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수 억으로 3D 콘텐츠를 만들라굽쇼?

국산 3D 콘텐츠, 어디까지 왔나-③

일반입력 :2011/10/13 10:20    수정: 2011/10/13 18:42

남혜현 기자

100% 만족하진 못했지만 가능성을 봤어요. 일단 팔렸잖아요.

EBS에서 제작한 '앙코르와트'가 연초 국내 3D 업계에 낭보를 알려왔다. 국내 다큐 사상 최고가로 미국에 수출된 것이다. 10만달러에 수출된 '한반도의 공룡'보다 최소 3배 이상 비싼 값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3D 콘텐츠도 세계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쾌거였다.

최고가 수출 외에 의의는 많았다. 앙코르와트 이후 EBS는 3D 자체 제작에 탄력을 붙였다. 후반작업 중인 '한반도의 인류'나 내년부터 촬영에 들어갈 '로마', '바빌론' 등 다큐 시리즈가 그것이다. 성공사례가 있으니 방송사 차원에서도 3D에 대한 투자에 나섰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일관성 있는 3D 콘텐츠 제작 경험이 그렇게 쌓였다.

사실 앙코르와트 성공 이면에는 정부 지원이 있었다. 제작비의 절반 정도가 정부 예산에서 나왔다. 지난해 정부가 3D를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지정한 후 개별 정부부처에서 콘텐츠 제작, 장비, 방송 인프라 구축에 예산을 편성했다. 지식경제부에서는 장비 및 인프라 구축을,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 콘텐츠 제작을,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 프로그램과 채널 지원 등을 나눠 맡았다.

세 개 정부부처가 나선만큼 3D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도 컸다. 당장이라도 국산 아바타가 나올 것 같은 기세였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물론 국내 3D 기술은 발전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콘텐츠는 없다. 성공 사례도 앙코르와트가 전부다. 아니, 내놓은 콘텐츠 자체가 앙코르와트 외에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는 국산 3D 콘텐츠가 부진한 이유를 정부의 의지 부족으로 본다. 신성장동력 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곤 하지만 실제로 큰 투자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편성한 예산도 실제 콘텐츠 제작보단 연구개발이나 서류 작업에만 쏟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3D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드는 예산을 정부가 현실적으로 고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크다. 올해 방송통신위원회는 7개 3D 콘텐츠 제작에 총 21억원을 지원했다. 한 편당 3억원이 들어간 셈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질 좋은 3D 콘텐츠를 완성하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방통위가 한 프로젝트에 평균 몇 억원씩 지원한다. 그런데 예를 들어 5억원을 가지고는 50분짜리 입체 영상을 만들기도 어렵다. 촬영시간도, 비용도 2배 이상 드는 것이 3D 촬영이다. 그런데 방통위는 이 비용으로 4부작 짜리 장편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현실적으로 얼마를 들이면 어느 정도 작품이 나온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제작비를 지원한 콘텐츠에 대해 최종 결과물을 검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방통위 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도 3D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있지만 실제로 완성돼 개봉한 작품이 없다는 게 이런 현실을 방증한다. 3D 콘텐츠를 제작하겠다고 나섰지만 비현실적인 제작여건으로 제대로 촬영도 되지 않고 중간에 엎어져 나간 작품이 꽤 된다는 것이다.

3D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도 정부와 현장의 온도차는 컸다. 방송사들은 장비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지만 정부는 충분한 지원을 했다는 입장이다. 지금 3D 프로그램 촬영을 위한 제작 시스템을 제대로 갖춘 곳은 한국HD 방송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EBS를 비롯해 지상파 방송에서도 촬영 카메라나 리그를 일부 갖추고 있는 곳이 있지만 불충분하다.

그러나 방통위 전파방송관리과는 장비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일축한다. 전파방송관리과 관계자는 66번 채널 운영을 위해 정부지원금으로 장비를 구매하기도 했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통해 국산 장비를 개발, 공급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지금 66번 채널이 운영된다는 것 자체가 방송환경이 마련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3D 방송은 케이블 채널인 스카이라이프를 제외하면 66번 채널을 통해 150가구에만 실험 방송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3D 방송 인프라를 민간 주도로 이끌어간다는 계획이다. 확정안은 아니지만 3D 방송 송출도 민간 방송사의 선택에 맡긴다. 디지털방송으로 완전 전환되는 내년부터는 주파수 확보 때문에 그간 진행되던 66번 실험 방송 채널도 회수한다. 개별 방송사들은 정파시간인 새벽 1시부터 6시 사이를 이용해 3D 방송을 송출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의무사항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3D 콘텐츠 제작에 대한 책임은 개별 방송사로 넘어온다. 방송사는 난색한다. 한 지상파 제작편성국 관계자는 3D로 만들어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주파수를 더 주는 것도 아니고 광고료를 더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3D로 만들 이유가 없다. 지금 3D 콘텐츠를 일부 제작하는 것도 기술 습득 수준이다. 당장 3D 콘텐츠 시대가 온다고 했을 때 제작 여건을 갖추는 정도에 머무른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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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나 영화 제작사들이 이 돈을 굳이 3D에 쓸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안그래도 어려운 콘텐츠 판이다. 특히 3D의 경우 콘텐츠 업계가 나서서 붐을 일으킨것도 아니다. 아바타 이후 정부가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인정,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앞세웠다. 국내선 TV제조업체들이 프리미엄 제품군 판매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내년 3D 방송 송출을 민간 방송사에 맡긴다는 입장을 고수할 전망이다. 내년도 예산안이 짜여진 것은 아니지만, 대규모 투자도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3D 콘텐츠 제작을 위한 기본 인프라는 거의 갖춰졌다는게 정부 판단으로 풀이된다. 정부 한 관계자는 3D 방송 채널 지원은 정부 예산이 나와야 하는 건데 사실상 예산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민간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