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없는 3D TV, 스마트 아닌 바보상자"

일반입력 :2011/03/23 15:25    수정: 2011/03/23 17:54

남혜현 기자

3D가 1년여 만에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개운한 상황은 아니다. 관심의 초점이 삼성전자와 LG전자간 기술력 갑론을박이기 때문이다. 오가는 험한 말에 법적대응도 논의된다. 불구경 다음으로 재밌다는 싸움 구경이지만, 사태를 지켜보는 이는 불편하다. 그 많던 3D 논의가 디스플레이 관련 말싸움 하나로 요약되는 분위기라서다.

물론 국내 3D 산업의 근간에 디스플레이 업체가 버티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은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세계적인 강국이다. 삼성과 LG가 전세계 TV세트 시장서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80%를 넘어섰다. 프리미엄으로 일컬어지는 3D와 스마트 부문에서도 한국은 자칭 '월드 넘버1'이다.

그런데 시청자 입장은 업계와는 한발짝 떨어져 있다. 내 집 거실 3D TV의 기술 방식이 셔터글라스냐 편광이냐보단, 이 TV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뭐냐에 더 관심이 간다. 3D TV를 샀는데 볼 수 있는 콘텐츠가 겨우 신작 영화 몇 편이라면, 굳이 비싼 돈들여 신제품을 장만할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같은 질문을 안고 한국리얼3D콘텐츠제작자협회(이하 협회)를 찾았다. 협회는 지난해 5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단체로 50여개 회원사가 참여해 출범했다. 하드웨어에 비해 다소 뒤처진 3D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해 제작을 지원하고 국내외 보급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도에서다.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태섭 협회장은 3D 디스플레이 산업도 결국 콘텐츠가 동반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며 정부의 지원과 하드웨어 세트업체의 관심, 제작자들의 프로의식이 결합된다면 국산 3D 콘텐츠로 기대를 걸어볼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두르면 졸속 콘텐츠만 양산

헐리우드에서 만들었다고 전부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아바타 이후 눈에 띄는 3D 작품이 없다는 게 그 증거죠. 오히려 콘텐츠 질과 상업성 부문에선 국산이 경쟁력 있습니다. 얼마전 개봉한 슈퍼주니어 3D 콘서트는 좌석 점유율 1위에 올라 상영을 1주일 연장했죠. 극장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며 야광봉을 흔드는 사람들은 새로운 체험을 한 겁니다.

3D 제작현장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다고 자부하는 김 협회장의 전언이다. 그는 국산 3D 제작 능력이 세간의 편견처럼 형편없지 않다고 항변한다. 오히려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3D제작하는 것을 보면,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 팀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인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국산 3D 콘텐츠 제작이 더디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김 협회장은 산업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정치인들의 의식'을 꼽았다. 시대는 이미 콘텐츠와 하드웨어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생태계 중심으로 재편됐는데, 산업 지원을 위해 예산을 집행하는 정치인들은 아직도 '굴뚝'만이 산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창의력과 연출력 그 자체가 고부가치 산업이라는 것을 정치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그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해도 현실에서 제일 먼저 부딪히는 벽은 창업자금 대출을 위해 방문한 은행의 담보 조건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지식산업이야 말로 지금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며 부동산이나 공장이 있느냐가 확인돼야 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협회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3D산업에 관심을 갖고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2D 콘텐츠에 비해 제작비가 20~50% 가량 더 드는 것을 감안해 부족한 제작비용을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작비 문제가 풀리면 콘텐츠 생산도 눈에 띄게 늘어날 것이고, 콘텐츠가 쌓여야 TV도 더 많이 판매될 것이란 논리다.

김 협회장은 콘텐츠 제작사들이 활발하게 3D 산업에 뛰어들게 하기 위해선 부족한 자금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가 정착돼야 한다며 그래야만 선투자에 대한 악순환이 해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협회의 역할도 3D 콘텐츠 지원에 초점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개별 콘텐츠 업체별로 정부 지원 사업에 응모하는 것이 아니라 협회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해 협력하거나 자체 분배하는 식의 진행을 선호한다는 입장이다. 산업 초기인만큼 공적인 의미를 내세우면서, 개별 회원사의 이익도 지킬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게 김 협회장의 이야기다.

■올해는 UCC 3D 콘텐츠 혁명의 해

김 협회장이 보기에 한국은 3D산업이 발전하기에 최적화된 국가다. 우선 새기술을 받아 들이는데 빠르다. 전세계에서 인터넷이 가장 빠르게 확산된 나라인만큼 3D도 마중물만 부으면 금새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여기에 TV 강국이라는 기본 인프라도 갖췄다. 다만 3D산업에 있어 하드웨어만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현실은 불편하다. 사람으로 치면 한국 3D산업은 지금 편식 중이다.

세트 산업만 무조건 발전시키다 보면 스마트폰과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삼성전자가 지금 피처폰을 가지고는 세계 2위지만, 스마트폰으로는 5위 수준이지요. 3D TV도 마찬가집니다. 어떤 하드웨어든 콘텐츠가 뒷받침이 안되면 성공할 수 없어요.

세트 업체들이 너도나도 '스마트'를 부르짖지만, 뒷받침하는 콘텐츠가 없다면 그 어느때보다 '바보상자'인 것이 TV라는 이야기다. 국내서도 '신' '기생령' '제7광구' 등 3D를 표방한 영화를 제작 중에 있지만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 상황은 '아직 갈 길이 멀다'로 정리된다.

김 회장이 올해 협회가 지난해보다 배로 바빠질 것을 예고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준비하고 있는 사업만 수가지가 넘는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3D 엑스포'다. 이미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엑스포 진행을 놓고 구체적인 상의에 들어간 상태다.

영화제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저희가 준비 중인 건 '축제'입니다. 영화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환기제이고, 실질적으로 관계 있는 개인과 업체를 한 자리에 모으는 마켓 플레이스를 만들어야죠. 3D 콘텐츠를 유통하는 장을 한국에서 먼저 만들어 낸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에 진출시키는 교두보가 될 거에요.

영화제와 사업 박람회, 컨퍼런스를 아우르는 축제가 국내서 개최되면 헐리우드 대작들도 한국에 먼저 찾아올 것이라는 게 김 협회장의 설명이다. 협회는 자체적으로 10월 경 엑스포 개최를 점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3D연대를 조직했으며,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미국이 가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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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의 영역이 엑스포라면 일반인들도 3D 콘텐츠 생산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는 게 김 협회장의 전망이다. 특히 3D 기능을 탑재한 카메라와 캠코더가 보급되면서 소비자들이 창작의 주체로 부각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혁신은 UCC에서 일어날 겁니다. SNS 활성화가 휴대폰에 카메라가 들어서면서 부터라면, 3D 콘텐츠 활성화도 기기의 힘을 보게 되지 않겠어요. 아바타가 3D 1차혁명이었다면 올해는 UCC를 통한 3D 혁명을 기대해도 좋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