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위한 '셧다운'인가…각계각층 반대 물결

일반입력 :2011/04/27 15:24    수정: 2011/04/27 19:10

전하나 기자

청소년들이 자정부터 새벽6시까지 게임 이용을 못하도록 강제하는 '셧다운제'가 국회 법제사법위를 통과한 후 각계각층의 반발이 거세다. 더욱이 규제 적용 연령이 관할부처 합의로 정해진 '16세 미만'이 아닌 '19세 미만'으로 높아진 수정안이 28일 본회의에 상정된다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학계·산업계·법조계 뿐 아니라 학부모와 청소년으로부터 셧다운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문화연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공동 주최로 27일 열린 '셧다운제에 대한 제언'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셧다운제가 실효성 없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강한 우려를 표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병찬 변호사(법무법인 정진)는 헌법적 관점에서 바라본 셧다운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목했다. 그는 법률에 의한 국민의 기본권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헌법의 기본원칙이 존재한다며 셧다운제는 청소년의 일반적인 행동 자유권과 게임업계 종사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 부모의 교육 및 양육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무엇보다 셧다운제는 게임중독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볼 수 없다며 게임이 기성세대에게 낯선 미디어라고 해서 확증도 없이 모든 사회적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해 억압하려고 한다면 풍요로운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임개발자인 김종득씨는 토론에서 IT인프라 육성과 벤처 붐을 타고 게임 업계에 입문한 당사자로서 지난 15년간 만들어 온 게임이 유해물이라는 생각에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또 프로게이머 혹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아이들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셧다운제는 아이들을 구제하는게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것 아닌가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김민규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셧다운제를 생활과 문화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셧다운제는 현상적으로 시간과 산업 규제로 나타나게 되겠지만 (더 큰 문제는) 개인과 가정이 법률에 의해 짜여진 시간표에 의해 생활하는 것이 일반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가 게임중독이라는 역기능적 현상만 부각시키고 있지, 게임이용과 지도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에 대해선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날 청소년 자격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검은빛(별칭)은 문화생활에서 방치받고 있는 청소년의 삶을 얘기했다. 그는 사회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적인 제약, 경제적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게임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며 국가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청소년에게 유일한 문화를 뺏어가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셧다운제를 청소년들이 아픈지 안아픈지 알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해열제나 진통제를 먹이는 상황이라고 빗대며 (규제가 아닌) 청소년 복지를 확충해달라고 요구했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김혜정 씨도 이 같은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는 현재 대형 병원에서 게임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고2 아들을 둔 학부모라고 신분을 밝히며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는 아이의 동의 후 치료를 시작하면서 게임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의 도피처라는 것을 알았다며 셧다운제는 아이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구해줄 수 없다고 직언했다. 또 대한민국은 게임을 권하는 사회라며 아이들이 게임에 의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극심한 학습노동을 강요하는 환경부터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셧다운제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선 우리 아이가 셧다운제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청소년들의 진지한 고민 없이 일부 사람들의 편견을 이유로 아이의 자율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또 (셧다운제가 도입되면) 게임하길 원하는 내 아이와 공범자가 될 것이라며 부모로서 자정을 넘어 게임을 하느냐 아니냐의 여부는 아이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게끔 하고, 또 책임은 부모와 함께 지는 배움의 과정을 익혔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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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을 진행한 정소연 문화연대 대안문화센터 팀장은 셧다운제와 관련한 일련의 입법절차는 너무나 폭력적이라며 게임에 대한 불온한 시선들을 거두고 문화사회적인 대안을 논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같은 날 경실련,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는 각각 성명서를 내고 국회와 정부 당국에 셧다운제 재검토를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