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게임 생산·소비자, 잇단 규제에 정면 대응

일반입력 :2012/02/28 11:57    수정: 2012/02/28 12:56

전하나 기자

정부가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학교폭력의 책임을 웹툰, 게임 등 콘텐츠에 물으며 심의 강화 등 강도높은 규제책을 꺼내들자 관련업계가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산업계 전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면서 법적 소송을 검토하는 등 강력 반발하는 모습이다.

우선 만화계는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3개 웹툰에 대해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 관련 사전통지’를 보낸 것과 관련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변호사를 선임한 뒤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윤태호 비대위원장은 “만화계가 똑같은 실패와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인식을 같이 하고 조직력있는 대응을 해나가야 한단 생각”이라고 비대위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공동 비대위원장을 맡은 우리만화연대 백정숙 부회장은 “작가들 스스로가 이번 사태를 생존의 문제로 느끼고 있다”며 “설사 방심위가 이번 조치를 취소한다고 해도 싸움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에 방심위측은 민원이 제기돼 검토에 들어간 것이라 문제될 것이 없단 입장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며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최종 결론이 나올텐데 (청소년 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규제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비대위의 이종필 변호사는 “웹툰은 매회 연재될 때마다 수만 독자의 댓글이 달려 기본적으로 독자들의 감시를 받는 구조”라며 “이러한 콘텐츠의 특성을 모르는 이들이 어떠한 정치적 결정에 의해 만화를 탄압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소송을 시작하면 1년여 이상의 지난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를 만화계가 힘을 비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싸움에 동참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박인하 교수도 “이번 방심위 사태를 기회로 청소년보호법에 명시된 심의 조항을 개정해 업계 자율 등급으로 나아가고 웹툰 작가들이 연대 조직을 만들어 산적한 문제들을 풀어가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화계는 현재 비대위를 상시기구로 만드는 등 여러 안건을 놓고 고심 중이다. 윤태호 비대위원장은 “좀 더 재기발랄하고 다양한 퍼포먼스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웹툰 심의 사태에 반대하는 공식 블로그를 개설해 만화가들의 항의 만화와 배너를 연일 게재하고 있기도 하다. 만화 독자들 역시 다음 아고라 서명운동을 벌이거나 항의성 웹툰을 보내오는 등 비판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한편 게임물 유해성 심의 강화, 게임 접속 제한 등 규제 압박에 신음하고 있는 게임업계도 생존 해법 찾기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와 게임문화재단과 같은 상설기구가 간담회를 개최하거나 정기 소식지 발간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기구를 주축으로 꾸려진 주요 게임사 국회 TF조직은 유기적으로 대외협상에 나서고 있다. 앞서 게임산업협회는 셧다운제 위헌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를 기반으로 한 개발자, 게이머들의 연대 움직임도 일고 있다. 한 누리꾼의 제안으로 시작된 ‘게임 편견 타파 페스티발 + 컨퍼런스’은 내달 17일 개최를 앞두고 있다. 이 행사에선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이 정부 규제에 대한 끝장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여기에는 셧다운제 위헌 소송을 진행 중인 이병찬 변호사와 전현직 게임학회장, 한국 1호 게임학 박사, 유명 게임 블로거 등도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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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의 한 인사는 “학교폭력사태의 경우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을 근본적으로 짚고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가족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분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희생양 찾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콘텐츠를 때려잡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콘텐츠 폭력성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사회적 시선의 심각성에 대해 창작자들이 나서서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오해를 풀어나가려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