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선 칼럼]모토로라 인수한 구글, 행보와 시사점

설정선입력 :2011/09/19 10:15    수정: 2011/09/1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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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5일 구글은 한동안 조용하던 모바일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최초의 휴대폰 제조사였지만 지속적인 실적부진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당시 주가보다 63%나 높은 금액으로 인수했으며, 타사와의 매수 경쟁을 사전에 배제하기 위해 단독 협상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구글이 모토로라를 손에 넣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모바일 업계는 스마트폰 특허권을 놓고 치열한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다. 모바일 운영체제(OS) 플랫폼 시장에서 36%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구글은 그 동안 모바일 관련 특허를 단지 1천여건 밖에 획득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등 경쟁사를 비롯한 다양한 진영으로부터 특허권에 대한 시비로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여기에는 오라클과 같이 직접적으로 로열티 수익을 위해 공세를 취하는 경우도 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이 수익뿐만 아니라 OS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안드로이드 OS를 도입한 휴대폰 제조업체를 공격하는 우회 전략을 펼치는 경우도 있었다.

개방성을 내세운 구글의 안드로이드 OS는 확산일로를 걷고 있었지만, 특허 공세 속에 성장 정체를 맞게 될 수도 있다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따라서 구글은 네트워크 기술 특허 6천여건을 갖고 있던 노텔의 인수가 무산되자, 바로 추가적인 대안으로 모토로라 인수를 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구글도 모토로라 인수의 1차적인 목적이 약 1만7천여개의 모바일 네트워크 기술 특허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파급효과가 어디까지 미칠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구글이 모토로라의 인수 목적을 특허권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 외에는 아직까지 인수 이후 사업 비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글이 어떠한 사업 행보를 전개해 나갈 것인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예상해 볼 수 있다.

■향후 구글이 취할 4가지 시나리오는?

첫 번째는 구글이 기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단지 플랫폼 제공자로서 안드로이드 휴대폰 제조업체들을 동일하게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이는 구글이 휴대폰 제조사로서 성장하는 것보다 새로 보유한 특허를 통해 플랫폼 시장의 영향력 확대를 꾀한다는 전략일 것이다. 이 전략은 단기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보이나, 인수 금액이 125억 달러로 큰 규모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목적이 특허권 방어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구글이 스마트폰 제조사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는 시기의 문제가 있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나리오는 사업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모토로라를 독립적인 사업부로 두고 기존의 넥서스1이나 넥서스S와 같은 레퍼런스폰을 내놓는 정도로 제조사업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때 다른 제조사들과의 관계는 ‘협력과 경쟁’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다른 방식은 여러 휴대폰 제조사들의 우려처럼 구글이 모토로라를 기반으로 직접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구글이 다른 제조사들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어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개방형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흐트러질 위험도 있다고 하겠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모토로라의 인수로 얻은 기회를 모바일이 아닌 다른 사업에 주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모토로라는 휴대폰 사업 외에도 TV 및 셋톱박스, 네트워크 장비 사업에도 강점이 있는 사업자이다. 특히 셋톱박스 분야에서는 지난 해 1천900만 대를 팔아 전 세계 2위 자리에 올라 있기도 하다. 즉 구글은 야심차게 진행해왔으나 한동안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구글TV 사업에 모토로라의 역량을 활용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나리오는 구글이 이동통신 사업자마저 인수하는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이때 인수 대상은 AT&T가 미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인수하지 못하고 있는 T-모바일USA나 미국 이통업계 3위 사업자 스프린트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만일 이 같은 시나리오로 된다면 구글은 ICT 산업의 가치사슬인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단말기를 모두 아우르는 초대형 정보통신 기업이 될 것이며, AT&T, 버라이즌, 컴캐스트와 같은 통신사업자까지도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규모가 커지게 되는 만큼 주변을 전방위적인 경쟁자로 만들 위험이 있어 구글이 쉽게 선택할 시나리오는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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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예상되는 시나리오들을 볼 때 구글은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공고히 하면서도 점진적으로는 그 동안 협력관계에 있었던 제조사나 통신사업자들과 경쟁하는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방안은 일단 구글의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다른 플랫폼과 협력 관계를 확대하거나, 독자적인 플랫폼을 구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최근 삼성전자가 자체 OS인 ‘바다’를 부각시키고, 정부에서도 주파수경매 수익의 절반을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에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구글 중심의 ICT 생태계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경쟁력 있는 플랫폼 개발과 생태계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즉 애플, 구글 등이 주도하는 ICT 생태계에 우리나라 IT산업이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 우수한 통신 인프라와 스마트폰 제조역량을 중심으로 다소 취약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등 ICT 생태계의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때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설정선 IT컬럼니스트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상근부회장, 고려대 정보경영공학 박사,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융합정책실장,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