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SNS서 읽는 욕망 코드, 'Like' '맞팔'

황병선입력 :2012/01/18 11:11    수정: 2012/01/18 11:47

황병선
황병선

필자는 초등학교 5학년생 아들이 있다. 이 녀석은 젖먹이 때 얼굴부터 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점차 자라면서 말하는 모습이나 성격이 내 자신을 보는 것 같다. 자라면서 책을 읽게 되고 쌓이는 지식들이 생기니까 점차 대화에서 상투적으로 “나 그거 알아~”라는 표현이 늘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런 성격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나중에 친구들에게 상처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최근 ‘생각 버리기 연습’이란 책을 읽으면서 배운 사실인데 이런 태도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욕망의 표현이라고 한다. 이는 반대로 그 욕망을 표현했는데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실망하게 되고 다시 이게 분노로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이 저자의 조언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이러한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은 있는 것 같다. 그런 욕망의 표현은 자연스럽게 인터넷 상의 서비스에서도 존재해 왔고,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법이 과거에는 개인 홈페이지였고 게시판이었으며 지금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인 것이다.

사실 페이스북은 원래 남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위한 서비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의 기본적인 목적은 친구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새로운 친구나 과거에 연락이 끊어진 친구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존하는 그 어떤 방법보다도 이를 이용하면 보다 많은 친구와 느슨한 관계를 저렴한 비용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친구 유지 방법 ‘만남 → 통화 → SNS’로

과거에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으로 모여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최근 근황이 어떤지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을 공유해야만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사실 여러 가지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오프라인으로 근황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에, 집 전화나 휴대 전화로 언제 어디서라도 음성 통화를 교환해 왔었지만 이마저도 서로의 시간을 동기화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기 때문에 또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항상 이런 대화 방법이 쉬워지면 상대방에게 대한 기대도 커지는 법이라서, 소위 ‘전화 한 통화도 없는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프라인의 대화에서 온 몸으로 느끼는 감정의 공유에서 오는 재미나 음성 통화의 실시간의 대화보다는 재미가 떨어지지만, 공유의 욕망과 현실의 부담에서 오는 간극을 채워주기에 페이스북의 장점은 명확했던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에서 ‘Like’라는 버튼과 ‘Subscribe’라는 기능을 보면서 우리는 사람들의 ‘욕망’ 코드를 읽을 수 있고 다른 서비스인 블로그와 게시판에서 사람들이 그렇게들 바라는 ‘댓글’에 대한 외침을 보면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다.

■SNS도 결국 ‘인정받기 위한 욕망’에 얽매인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블로그나 게시판의 게시물에 ‘추천’ 버튼을 눌러 달라고 애원하고, “댓글 하나 다는 게 그렇게 어렵냐"라는 하소연을 하는지 생각해보면 모두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Like 버튼이 댓글보다 더 쉽고 빠르게 그 욕망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 기능임을 알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평을 쓰는 것보다 그냥 별표를 주는 게 편한 것처럼, 친구의 글에 내용에 신경 쓰면서 댓글을 작성하는 것보다는 훨씬 간편하게 그 사람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Like 버튼을 누르면 되기 때문이다.

게시판에서 내 글의 조회 수가 중요한 이유는 내 글이 얼마나 관심을 받고 있는 알 수 있고 나의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던 것처럼, 페이스북에 내가 쓴 ‘상태’와 사진에 대한 친구들의 Like 반응을 통해 자신의 미친 존재감이 보상 받게 된다.

트위터는 오히려 서비스의 본질이 블로그에 있고, 이는 양방향의 친구 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페이스북과는 달리 단방향의 미디어 특성에 가깝다. 따라서 트위터나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구글플러스는 친구 관계가 아닌 우리나라 단어로는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팔로어 관계가 핵심이고, 이것은 정확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을 만족시킨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트위터의 팔로어 숫자로 그 사람의 영향력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되고, 창피한 고백이지만 필자도 그 숫자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욕구는 결국 왜곡을 만들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예의(?)로 보이는 ‘맞팔’을 강요 받는 현실을 만나고 있다.

■팔로어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신뢰’가 우선

물론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다. 결국 영향력이란 단순히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팔로어나 친구의 숫자 만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파워 블로거나 트워터라는 사람이 쓴 글이나 추천한 기사들 그리고 강연 등을 통해서 실제 그 사람의 실체를 접해보면 결국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진정성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자 한다면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지 않으면 결국 그 한계가 드러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진짜 영향력이란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자신의 가치에 대해 사람들의 신뢰가 지속되지 않으면 허망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 발전을 계속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생각 버리기 연습’에서 저자가 지적했던 것은 그렇게 인정받겠다는 욕망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저자처럼 스님은 아니기 때문에 욕망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접하는 몇 개의 숫자들에 내가 실망하고 분노를 느끼는 것은 노력을 통해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득도할 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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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기획한다는 것은 고객의 표면적인 요구를 해결해주는 기능을 설계하는 것에서 고객의 상황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다음이 그 솔루션의 ‘사용자 경험’이 중요하다는 관점이 현재 많이 강조되고 있지만 필자는 여기에 고객의 요구나 문제가 아닌 욕망을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욕망을 해결해주는 것은, 단품으로서의 제품보다 서비스 형태로 고객과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객의 모든 근본적인 욕망 중의 하나가 바로 ‘고객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외로움’에 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병선 IT컬럼니스트

다년간의 벤처 대표를 하고 세상의 뜨거운 맛을 본 개발자 마인드의 기획자. 퓨처워커라는 필명의 블로거로, 청강문화산업대에서 앱 개발자를 육성하면서 플랫폼전문가그룹에 대표위원으로 활동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