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룡 교보문고 "전자책, 가격 경쟁 금물"

대표 온라인 서점, 전자책 길을 묻다-④

일반입력 :2011/11/21 15:15    수정: 2011/11/22 16:51

남혜현 기자

인터넷에서 책을 주문해 그날 바로 받아보는 일은 낯설지 않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단 하루면 국내서 판매되는 책 대다수를 받아볼 수 있다. 올해 서점가에서 추정하는 인터넷 서점 매출 규모는 오프라인의 절반에 다다른다. 도서 시장이 어렵다는 최근에도 온라인 서점은 연평균 두자릿수의 성장을 거듭했다.

이제 온라인서점들은 제2의 도약기를 준비한다. 인터넷이 10년 전 도서 유통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면, 이젠 출판 지형의 변화를 예고한다. 바로 전자책이다. 아직 종이책이 대세인 도서 시장에서 서점들은 앞다퉈 전자책 마케팅에 열중한다.

그 이유를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온라인 서점 대표들에 물었다. 앞으로 한 달간, 예스24와 인터파크도서, 알라딘, 교보문고의 대표가 전하는 전자책 이야기를 연재한다. 이들은 전자책을 넘어 도서 시장 활성화를 위한 경쟁과 협력을 말했다. 그들이 전하는 전자책 시대, 온라인 서점이 가야 할 길을 이 자리에 풀어놓는다. [편집자 주]

온라인에서 교보문고가 뒤처졌다고 해서 전자책쪽에서라도 앞서보자, 그런 것은 없다. 가격 파괴를 안해 (온라인에서) 기선을 놓치기는 했지만, 그건 1위 사업자의 윤리적 책임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오프라인 도서유통부문에서 교보문고의 힘은 세다. 교보문고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책이 국내서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여겨진다. 쉽게 말하면, 교보는 국내서 책을 가장 많이 파는 곳이다. 출판사들도 교보문고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역학관계는 장(場)에 따라 달라진다. 인터넷 서점이 크게 성장하면서 교보문고도 여러 경쟁자가 생겼다. 지금 온라인 도서유통가에서 교보문고의 시장 점유율은 세번째다. 교보문고가 전자책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을 두고 업계는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해석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전자책 판매 성장은 가파르다. 스마트 기기 확산과 모바일 이용환경 편의성 때문에 전자책을 사보는 독자들이 크게 늘었다. 내년에는 성장폭이 더 커질 전망이다. 그간 시장 성장 저해 요인으로 꼽혔던 DRM 표준 제정이 마무리 단계인데다 출판사들의 콘텐츠 공급이 예전보다 원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룡 교보문고 대표를 최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30년간 교보문고에서 일하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다시 모바일로 시장이 변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봐 왔다. 김 대표는 전자책 시장을 겨냥해 여러 사업을 준비 중에 있지만, 단순히 시장 점유율 때문에 출혈적인 가격 경쟁은 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사장된 콘텐츠, 교보에서 재탄생

가격 경쟁 대신 교보문고가 선택한 것은 다양한 서비스 출범이다. 교보문고는 이달 중 전자책 시장 선점을 위한 서비스를 공개한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말기다. 미라솔과 손잡고 세계 첫 컬러 e잉크 단말기를 선보인다. LCD는 화려하지만 눈이 아프고, e잉크 단말은 책읽기 좋지만 멀티미디어 파일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을 보충했다.

김성룡 대표는 교육용 단말기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며 책보는데 최적화 한데다 간단한 애니메이션이 구동될 수 있도록 해 활용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와 달리 시기가 어느정도 무르익었다는 판단도 단말기 출시의 배경이 됐다.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선택의 여지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조유식 알라딘 대표가 질문한 국내서 LCD와 e잉크 중 어떤 단말기가 성공할까란 질문에 대한 우회적 답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두 종류의 기기 모두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소비자가 어떤 판단을 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 답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지난해 인터파크도서 역시 자체 브랜드 전자책 단말기를 내놨지만 큰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예상보다 비싼 가격과 콘텐츠 부족이 문제였다. 해외선 아마존이 킨들로 선전하고 있지만, 국내선 자체 단말기가 아직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고 교보문고가 무한정 저렴한 단말기를 내놓을 수 없다는데 딜레마가 있다. 김 대표는 대신 소비자를 만족시킬만한 사양과 서비스를 논한다. 아직 국내 시장이 작고, 또 제대로 된 서비스가 없는데 무조건 단말기만 싸다고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교보가 1인 출판 외에 전자책 대여 서비스 등을 생각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 대표는 가격이 중요하지만 특장점이 없는데 싸다고 사줄리는 없을 것이라며 국내 시장이 작아 아마존처럼 손해를 보면서 팔 수는 없지만, 최대한 유통마진을 낮출 것이라 설명했다.

