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IT부서가 시스코를 못 버리는 이유

[특별기획]네트워크 엔지니어의 생태계①

일반입력 :2011/07/26 09:51

어느 기업이나 인재육성을 외친다. 기업 성공이 사람을 키우는데 달렸다는 인식 때문이다. 문제는 회사 직원뿐 아니라 외부의 사람까지 키워야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네트워크업체 시스코시스템즈는 회사 내부 직원의 역량 강화와 별도로, 외부의 네트워크 엔지니어 육성에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육성 시스템 생태계를 구축하고, 후방에서 지원하면서 전문가를 양성했다. 그들은 지금 시스코의 사업을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

국내 기업중 네트워크 제품으로 시스코를 고집하는 곳이 많다. 그들이 주니퍼네트웍스, 브로케이드, HP 등 경쟁사 제품이 시스코와 대등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오히려 시스코가 가장 비싸다. 그래도 쓰는 이유는 '사람' 때문일 것이다.

■시스코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 널려있는 엔지니어

국내 모기업의 IT관리자는 “시스코를 쉽게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엔지니어를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장비에 장애가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해줄 시스코 엔지니어가 곳곳에 존재한다”라며 “그에 비해 다른 네트워크 업체의 엔지니어는 구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시스코 엔지니어는 SI업체, 시스코 채널·파트너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회사 IT부서 내 네트워크 담당자도 시스코 공인자격증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스코 공인자격증은 네트워크업계에서 전문가란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시스코 경력 인증제도(CCC, Cisco Career Certification)를 통해 LAN에서 WAN까지 네트워크의 전반에 걸친 지식을 검증받는 것이다.

CCC 자격인증은 네트워크 설계(Design)와 네트워크 지원(Support)의 2가지 시험 과정으로 구분된다. 기술레벨에 따라 입문과정 CCNA, 중급과정 CCNP, 전문가과정 CCIE 등으로 나뉜다. 이중 최고레벨인 CCIE는 네트워크 업계에서 ‘꿈의 자격증’으로 불릴 정도다.

네트워크업체의 한 임원은 “시스코가 오랜 기간 업계를 장악하면서 엔지니어들이 폭넓게 퍼졌다”라며 “시장점유율과 엔지니어풀 중 어느 것을 먼저라고 할 수 없지만, 엄청난 인원의 엔지니어 수는 시스코의 시장 장악력에서 탄탄한 축을 담당한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시스코만큼 엔지니어 육성에 성공해 거대한 생태계를 구축한 곳은 없다. 주니퍼네트웍스와 HP가 시스코에 상응하는 자격증제도를 운영하면서 지원정책을 펴고 있지만, 아직 시스코에 못미친다. 다만, 경쟁업체들이 응시료 지원, 아카데미 신설 등으로 상당한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엔지니어 육성과 사업성공이 얼마나 밀접한지 확인가능하다.

시스코의 육성 생태계는 일선 학교부터 시작된다. 시스코 네트워킹 아카데미에서 개발한 커리큘럼과 교육자료 등을 고등학교와 대학에 공급하고, 강사진을 육성한다. 학생들은 학교 교육과정의 일부로 강의를 듣고 직접 실습한다.

패킷트레이서란 SW로 네트워크 컨피규레이션과 관련한 모든 실습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며,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비즈니스 경험을 위한 시뮬레이션 게임도 개발했다. 1년마다 네트워킹 경진대회를 개최해 학생들을 독려한다.

2년간 학교에서 정식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CCNA자격증을 취득할 수준의 지식을 쌓게 된다. 실습위주의 커리큘럼으로 일선에 투입될 때 경쟁력도 높다. 한해동안 시스코 네트워킹 아카데미 등록 학생만 전세계에 연간 100만명에 육박한다.

4월 30일 현재 한국학생은 4천167명이다. 과정을 지나쳐간 학생이 3만천 69명이며, 시험볼 자격을 갖춘 학생이 5천402명이다.

네트워킹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은 철저히 네트워크 일반지식에 국한된다. 시스코 제품에 맞춰진 내용은 없다. 말그대로 네트워크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것이다. 수익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사회공헌사업(CSR)의 일부로서 철저히 수익성을 배제한다.

■위기의 시스코, 지표에 없는 수익을 볼까?

그러나 인터넷 혁명을 등에 업고 네트워크황제로 등극했던 시스코도 최근 흔들리고 있다. 직원 6천500명을 해고하고, 셋톱박스 공장도 매각했다. 비용 10억달러를 절감하기 위한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시스코는 그동안 매출대비 높은 고용률을 유지해왔다. 감원은 적당한 기업규모를 찾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감원과 비용절감 강조로 보이지 않는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용절감은 지출을 줄이는 데서 출발한다. 수익성에 모든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사업에 도움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예산을 줄여버린다. 비용유발 외에 수익지표로 나타나지 않는 사회공헌사업(CSR)은 수익성 논리에 직격탄을 날린다.

현재 시스코의 네트워킹 아카데미 운영과 지원, 경진대회 예산은 영업조직에서 할당받도록 돼 있다. 현장의 실적 압박과 직접 마주치는 각국의 지사일수록 사회공헌사업에 소홀해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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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코에게 위기상황은 처음이 아니다. 2000년 닷컴버블이 일시에 꺼지던 당시 시스코도 위기를 겪었다. 당시 시스코는 대량의 장비를 일선 학교에 무상기증했다.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면서 상생기업이란 평가를 받았다. 시스코는 그를 터닝포인트 삼아 본궤도를 되찾았다.

근본적인 목적을 '엔지니어 10만대군 양성'에 두지 않았더라도, 지금 시스코를 버티게 하는 것은 사람이다. 중요한 시점. 사람에 대한 시스코의 선택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