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압력, 여론 반발...KT-삼성 한발 후퇴

일반입력 :2012/02/14 19:01    수정: 2012/02/15 08:20

정윤희, 남혜현 기자

KT가 스마트TV 망분담금을 요구하며 벌였던 삼성전자와의 싸움에서 결국 한 발 물러섰다. 지난 10일 오전 9시를 기해 삼성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한지 닷새 만이다.

KT는 14일 성명서를 내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삼성 스마트TV 앱 접속제한과 관련해 적극적인 사업자간 중재유도 및 향후 조속한 정책 검토 입장을 밝힌 취지에 공감한다며 이를 받아들여 접속 제한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KT는 그간 줄기차게 주장했던 '선 망분담금 논의'도 철회했다. KT는 스마트TV가 망을 무단으로 점유해 사용해 트래픽 과부하를 유발한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망분담금 논의에 삼성전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오후 긴급 브리핑을 통해 트래픽 증가 및 망 투자비용 분담 등과 관련해 망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에서의 논의를 조속히 추진하고, 정책자문위원회 산하에 트래픽 관리 및 신규서비스 전담반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환영'…삼성 입장 반영된 것

삼성전자측은 KT의 발표에 즉각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망분담금 논의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향후 협력은 없을 것이란 자사 논의가 100% 관철된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향후 방통위가 주관하는 '망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에서 KT와 논의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방통위 협의체 내에서 이야기하겠다는 삼성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며 무엇보다 고객들의 피해가 해소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KT의 결정과 관련, 스마트TV 접속 차단으로 인해 불리해진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풀이한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SNS) 상에선 KT의 접속 차단에 대해 소비자를 볼모로 잡은 행위란 비판이 쏟아졌다.

아울러 방통위가 KT의 행위에 대해 '망중립성 정신에 위배된다'며 엄중한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힌 것 또한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통위는 당초 15일 열릴 예정인 위원회 회의 안건으로 KT의 스마트TV 접속제한을 상정하고 시정명령, 사업정지 등의 제재조치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KT, 절반의 성공…통신망 가치 논의 본격화

그러나 KT로서도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다. 그동안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로 여겨지던 망분담금과 통신망의 가치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 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망분담금 문제는 지난해 1년동안 계속된 망중립성 포럼에서도 사업자간 입장차가 너무 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KT가 접속 차단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삼성전자를 압박한 것도 스마트 TV 시장이 더 크기전에 망분담금 논의를 일단락 짓겠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 역시 KT와 협상이 글로벌 TV 판매 협력업체에 나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다며 KT의 제의를 완강히 거부해왔다.

KT 역시 내부적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우선은 삼성전자를 협의 테이블에 끌어내는 것을 성공했다. KT는 향후 방통위 주도로 운영되는 사업자 자율협의체 내 스마트TV 분과에서 망분담금을 포함한 망 설계구축 제반 사안에 대해 삼성전자와 논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주장한 것은 단순히 돈 몇 푼 내라는 것이 아니라 협의를 하자는 것”이라며 “때문에 삼성전자와 논의를 하게 됐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사업자 자율협의체 내 스마트TV 분과에서 해당 사안에 대해 삼성전자와 논의할 것”이라며 “(방통위가 주도하는 협의체인만큼) 이제는 삼성전자가 협상을 거부할 경우 방통위 차원에서의 조정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분쟁은 일단락, 소비자 피해는 나몰라라?

KT와 삼성전자의 스마트TV를 둘러싼 갈등은 불과 5일 만에 조정안에 의해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5일간 스마트TV 기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소비자 권리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양사 모두 저마다 논리는 있다. 그러나 갈등 과정에서 소비자 권리는 뒷전으로 두고 힘겨루기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KT와 삼성전자 모두 보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는 마치 지난달 불거진 케이블 사업자의 공중파 송신 중단 사건을 연상케 한다. 기업간 이윤 추구를 위해 충돌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를 볼모로 삼는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이종 산업간 융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는 현대 사회에서 향후 이러한 기업간 충돌은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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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홍 녹색소비자연맹 국장은 “이번 사건은 KT와 삼성전자는 물론 이러한 피해 문제를 간과한 방송통신위원회까지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돌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기준이 마련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의견을 밝혔다.

아울러 이 국장은 “향후 과징금 처분 및 적절한 피해 보상 등의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기업 간 충돌에 의한 소비자 권리 침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