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윤태호, 디지털 만화에서 길을 찾다

일반입력 :2011/08/22 12:36    수정: 2011/08/22 19:20

전하나 기자

영화 ‘이끼’의 태생지는 인터넷이다. 원작인 동명 만화가 포털사이트 다음이 연재했던 웹툰이기 때문이다. 이끼는 연재 당시 두터운 만화 팬층을 확보하며 높은 인기를 끌었고, 15년 가량 무명생활을 했던 작가를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 이끼의 작가, 윤태호를 만났다.

“이끼로 인해 없던 이름이 생긴 거죠. 존재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제는 엄연히 ‘스타작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윤태호 작가는 이끼의 탄생 전후가 자신의 작가 인생을 가른다며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전업(?)을 결심한 만화가 중 하나다.

“저 같은 출판만화 출신 작가들이 처음 웹툰 만화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죠. 디지털 만화는 어법이나 감수성부터가 달라요. 물론 출판만화에서 습득했던 것들이 좋은 영향을 준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험은 단절해야 했어요. 그러니 무척 힘들 수 밖에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성공했으니 지금은 즐거운 기억이죠.”

웹툰의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그는 “만화의 재미는 읽는 리듬에서 오는 것인데 웹툰은 스크롤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읽어나가다 보니 만화책을 볼때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야기의 ‘반전’을 꾀하는 묘미가 덜할 것이라 여겼다”며 그 자신도 “마우스 스크롤의 리듬감이 안잡히는 상태에서 만화를 그려야 하니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컴퓨터 작업에 능숙해지면서 만화를 담는 그릇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온라인 환경은 독자를 한정시키지 않는다는 점만으로도 작가에게 큰 기회를 안겨줍니다. 여기에 독자와의 소통도 중요한 대목이죠. 만화가가 그림을 그린 뒤 출판하면 끝이 아니라 ‘독자가 내 작품을 어디까지 인지하고 있나’를 그때그때 알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배움이니까요.”

인기 웹툰작가의 경지에 오른 그답게 여유로움이 비친다. 그런 그도 처음에는 “독자의 댓글이 상당히 두려웠다”고 한다. 칭찬이든 악담이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선 시시때때로 평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이내 극복됐다.

“이끼처럼 미스테리 사건을 다루는 스릴러물은 독자의 이해와 오해 사이의 간격이 좁습니다. 그러다보니 작가 입장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수월하게 그림을 그리고 메시지를 담는데 상당히 도움이 됐죠. 또 독자들이 자신이 못읽어냈던 텍스트를 서로 공유하고 이해하는 장면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렇게 웹툰계의 역사로 남은 대작을 탄생시킨 윤 작가는 후배 작가들 역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웹툰을 그리면서 작품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편집자의 태도를 갖게 된 것이 자신에게는 가장 큰 변화라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윤 작가는 또 문화체육관광부, 부천시, 부천만화영상진흥원이 추진 중인 ‘디지털만화유통플랫폼’ 사업을 만화계의 시야를 넓히고 경험을 축적시킬 수 있는 기폭제로 여겼다. 해당 사업은 만화콘텐츠를 모든 디지털 매체로 배급 가능한 퍼블리싱시스템을 구축한 뒤 이를 통해 만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모든 작가가 기능적으로 훈련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새로운 개념을 파악하고 비전을 찾는 일은 모든 작가에게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출판물 100만부를 팔면서 한때 전성기를 누리던 만화가들이 왜 침체기를 맞았는지 뼈아프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실패했던 것이 만화산업을 규제했던 청소년보호법 때문만이었을까요? 시장을 관리하지 못한 만화계의 책임은 정말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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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윤태호 작가는 강풀, 양영순, 박철권 등의 동료 작가와 함께 만화 전문 매니지먼트사 ‘누룩미디어’를 꾸려나가고 있다. 술을 익히고 부풀리는 누룩처럼 만화를 잘 포장해 팔자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들 작가들은 직접 경영에 나서진 않지만, 정례적인 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만화를 활용한 부가판권 사업 등에 깊숙이 관여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작가 스스로 경영자 마인드를 갖추지 않고선 안된다는 생각에서다.

“2000년대 초반 닷컴 열풍이 있던 시절, 한 포털 사이트가 ‘가로로 보는’ 웹만화를 내놨다 실패했죠. 만화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담으려고 했던 것이지만, 웹만화는 마우스를 조작해 위에서 아래로 보는 것이 편리하다는 점을 간과한 거죠. 하지만 지금 스마트폰 환경에서는 터치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된 만화 대부분 가로보기입니다. 이처럼 앞선 실패는 때로 후일의 경험이 되기도 하죠. 만화 작가들도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미래를 현실로 구체화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할 때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