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플로' 네트워크업체의 미래 흔들다

일반입력 :2012/02/10 11:38    수정: 2012/02/10 13:41

소프트웨어로 만드는 네트워크 ‘오픈플로’가 관련업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네트워크 장비업체마다의 개성을 없애는 오픈플로가 서버진영의 지원을 등에 업으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최근 HP, IBM 등 2년 사이 네트워크사업 강화에 나섰던 서버업체들이 시스코시스템즈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픈플로 채택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에 시스코는 네트워크 전문업체를 죽이는 기술이라며 경고장을 날리는 모습이다.

지난 2일 HP는 오픈플로를 지원하는 스위치 신제품 16종을 출시했다. 이 회사는 동시에 현재 HP 스위치 제품 사용자가 소프트웨어 다운로드를 통해 오픈플로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HP 네트워크 사업의 미래를 오픈플로에 걸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달 IBM은 NEC와 함께 오픈플로 지원계획을 발표햇다. IBM은 자사 스위치와 NEC 컨트롤러를 결합한 오픈플로 기반의 ‘컨트롤러-스위치 콤보’를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IBM의 랙스위치 G8264 10/40기가비트이더넷(GbE)과 NEC의 PF6800 컨트롤러가 통합된다.

■서버가 네트워크 스위치를 잡아먹는다

‘오픈플로’는 오픈소스 기반 가상 네트워크 기술이다. 소프트웨어 정의 네트워크(Software Defined Networking)의 일종이다. 이는 시스코, HP, 주니퍼, 브로케이드 등 장비업체에 상관없이 사용자가 네트워크 통제권을 갖는 표준 프로토콜을 만드는 것이다.

스탠포드대학과 UC버클리대학에서 개발을 시작해, 현재 IBM, HP, 주니퍼네트웍스, 브로케이드 등이 후원한다. 지난해 3월 오픈네트워킹파운데이션(ONF)을 설립하면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네트워크 장비는 제조업체마다 플랫폼이 다르다. 중앙처리장치는 각 업체마다 다른 ASIC을 사용하며, 운영체제(OS)도 각각이다. 사용자는 라우터, 스위치 등의 공급업체를 다르게 구매할 경우 제어기능이 다른 탓에 통일된 정책을 적용하기 어려웠다. 각 업체마다 제공하는 기능과 성능에 차이를 보인다는 원인도 있다.

갈수록 데이터센터가 대형화하면서, 네트워크 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는 기업의 골칫거리다. 오픈플로는 비용과 자원을 절약하면서, 네트워크 자원을 입맛에 맞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해법으로 고안됐다.

오픈플로는 소프트웨어로 이뤄진 멀티테넌트 네트워크를 만든다. 네트워크 장비에 담겨있던 컨트롤 플레인(OS)과 데이터 플레인 중 제어 부분을 x86서버에 SW로 설치하고, 단순 트래픽 전송기능과 통신포트만 다수 보유한 박스를 연결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오픈플로 사용자는 데이터센터 구축 시 물리적 네트워크 인프라를 조정할 필요가 없으며, 가상화 환경에서 패킷 라우팅 경로 지정, 로드밸런싱, 접근 권한 설정 등을 할 수 있다.

오픈플로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네트워크 장비를 SW와 x86서버로 대체하는 것이다. 오픈플로와 SDN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업체들이 서버사업 터줏대감이란 점은 여기서 기인한다.

■HP-IBM이 오픈플로를 밀어붙이는 이유

HP와 IBM은 오랜 시간 유닉스, x86 서버를 판매해왔다. 네트워크는 시스코 같은 전문업체에 맡겼다. 하지만 수년 사이 HP, IBM 모두 자체적인 네트워크사업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컨버지드 인프라, 즉 통합 솔루션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사실상, HP와 IBM에게 네트워크 사업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이 아니다. 통합 솔루션으로 공급한다 해도, 규모면에서 서버사업이 네트워크사업보다 수십배 크다. 고객이 여전히 통합솔루션보다 영역별로 공급업체를 다양화하는 것을 선호하는 탓도 크다.

한편으론, 네트워크장비분야에서 시스코의 장악력은 공고하다. 1차적으로 시스코를 무너뜨려야, 네트워크사업의 시장지분을 늘릴 수 있고, 통합솔루션 전략을 원활히 펼칠 수 있다.

HP나 IBM이야 스위치가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 문제를 겪지 않는다. 서버, 스토리지, SW, SI 등으로 얼마든지 매출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전문인력도 인수합병과 사업경험을 통해 확보한 만큼 아쉬울 것은 하나도 없다.

■시스코, 네트워크업체 참여는 자살행위

반면, 시스코는 오픈플로를 사업에 해를 끼치는 움직임이라며 대척점에 서 있다. 장비업체의 개성을 없앨 뿐 아니라, 네트워크 장비의 존재가치마저 사라지게 하는 시도라는 주장이다.

네트워크업체가 각자의 독립적인 아키텍처를 고집하는 이유는 차별화를 위한 전략이다. 시스코가 계속해서 차별화된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고객의 이탈을 막으려는 시도다. 이는 제품 업그레이드에 고객을 쫓아오게 만드는 방법이다. x86서버로 스위치와 라우터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이런 네트워크장비 제조업체의 전략과 수단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시스코는 자칫 네트워크업계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보인다. 시스코코리아의 관계자는 “오픈플로는 전용장비를 없애고 서버가 라우터, 스위치 모든 역할을 하게 한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네트워크전용장비는 접속포트만 있는 값싼 박스로 전락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몇몇 네트워크업체들이 오픈플로에 동참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라고 강조했다.

또 한편으로 오픈플로가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기에 성능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점도 언급된다. 코어에서 사용되는 모든 네트워크를 서버에서 운영하기엔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현재 데이터센터 가상화 환경에서 SW로 운영하는 가상 TOR스위치가 사용되고 있긴 하다. VM웨어 환경의 ‘v스위치’나 시스코 넥서스1000V가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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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플로는 이 외에 모든 네트워크를 서버로 집어넣겠다는 구상이다. 그렇게 되면, 서버 관리자는, 가상머신(VM)과 스토리지, 가상 네트워크 등을 모두 관리해야 한다. 네트워크 관리는 따로 전문가를 둘 만큼 복잡하고 시스템관리와 기술적 차이를 갖고 있다.

또 다른 국내 네트워크업체 관계자는 “가상화SW로 운영하는 코어 스위치 하나가 죽어버린다고 하면, 그를 복구하려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이 명확한지 알아보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