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여백의 미' 필요한 한국 웹서비스

이재석입력 :2012/02/27 11:02    수정: 2012/02/27 11:05

이재석
이재석

‘예상 기업가치 111조8천억원(1천억 달러), 회원 수 8억4천500만명.’ 지난 2월 1일 기업공개를 신청한 페이스북을 나타내는 천문학적 수치다. 제조업에서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지만 IT 산업에서만큼은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등을 만들어 낸 미국을 위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IT 강국을 자처하지만 실은 IT ‘소비’ 강국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섞여 나온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시기에 IT 붐이 일었을 만큼 한국 IT 산업의 태동은 빨랐다. 국내 IT붐 이래 10여 년간 많은 벤처기업이 생겼다 사라졌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성공한 서비스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한국의 네티즌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성공한 웹 서비스에 처음 접속하면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썰렁하다’ 혹은 ‘투박하다’는 것. 알록달록한 이미지에 내용이 꽉꽉 들어찬데다 곳곳에 플래시 영상이 돌아가는 현란한 국내 웹 서비스에 익숙한 국내 네티즌들이 보기엔 화면의 구성, 즉 UI(User Interface)가 단출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점이 해당 서비스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IT기기와 서비스의 외관에서는 한국화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의 미’가 보인다. 직관적으로 말하면 채우기 보다는 최대한 빼는 개념이고, ‘비움으로써 채운다’는 전통 미학과도 맞닿아있다.

시장의 흐름을 보면 IT서비스와 기기는 발전할수록 그 외관과 UI가 직관적, 단순해지는 대신 기능은 막강해진다. 반면 막강한 기능을 가졌어도 복잡한 UI를 가진 서비스나 기기는 대부분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아이폰은 성공하고, 초기 윈도 모바일은 형편없는 성적으로 물러난 이유가 여기 있다. 아이폰은 직관적인 UI 덕분에 아이들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된 반면 초기 윈도 모바일은 PC용 UI를 거의 그대로 축소시킨 것에 불과했다.

IT기기도 마찬가지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등장한 스마트TV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직관적이지 않은 인터페이스, 즉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복잡해진 리모컨 때문이다. 만약 아이폰에 키보드만큼 복잡한 버튼이 달려있다면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스티브 잡스는 ‘사용자가 기계를 이해해야 하는’ 수준을 지나 ‘기계가 사용자를 이해하는’ 경지를 추구하면서 IT계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정 전문가 집단이 아닌 세계 소비자를 겨냥하기 위해서는 ‘외관은 단순하게, 기능은 막강하게’라는 세계 시장의 IT 트렌드를 유념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에 세계적으로 성공한 IT 서비스가 없는 이유를 핵심 기능이 아닌 외관 경쟁에 치중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작은 국내시장 규모에서 업체들이 과당경쟁을 하다 보니 본질적인 기능 차별화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외관에 치중하는 경향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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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모성 과당 경쟁은 세계 시장은커녕 국내 소비자의 눈길마저 해외로 돌려버리게 만들 수 있다. 한 상가에서 상점들이 상품 경쟁력은 키우지 않고 당장 손님을 모을 수 있는 호객 행위에만 매달리면 이내 소비자들이 아예 해당 상가에 발길을 끊어 버리는 것과 같다.

이미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익숙해진 한국 사용자들은 더 이상 이들 서비스의 UI에서 허전함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질리지 않는 직관적인 화면을 보며 새롭게 추가될 기능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Simple is the best’라는 서양 격언이나 필자가 느낀 여백의 미를 은연 중 떠올릴 지도 모른다. 세계 시장을 바라본다면 이제 겉은 비우고 속은 채워야 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재석 IT컬럼니스트

이재석 대표는 포스텍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1999년 5월부터 심플렉스인터넷을 이끌어오고 있다. 벤처 버블에서 살아남은 국내 IT벤처 1세대로서 IT시장의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 분석 해보는 것이 취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