교보가 준비 중인 1인 출판 시스템은 '펍플'이다. 국내선 가장 오랫동안 전자책 뷰어와 1인 출판 플랫폼을 개발해온 유페이퍼와 손잡고 시스템 구축을 마쳤다. 기존 출판시장에선 출간되지 못했던 원고를 겨냥했다.

출판도 규모의 경제입니다. 수지를 맞추 수 있어야 출판이 결정되죠. 얼마나 팔릴 수 있을지 예상하는 부분은 상당히 어려워요. 자가 출판은 비용이 훨씬 적게 듭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활용해 그간 출간되지못한 원고를 전자책으로 먼저 선보인 후 반응이 좋으면 종이책으로 낼 수 도 있죠. 의외로 반응이 좋습니다.

■전자책은 돈 먹는 하마, 그래도 포기 못하는 이유?

전자책 사업 비용이요? 돈 먹는 하마죠(웃음). 그래도 책이 어떻게 진화할지, 또 변화한 시장에서 어떻게 책을 독자에 서비스할지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을 수는 없었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초기 단계라, 무슨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 건 아니었다는 거에요.

지난 8년간, 교보문고는 수익이 나지 않는데도 디지털 콘텐츠 팀을 꾸려 운영했다. 서점도 기업인데, 무작정 적자만 보는 사업을 계속해서 꾸려온 데는 어려움이 컸다. 언젠가 전자책 시장이 꽃피기야 하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황은 지난해부터 나아지기 시작했다. 갤럭시S와 갤럭시탭 등 스마트폰에 교보문고 애플리케이션을 기본 탑재하면서 수익이 크게 개선됐다. 교보문고는 올해 전자책 시장에서 12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경과로 봤을 때 목표액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대내외적 평가다.

그는 전자책 시장 활성화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당부했다. 서로 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난투극'은 그만 벌이고, 파이를 키우기 위해 자기의 몫을 충실히 하자는 것이다. 유통업체들 입장에선 잘 만들어진 책을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지, 변화한 환경을 고려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이다.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놨다. 디지털로 가면서 종이책 출판사가 다 문닫아야 한다는 논리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전자책이 출판사에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에 맞는 콘텐츠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곳이 출판사에요. 잘 할 수 있는 것 자체를 때를 놓쳐서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객관적으로 보면, 출판사만큼 책을 잘 만들 수 있는 데가 어딨겠어요? 그런데 그 역할을 엉뚱한 사람들이 하게 될지도 몰라요. 책 시장도 그렇게 될 수 있죠. 자칫 잘못하면….

김 대표는 전자책 시장이 빠른 시간안에 균형점이 맞추질 거라 전망했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된 전자책 가격 문제가 그렇다. 전자책을 무조건 저렴하게 파는 것은 답이 아니란 말이기도 하다. 콘텐츠 원작자에 제대로 된 몫을 챙겨주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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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전자책을 싸게 팔아 수익을 내는 것만 답은 아니죠. 대여 모델도, 또 다른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도, 다양한 앱북도 모두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유통사든 출판사든, 여러 부문에서 제각기 실험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씨앗이 되서, 앞으로 전자책 시장이 더 크게 확장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지디넷코리아는 지난 한 달간, 교보문고를 비롯해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도서 각 수장이 생각하는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에 관한 인터뷰를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했다. 다음주 결산의 의미를 담아 도서유통업체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의견을 직접 묻고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또 다른 전자책의 미래를 지디넷 독자 여러분께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