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자동차·반도체처럼 국가산업으로”

일반입력 :2011/06/22 12:56    수정: 2011/06/22 14:38

전하나 기자

“한류는 언젠가 떠난다. 그 이후를 채울 콘텐츠를 키워야 한다.”(박창식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장)

“언제나 유통이 갑, 콘텐츠는 여전히 을이다.”(조민환 나비픽쳐스 대표)

“지원 바라지 않으니 구조만이라도 바꿔 달라.”(홍승성 큐브엔터테인먼트 대표)

문화체육관광부가 21일 서울 상암동 문화콘텐츠센터에서 연 ‘콘텐츠산업 재정 확충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국내 콘텐츠 전문가들은 K-POP으로 대변되는 신한류 붐을 지속하려면 콘텐츠 산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특히 재정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현장의 목소리 “콘텐츠를 슈퍼갑으로”

이날 토론자로 나선 조민환 나비픽쳐스 대표는 콘텐츠산업 육성에 있어 생산자에 대한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TV와 극장에서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로 넘어가면서 유통과 배급업자들은 더욱 힘이 세졌고, 콘텐츠는 더욱 약자가 됐다”며 “콘텐츠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해서 생산자를 돌보는 것에 소홀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콘텐츠 생산자를 파트너가 아니라 단순 하청 업체로 생각하는 사회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형 콘텐츠 생태계 육성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얘기다.

특정 장르에 집중된 지원 정책에 대한 질타도 쏟아졌다. 이현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은 “유독 만화에만 한류가 없는데, 태생이 만화방 출신이다보니 산업이라고 하면 아직도 걸음마인 탓”이라면서 “적은 재원 안에서 통합형 콘텐츠 지원이 이뤄지다보니 만화에 대한 지원범위와 규모는 점점 위축된다”고 지적했다. 정책 이슈를 중심으로 통합하면 시장이 큰 게임영상 분야에 집중될 수밖에 없단 주장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2월 문화부가 주최한 ‘대국민 콘텐츠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콘텐츠의 원천인 만화가 타산업군에 비해 굉장히 홀대받고 있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콘텐츠산업을 둘러싼 성숙하지 못한 사회적 담론에 대한 불만도 표출됐다. 최관호 게임산업협회장은 “세계에서 최초로 온라인게임을 성공시키고, 게임으로만 2조원에 가까운 수출 성과를 올리는 대한민국은 수출선진국인 동시에 규제선진국”이라면서 “게임산업을 유해매체로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뿌리 뽑히지 않으면 업계 전반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 “콘텐츠, 자동차·반도체처럼 키우겠다”

현재 국내 콘텐츠산업은 세계시장 점유율 2.2%, 전체 12만여개 관련 기업은 매출 10억원 미만이 81%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영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콘텐츠산업은 2009년 기준으로 매출 69조원, 수출 26억 달러, 종사자 52만여명으로 2005년 이후 연평균 매출 4.5%, 수출액 18.9%, 종사자 1.4%의 성장세를 거듭했다. 또 콘텐츠 산업은 향후 5년간 연평균 5%대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콘텐츠산업 부가가치 비율이 2.68%인데 반해, 현행 국가 재정 투입비용은 4천868억원으로 국가 전체 예산의 0.16%에 불과한 척박한 수준이다.

때문에 문화부는 지난달 23일 콘텐츠 산업에 오는 2013년까지 1조6천억원을 투입해 산업규모로 세계 7위권 안에 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콘텐츠산업진흥법을 제정해 제도적인 틀을 마련, 4월에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콘텐츠산업진흥위원회도 발족했다.

무엇보다 정병국 장관은 우선 국가 전체예산의 1.12%에 불과한 문화부의 재정점유율을 내년도 2%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했다. 이중에서도 콘텐츠산업진흥예산을 0.16%에서 1%로 확대, 2015년까지 GDP규모대비 콘텐츠산업 비중을 2.7%~5%까지 늘려 나갈 방침이다.

정 장관은 “콘텐츠를 과거 자동차와 반도체처럼 국가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재정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콘텐츠만이 살길…획기적인 지원 해법 없을까?

정부가 “재정지원을 늘리겠다”며 육성의지를 재차 강조하고 나서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콘텐츠산업이 말그대로 신성장동력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1960년대에 철강, 1970년대 자동차, 1980년대 반도체, 1990년대 IT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자 전체 재정의 2~7%를 투입한 것과 비교할 때도 신성장동력 산업인 콘텐츠산업에 대한 재정투자는 크게 미흡하다는 비판도 크게 한몫했다.

더군다나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고급인력이며, 이들을 효과적으로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미래 산업 역시 콘텐츠라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이날 기조연설자로 나선 고정민 창조산업연구소장은 “콘텐츠산업은 청년고용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최적의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 게임사인 엔씨소프트의 2009년 전체 1889명의 직원 중 20~30대가 97%인 것과 현대중공업 종업원의 평균연령이 48세인 것을 비교 분석하며 청년고용의 해법을 콘텐츠에서 찾았다. “국내 게임시장 고용규모는 2001년 1만3500명에서 평균 15.7% 성장해 2009년 4만3365명에 이른다”며 “성장에 비해 고용창출이 없는 제조업과 달리 콘텐츠산업은 성장과 고용창출이 모두 가능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배경에서 고 소장은 “경직된 국가재정시스템을 유연하게 바꿔 투자 배분을 조정하고 새로운 콘텐츠산업 분야에 대한 빠른 재정 전환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 소장은 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한 기금 신설도 하나의 방법으로 조언했다.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가 복권기금을 활용하는 것을 모범사례로 들기도 했다. 또 “부처간 융합 프로젝트의 강화로 부족한 콘텐츠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며 숨은 재원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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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최영호 용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업계가 바라는 지원은 직접 지원”이라며 “음악이나 게임, 만화 등 직접구매 콘텐츠는 캐시백 제도를 도입하고 콘텐츠 제작자가 책임을 가지고 제작할 수 있게 신용담보대출의 확대도 시급하다”고 구체적 방법을 제시했다.

이어 “콘텐츠 산업의 특성상 초기 실패 위험이 높기 때문에 단계별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콘텐츠 분야 금융 선진화, 성공한 콘텐츠의 부가 판매 촉진, 철저한 사후 관리를 통해 지원 효과 분석에 따른 지원 사업의 상시적 재검토 등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