의 임금 수준이 이미 상한가 압박의 산물이란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런 풍토에 결국 숙련 SI엔지니어들은 다수는 커리어를 발전시킬 의욕을 꺾고 이직이나 전업을 하게 된다. 이는 전체 산업계의 손실로 이어진다.

SI 전문인력이 개인 이력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에 등록해 등급을 인정받는 방식도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오래전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해당 기간 기술 경력을 증명할 수 없다거나, 실제 전문분야와 무관한 내용으로 오래 일한 사람이 진짜 숙련도가 높은 개발자보다 더 좋은 등급으로 인정받는 사례도 나왔던 것이다.

■SI 노동시장 ‘저가경쟁’ 이유는

사실 시장 원리에 따르면, 숙련도 높은 SI 전문 개발자가 한때 이직이나 전업으로 줄어들 수는 있어도 결국 찾는 사용자가 있다면 몸값이 높아져야 한다. 이에 자극받아 다른 개발자들도 전문성을 강화해 경쟁하면서 적정 소득수준이 형성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상황이 당장 잘 돌아갈 형편은 아닌 듯하다. 이유는 SW업계 경쟁력 높이기에 나선 정부가 고급 엔지니어가 왜 여태 늘지 않았는가에 대한 처방 없이 인위적으로 고급 엔지니어를 늘리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대로 숙련된 SI엔지니어들은 나오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 업계에서 이탈하거나 일선 개발현장에서 물러나 PM 또는 컨설턴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탈을 막으려면 기존 개발자 직종에 유리한 대우를 해 주면 된다. 특히 정부의 공공정보화 발주자가 시장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업무상 여건이 때때로 혹독할 순 있지만 그에 상응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정보화사업이 그간 보여온 구매행태를 보면 이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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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정부는 단기 기술인 양성과정으로 새로 SI업계에 유입되는 신입 종사자들이 쏟아져나오는 상황을 조장하고 있다. 이는 중급 이상 개발자들에게 실력에 따른 차등적 대우를 해주기 보다는 값싼 노동력을 대량 공급해 전체 시장가격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초래하는 모양새다. 시장에서 해당 직종의 전문성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더불어 기존 고급개발자들의 빈자리를 빠르게 메울 수 있도록 중급 인력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기관 교육과정 활용 기회가 제한적이란 점이 어려움을 더한다. 일부 대기업이 일반 개발자들의 성장 기회로 제공하는 전문교육과정을 대기업이 자사 프로젝트에 투입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선점하는 행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는 게 한 관계자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