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저가 정책, 시장을 어떻게 흔들었나?

일반입력 :2011/08/06 08:03    수정: 2011/08/07 08:04

남혜현 기자

'누가 애플을 비싸다고 했나'

디자인도 성능도 아니었다. 499달러 짜리 아이패드부터 999달러 맥북에어까지, 애플을 시장 지배자로 만든 것은 가격이었다. 애플은 이제 '보급형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美지디넷은 4일(현지시간) 애플이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전 부문에 가격을 핵심 경쟁요소로 도입했다고 보도했다. 낮은 수익률, 출혈 경쟁, 투자 없는 성장으로 힘들어진 PC시장을 애플이 저가 정책으로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애플은 프리미엄 제품이 아니다. 애플이 최근 발표한 신형 맥북에어는 인텔 2세대 코어i5 프로세서와 썬더볼트, 백라이트 키보드를 채택하는 등 사양을 올렸지만 여전히 999달러다. 동급 사양의 경쟁사 제품이 쉽게 따라가기 힘든 가격이다.

업계는 소품종 대량을 애플 가격 공세의 비결로 꼽는다. 단일 모델로 부품을 싸게 공급받으면서 연구 개발비를 집중 투입한다는 것이다. 이는 수십가지 제품을 내놓고 더 잘 팔리는 제품을 `전략 모델`로 내세우는 경쟁사들이 선택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고배` 마신 아이패드 대항마들

PC업계는 지난 2년간 수많은 아이패드 대항마를 쏟아냈다. 그러나 499달러라는 가격은 누구도 넘기 힘든 벽이었다. 여전히 아이패드는 전세계 태블릿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가격 뿐만 아니라 성능도 아이패드가 타사 제품을 압도하고 있다는 평이다. 지디넷은 아이패드 대항마들은 전부 느리고, 버그가 많으며 무겁고 심지어 배터리 수명이 짧다고 지적했다.

물론 성공사례도 있었다. 삼성전자 갤럭시탭은 7인치 화면 크기로 틈새를 공략했다. 가격도 435달러로 아이패드보다 저렴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아이패드와 정면 승부는 아니었다고 지디넷은 평했다. 경쟁사들이 아이패드를 피해 자기 영역을 찾으려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다만 보안 측면에서 안드로이드 태블릿이 유리한 부분도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안드로이드가 악성 코드를 둘러싼 플랫폼 논쟁에서 유리하다는 평이다. 지디넷은 악성 코드 전쟁이 애플의 행복을 앗아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울트라북 성공, 인텔 공급가 낮춰야

애플은 맥북에어를 앞세워 PC 시장서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PC업체들은 태블릿 시장 견제 뿐만 아니라 맥북에어 공세를 막아야 하는 이중고에 처했다.

이같은 상황서 인텔이 발표한 `울트라북`은 맥북에어를 정면으로 겨누었다. 션 말로니 인텔 부사장은 오는 2012년말까지 소비자 노트북 시장 40%를 '울트라북'이 점유하도록 지원할 것이라 밝혔다. 얇고 세련된 디자인에 성능과 보안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인텔이 프로세서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라고 외신은 전망했다. 애플이 맥북에어 사양을 업데이트 하면서 가격을 전작 그대로 유지하는 파격을 선보여서다.

울트라북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인텔이 프로세서 공급 가격을 확 낮춰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적어도 PC업체들이 프리미엄급 노트북을 1천 달러 이하로 낮추려면 인텔의 공급가 정책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스플레이와 운영체제, 애플 공세 매서워

시중 27인치(해상도 2560x1440) 디스플레이 제품 중 애플의 썬더볼트 모델보다 싼 제품은 없다. 삼성이 S27A850D 모델을 100달러 가량 더 싸게 발표했지만 사양면에서 동급으로 보기 어렵다.

삼성 S27A850D는 49와트 스피커와 썬더볼트 I/O 허브를 탑재하지 않았다. 애플 신형 디스플레이는 USB 2.0, 파이어와이어800, 기가비트 이더넷, 썬더볼트 등 다양한 입출력단자를 지원한다.

애플의 맥 운영체제인 OS X 라이언은 29달러에 출시됐다. 49달러 짜리 서버 버전은 DNS, 가상랜 등의 기능을 포함했으며, 클러스터 파일 시스템, 메일, 캘린터 서버 등을 지원한다. 타 OS 중 가격경쟁력을 가진 것은 오직 리눅스뿐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는 소매점에서 이같은 가격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심지어 MS는 가격인하를 원하지도 않는다. MS는 검색처럼 수익을 내지 못하는 부문을 지원하기 위해 윈도의 가격을 유지해야 한다.

■저가 유통이 아닌 저가 생산으로

PC업체들은 MS와 인텔의 제품개발에 의존하면서 제품 혁신에 인색했다. 단순히 부품을 조립하고 판매하는 유통업체와 다를 바 없었다. PC업체의 관심은 가격 경쟁을 통한 매출증가에 쏠렸다. 이는 애플의 득세 이전까지 성공적인 전략이었고, 윈도의 독점과 PC 가격 하락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같은 현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꿈꾸지도 않았던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시대가 다가오면서 PC 판매량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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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제조업체들은 수익유지를 위해 개발비용을 줄이고 대량으로 핵심 부품을 공급받기 위한 투자를 꺼린다. 반면, 애플은 핵심 기술을 독점으로 확보하기 위해 소규모 기술 회사를 인수하고 있다.

이는 애플이 IT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장기적인 경쟁 전략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애플은 지금 저가 정책으로 새로운 IT역사를 만드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