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비 큰 장 서는데...국산장비는?

이한범 KBTA 사무총장 인터뷰

일반입력 :2011/08/18 18:46    수정: 2011/08/22 15:37

정현정 기자

“중국 방송장비 국산화율은 90%에 이릅니다. 3D 카메라까지 국산화가 됐을 정도니까요. 광저우 아시안게임도, 얼마 전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도 중국산 장비로 중계가 됐습니다. 하지만 국내 장비산업은...”

18일 ‘디지털방송 신기술 발표 및 신제품 전시회’ 현장에서 만난 이한범 한국방송기술산업협회(KBTA) 사무총장은 열악한 국내 방송장비 산업에 대한 불안감과 정책 당국에 대한 불만들을 쏟아냈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20년 무상제공 등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몇 년 후에는 세계 영세업체 시장을 중국 방송장비가 장악하는 건 시간문젭니다. 디지털 전환과 차세대 방송 개발로 전 세계적으로 큰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국산 장비를 육성하기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후원하고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주최한 이날 전시회는 우수한 성능을 갖췄으나 인지도가 부족한 국내 방송장비를 방송사들에게 소개해 국내 방송장비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개최됐다. 하지만 이날 전시회에서 정작 방송장비시장 ‘큰 손’들인 지상파 방송사나 종합편성채널, SI 업체 관계자는 찾기 힘들었다.

“종합편성채널이 곧 출범하지만 제작장비쪽에 필요한 500종 중 국산장비는 10종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국산 장비 종류가 한정돼 있습니다. 종편채널들이 사업계획서 상에 30%를 국산화하겠다고 했지만 사고 싶어도 품목이 없습니다.”

이날 시연된 장비 역시 ‘DTV 변조기’, ‘DTV 중계기’, ‘그래픽문자발생기’, ‘HD.264 인코더’, ‘HD가상광고시스템’ 등 5개 품목으로 방송장비시험인증센터의 엄격한 품질 인증을 통과한 제품들이지만 방송사에서는 주변 장비에 속한다.

업계에서는 국산 방송장비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일관성 있는 정책의 필요성을 요구했다.

“방송통신산업은 기술·서비스·콘텐츠를 책임지는 중앙기관이 담당해야 개발부터 수출까지 일관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양부처가 1개의 산업을 놓고 서로 줄서라고하면 약자인 업체들은 어느 줄로 서야할지를 모르죠.”

방송장비산업 업무가 방통위와 지경부로 이원화돼 있는 상황을 지적한 얘기다. 방통위는 2009년부터 지식경제부와 공동으로 방송장비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방송기술산업정책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과 전파법 등에 의해 주무부처가 방통위로 지정돼있지만 지경부가 2009년 정보화촉진기금을 관리하면서 추경으로 방송장비 고도화를 추진하게 됐다. 하지만 올해 방송발전기금이 방통위로 이관돼 방송통신기술 R&D가 방통위 소관이 된 만큼 주무부처 일원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양 부처 관계자는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경부는 하드웨어 중심의 방송장비를, 방통위는 방송서비스 기반 장비 R&D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처 간 공동회의를 통해 중복지원이 이뤄지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양 부처가 힘겨루기를 벌여 성과 위주의 조급한 정책을 쏟아낼 것을 우려했다.

“정부가 뒤늦게 방송장비 고도화를 추진했지만 방송장비는 중장기적 차원에서 원천기술을 확보해야함에도 산업성장 동력차원에서 조기에 성과를 거두려고 하면 과거처럼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소관부처가 갈린 탓인지 정확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작은 시장에서 억단위씩 차이나는 조사 결과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방송업계 관계자들이 입모아 말하는 국산방송장비의 신뢰도 문제도 국산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국산 장비를 사용하다가 방송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그 책임이 고스란히 방송사 운영책임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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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장비 사용 시 방송사고에 대한 면책기능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유다. 한 편에서는 정부의 육성정책에 기대기보다 체질개선을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는 2015년까지 각국에 디지털방송전환을 권고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디지털 전환은 거의 마무리 단계지만 아직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나라도 120~150개국이나 됩니다. 규모로 따져도 1~2조에 이르는 큰 시장입니다. 국적보다 브랜드가 중요한 시대에 국산장비업체들도 체질개선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