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규제의 미로에서 길을 잃다

일반입력 :2011/04/18 13:24    수정: 2011/04/18 17:16

정윤희 기자

“규제는 최소한의 필요악일 뿐, 적법한 이용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 개방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일단 규제부터 만들고 보는 현행 법 제도에 각계각층에서 ‘규제의 천국’이라는 날 선 비판이 나온다.

문제는 인터넷 규제가 때로는 여론 통제의 수단이 되는가 하면, 존재 자체만으로 적법한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정상조 서울대 교수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인터넷이 개방돼 있는 것이 후생을 증대시킨다”며 “실명확인제, 사이버 모욕죄 등은 대다수 선량한 시민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인터넷 규제에 대한 지적은 해외에서도 쏟아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우리나라의 인터넷 실명제와 게임 사전 심의제가 국가 평판을 깎아내린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것은 게임물 사전 심의제도 때문에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안드로이드마켓에 게임 카테고리가 없는 점, ‘미네르바’ 사건, 인터넷 실명제(제한적 본인확인제) 등이다. 이 잡지는 해당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기 드문 일”이라고 비난했다.

■인터넷 규제,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인터넷 규제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김기창 고려대 교수는 지난 15일 서울대 기술과 법 센터에서 주최한 ‘인터넷 개방성:현황과 과제’ 세미나에서 “일단 기본적으로 본인 인증과 실명 인증을 혼동하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인터넷 개방성과 법 규제,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졌다.

김 교수는 “본인 확인의 핵심은 유일성에 있다”며 “애초에 공표되는 것을 전제로 한 주민등록번호로는 실명 확인만 가능할 뿐, 실제로 본인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법령에서도 실명확인과 본인확인의 경계는 애매모호하다. 공직선거법상에는 ‘실명확인’ 조치(제82조 6)를 명시하고 있지만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본인확인’ 조치(제44조 5)만 존재할 뿐이다. 정통망법 상의 본인확인 조치에도 확인 수단이나 확인 주체에 대한 언급은 없다. 결국 사이트 운영자는 공인인증서나 본인확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3자를 통해 실명확인을 본인확인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교수는 실명확인이 본인 확인처럼 사용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꼽았다. 공인인증서나 아이핀 등 본인확인 수단이 초래하는 경제적, 기술적, 사업적 부담과 애초에 입법자가 희망했던 입법 의도를 충족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는 ‘행위’로 하여금 이용자에게 심리적 압박 효과를 준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결국 정부는 익명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본인확인을 도입한 셈인데, 정작 인터넷은 익명성을 유지하기 매우 어려운 매체”라며 “인터넷에서 완전 익명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TOR, 프리덤박스 등 특정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네르바법 위헌, 표현의 자유와 상관없어”

이민영 카톨릭대 교수 역시 미네르바 사건을 예로 들며, 인터넷 규제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인과관계가 있어야하고, 시간적으로 위험이 급박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규제나 제재가 가능하다”며 “기본적으로 인터넷은 자율 규제로 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의 전기통신기본법(제47조 1) 위헌 판결에 대해서는 한 발자국 떨어져 볼 것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일각에서는 헌재의 위헌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며 “헌재의 결정은 제헌법정주의에 따라 명확성 위배의 측면에서 봐야지, 표현의 자유와는 상관없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즉, 헌재의 위헌 판결은 전기통신기본법 조항 중 ‘공익을 해할 목적’과 ‘허위의 내용’이라는 부분이 어떤 의미인지 명확치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잘 보장돼있지 않다”며 “지금 인터넷의 개방화, 보편화와 맞물려 논의해야할 것은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자정작용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는 이용자 스스로가 자율적, 자정적 상태에서 글을 올리고, 만약 허위가 있다면 다른 선한 생각과 논의를 함으로써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모바일 패러다임 변화, 규제도 변해야

패러다임 변화도 인터넷 규제 완화가 필요한 이유로 꼽혔다.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등 다양한 IT기기가 확산되면서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규제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송경재 경희대 교수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인터넷 강국이라는 환상을 뜯어먹고 살았다”며 “이제 모바일 생태계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개방성 논의는 당위성이 아닌 이익의 관점에서 논의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과거에는 국가가 인터넷 개방성을 막는 가장 큰 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인터넷 기업들로 인한 개방성 훼손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며 포털과 모바일 플랫폼의 관계에 대해서 ‘경쟁관계’로 정의했다.

공인인증서의 한계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PC 환경만 고려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나 모바일 등 IT 환경이 다양화되는 현실에서는 뒤쳐진다는 주장이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모바일로 단 돈 1만원을 이체하려고 해도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며 “다양한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나오는 상황에서 큰 장애”라고 말했다. 여기에 “그럼에도 정부 기관은 공인인증서에 대해 맹신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고 있어 합리적 논의가 힘들 정도”라고 꼬집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다양한 대안들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폰(피처폰), 스마트폰 할 것 없이 표준화된 웹사이트를 제공하자는 모바일OK, 방통위가 발표한 스마트사인 등이다.

류 소장은 “여전히 공인인증서 사용을 필수로 했다는 점은 문제”라면서도 “공인인증서를 사용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최선의 답”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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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현재까지 공인인증서가 유지된 이유는 불신이 기반이 됐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대안을 만들어도, 신뢰 사회가 되지 않기 전에는 해결이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개방성이 전제돼있는 플랫폼”이라며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개방성과 중립성 논의는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