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술과 예술의 경계, 그 어디쯤…

기자수첩입력 :2011/04/22 16:13

봉성창 기자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호기심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책이 바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사랑의 기술'의 영문 제목은 'The art of loving'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를 보고 '사랑의 예술' 쯤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이러한 오해가 벌어지는 것은 서구 사회에 대한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예술과 기술에 별다른 경계를 두지 않았다. 우리가 미술과 역사 시간에 배운 수많은 예술가들은 당대 최고의 기술자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당시 미술이나 조각은 예술 작품 이전에 하나의 사고 파는 상품이라는 점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이와 같은 예는 또 있다. 태권도나 쿵푸, 가라데와 같은 체술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달랐다. 일본은 무도라고 했고 중국은 무술이라 했으며 우리나라는 무예라고 했다. 이처럼 기술과 예술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매우 밀접하다.IT 분야에서도 예술에 대한 관심은 끊임이 없다. 방법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같기 때문이다.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치를 창조한다는 목적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바로 '창조'다.'창조'는 인간이 생겨나면서 짊어진 숙명과도 같다. 인간은 끊임없이 창의성을 발휘해 문명을 발전시켰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창조와 생산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공급이 있으면 수요가 있다는 낡은 경제 이론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21세기 산업 흐름을 살펴보면 창의력이 발휘되지 상품은 결국 외면 받는다. 애플의 '아이폰'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IT 업계에서도 요즘은 이러한 예술적 영감을 중요시하는 추세다. 때문에 예술 분야와의 콜라보레이션(협업)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별로 돈이 될 것 같지도 않아보이는데도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한다. IT 기업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치를 예술의 힘을 빌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인텔은 지난해 현대 음악이나 미술, 영상 등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더 크리에이터 프로젝트'라는 행사를 열었다. 서울을 비롯해 뉴욕, 런던, 상파울루, 베이징 등 전 세계 5개 동시에서 동시에 진행된 행사다.이 행사에는 인텔이 생산하는 그 어떤 제품도 전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텔은 그 어떤 기업보다 이러한 행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통해 창조적 크리에이터들이 가진 예술적 영감과 인텔의 기술이 같은 선상에서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이러한 니즈가 이들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기술과 예술의 이같은 '밀애'는 비단 기술의 일방적인 구애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도 기술을 몹시 원한다. 더 이상 물감과 붓만 가지고 예술적인 영감을 표현해 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일짜김치 이러한 가능성에 주목해 세계적인 예술가 반열에 올랐다.당장 서울역 앞 건물에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예술 작품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 건축물의 외면에 LED 조명을 설치해 그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로 만드는 '미디어 파사드' 작품이다.이러한 발상은 사실 대형 건물을 홍보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옥외광고'가 시발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LED나 대형 디스플레이 기술이 접목되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디지털 샤이니지'가 발달했고, 결국 도시 사람들에게 심미적 가치를 제공하는 '미디어 파사드'로 발전하기에 이른 것이다.지난해 12월에는 주목할만한 행사가 열렸다.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작품 전시회 '테크네의 귀환'이 그것이다. 이 전시회에는 지난해 7월 금천예술공장이 공모한 '다빈치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선정된 11명 19개 작품이 전시됐다. '테크네의 귀환'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전시 행사에 그치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기술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산업적으로 접목 시키는 선순환 고리를 제시했다. 그동안 수많은 예술가들과 기술자들이 해왔던 그 방식 그대로다.재미있는 점은 '테크네'라는 용어다. '테크네'는 기술이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다. 이 말은 로마인들에게 '아르스'라고 불렸고 유럽으로 넘어가 '아트'가 됐다. 뿐만 아니라 '테크네'는 테크놀로지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기술과 예술은 그 뿌리가 같다.요즘 몇몇 대기업들도 예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자사의 제품의 유명 예술가들의 문양이나 작품을 입히기도 하고, 혹은 협업을 통해 특별한 제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물론 이러한 시도들도 기술과 예술이 만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양 분야의 내재된 철학을 공유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기술에 치우쳐 있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만 감동을 주기는 다소 어렵다. 

기술과 예술의 만남은 중매가 아닌 연애로 이뤄져야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