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밀리고 해외서 막히고…IT벤처 눈물

일반입력 :2011/10/16 13:54    수정: 2011/10/16 15:27

정현정 기자

<홍콩=정현정 기자>“삼성전자가 끌어 올린 소비자 눈높이를 우리가 어떻게 따라잡겠습니까. 정부도 대기업만 도와줘요...”

지난 13일 홍콩컨벤션센터서 열린 ‘홍콩추계전자박람회’ 현장. 만나는 한국 중소 전자업체 임직원들마다 비슷한 고민을 쏟아냈다. 대기업 중심 국내 시장서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여전히 힘겹다는 얘기다.

홍콩전자전에 참여한 국내 업체 수는 107개. 한국서 잘 나가니 해외 전시회까지 온 것 아니냐는 질문도 받지만 모르는 소리다. 한국 전시회에 설 자리가 없어 떠밀리듯 왔다는 설명이 더 적절하다.

비슷한 기간 일산 킨텍스서 열린 국내 최대 IT전시회 ‘한국전자산업대전(KES)’의 분위기가 이를 방증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대기업의 화려한 부스에 밀려 해외 중소기업들조차 관심을 덜 받는 것이 현실.

올해 참여업체 수가 2천300여개로 역대 최고라지만 홍콩전자전(3천314개) 대비 1천개 가까이 적다.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중소기업 지원이 절실하다고 참여자들은 설명한다.홍콩전자전서 만난 한 국내업체 관계자는 “한국 IT 전시회는 해외 바이어들과 미팅이 이뤄지는 자리가 아니라 중고등학생들이 와서 구경하는 행사가 돼버렸다”며 “해외 바이어 숫자도 적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 한국전자전 참가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외업체 임원은 “유럽 바이어들이 한국이 아직 낮선 것이 사실인데 이를 극복하려는 정책의지가 안 보인다”고 설명했다.

TV와 모니터, 태블릿, 스마트폰 등 소비재 전자제품 중소 제조사들은 해외를 찾는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그나마 특화 제품을 다양하게 준비해야 한다.

TV완제품 업체로는 국내 유일하게 홍콩전자전에 나온 스카이미디어는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등 대기업이 없는 틈새시장 공략으로 해외 판로를 열 생각이다.

김진석 스카이미디어 상무는 “삼성과 LG에 밀려 국내 중소기업들이 하나 둘 사라지니 살아남은 업체들의 노력은 더 커졌다”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방법은 해외 판로 확보 뿐”이라고 강조했다. MP3 플레이어로 알려진 포유디지털도 7인치 정전식 태블릿PC를 내세워 홍콩전자전서 분주히 뛰었다.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갖췄지만 국내서 대기업과 싸우기가 힘든 것이 사실.

회사 측은 “한국 소비자들은 비싸도 고성능 제품을 선호하고 차기 버전 업데이트에도 민감하다”며 “태블릿과 같은 하이테크 제품의 경우 대기업에 맞서 버티기가 더욱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해외 공략이 쉽다는 얘기는 아니다. 무섭게 큰 중국 업체와 싸우는 것도 상당히 피곤한 일. 홍콩전자전서도 중국 업체들의 신제품이 연일 화제였다. 가격 경쟁력이 강해 정면 승부는 피하고 싶다는 것이 국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리하자면 국내서 대기업에 치여 해외로 가니 중국에 밀린다는 암울한 상황. 정부 지원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다.

홍콩전자전에서도 5층 한쪽의 한국관을 제외하면 주 전시관인 명예의 전당에 국내 업체는 한 곳도 자리를 못 구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한국무역협회(KITA) 등이 전시 비용 일부를 지원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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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업체들과의 미팅 주선을 비롯한 더 구체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국내 기업인은 “명예의 전당에 전시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별도의 등록증을 발급받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지속적인 출품을 통해 자리를 잡으려는 업체의 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전략적인 접근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