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업계, 정부 지원이 간절하지만…

[연중기획]한국IT의 부활 시나리오 ‘콘텐츠2.0’

일반입력 :2011/01/26 09:25

정윤희 기자

식사는 컵라면을 먹더라도 커피는 스타벅스를 마신다. 이미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다.

IT산업에서도 패러다임은 기기 자체가 아닌 콘텐츠로 넘어온 지 오래다. 지난 몇 년간 ‘콘텐츠 산업 육성’이라는 구호가 빠짐없이 들리는 이유다. 전 세계적으로 방송통신도, 애플리케이션도, 라이선스 산업도 콘텐츠를 빼고 얘기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한국은 콘텐츠에 대해 할말이 별로 없다. 아이폰 열풍이니, 3D 영화 ‘아바타’의 성공이니 여기저기서 시끄럽지만, 지금 당장 이들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란 지적이 대세다. 지난 2009년 한국영화 총 제작비가 3천187억원인 반면, ‘아바타’의 제작비용은 5천300억원이다. 규모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다.

물론 잠재력은 크다는 평이다. 그러나 넘어야할 산이 많다. 영세한 기업 규모, 좁은 내수 시장, 부족한 인재 등이 콘텐츠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 결국 콘텐츠 산업의 기초 체력 향상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국내 업계에서 정부 지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단히 이중적이다. 지원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금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선 정부는 가만히 있어주는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까칠한 시선이 쏟아진다. 엔씨소프트나 넥슨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 업체로 성장했느냐는 것이다. 지원책들도 부처별로 따로따로 진행되다보니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들린다.수년째 반복된 지적들이다. 정부가 흐름을 선도하기는커녕,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 또한 마찬가지다.

앱스토어가 이끈 ‘애플앓이’ 후에는 ‘콘텐츠’를 외치는 목소리에 무게가 더해졌다. 감성과 문화, 아이디어가 결합된 콘텐츠가 제조업 등 여타 산업에 미치는 파워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전략적 가치를 파악한 정부도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민망한 장면이 적지않게 연출됐다. 지난해 6월에는 문화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야심차게 내놓은 콘텐츠 가치평가 모델이 발표 현장에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업계의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모델은 약 8개월이라는 기간에 걸쳐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만들었다는 모델이다. 결국 재무구조가 취약한 콘텐츠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평가모델이, 정부의 낮은 콘텐츠 산업 이해도와 탁상 행정이 적나라하게 반영된 모델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영화 업계 한 관계자는 “시나리오, 작품성 등 현장 현실이 반영된 지표가 전혀 없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모델을 개발했다고 했는데 오히려 지금 보니 현장의 목소리 따위는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정부 지원, 육성이냐 왜곡이냐

중소 콘텐츠 기업의 경우 여러 면에서 고충을 겪는 경우가 많다. 자금조달, 기술개발, 마케팅, 해외 진출 등 어려움 투성이다. 그런만큼 정부 지원은 필수적이다.

지원 자체에 태클을 거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중소 업체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있어 정부 지원은 필요충분조건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산업을 몇 천억 원, 몇 조원 규모로만 산출하다보니 정작 콘텐츠 자체에는 집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규모에만 집중해 시장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기업과 중소 콘텐츠 업체 간의 분쟁을 해결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편다는 것이다. 콘텐츠 업계는 대기업과의 공정 거래 환경을 위해 정부가 중량감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양정환 소리바다 대표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콘텐츠를 살린다고 나서서 오히려 왜곡된 사례가 많다”며 “현재 디지털 음원 시장이 대기업 위주가 된 것은 정부의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 디지털 음악 서비스 시장은 소리바다, 벅스, 맥스MP3 등 중소기업들이 초반 레이스를 주도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중소기업은 소리바다가 유일하. 대세는 SK텔레콤 멜론, CJ 엠넷, 네오위즈 벅스, KT 도시락이 장악했다. 양 대표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인수 합병돼 사라진 이유중 하나로 정부 정책 영향을 꼽는다.

“당시 문화부의 정책 자체가 대기업을 들여와서 산업을 체계적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요. 조그마한 중소기업들만 있으니까 정부에서는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시장이라고 본거죠. 우리 같은 중소기업들은 죽을힘을 다해서 시장을 형성하고 개척했는데, 대기업은 손쉽게 진입해 인수 합병 전략을 쓰는 것을 보면 매우 허탈합니다.”

■쏟아지는 지원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문화부는 지난 2006년부터 총 642개 프로젝트에 총 3천878억원 규모를 투자했다. 콘텐츠 진흥을 위한 모태펀드에도 1천954억원을 출자한 상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문화부는 2011년 모태펀드에 상반기 500억원을 출자하고, 글로벌 펀드 2천억원을 민간과 함께 조성할 예정이다. 완성보증제도의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콘텐츠산업 공제조합’ 설립 근거를 만들어 자금난이 심각한 업계에 도움을 주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차세대콘텐츠동반성장협의회를 발족, 콘텐츠산업 진흥 정책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지원금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지만, 우려도 늘었다. 정부 지원이 예전과 같다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돈은 눈먼돈이라는 얘기도 떠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은 프레젠테이션만 멋들어지게 잘하면 된다는 얘기가 있다”며 “지원금을 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보다는 회사 운영 등에 쓰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자금만 지원하고 그치는 것도 문제다. 콘텐츠 업체에서 제작 지원비를 따내 프로젝트에 돌입한다고 해도 인원도 장비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나름 지원금을 쏟아 붓고 있지만, 사실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라며 “카메라 한 대만해도 6억인데 인프라 구축에는 40억원만 배정됐다”고 말했다.

■부처 간 불협화음 축소, 법령 개선 절실

중소 콘텐츠 업체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부처간 협력과 관계 법령 개선이다. 현재 디지털콘텐츠 산업과 관련해 법령을 집행하거나 직간접적으로 발언권을 가진 부처는 지식경제부, 교육과학기술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부, 여성가족부 등이다.

부처간 업무가 겹쳐, 콘텐츠 업체들에 헷갈려 하는 대표적인 분야는 모바일 게임 애플리케이션 콘텐츠다. 여가부가 게임 중독을 해결한다며 셧다운제를 들고 나오면서 문화부와 힘겨루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애꿎은 모바일 콘텐츠 업체만 유탄을 맞았다.

해외에서는 여기저기서 상을 받고 매출 1위에 등극한 콘텐츠라도, 그동안은 국내서 팔 방법이 없었다. 법령도 도와주지 않는다. 현재 국내 스마트폰 오픈마켓에서는 게임 카테고리가 없다. 현행 게임법은 게임물사전심의에 대한 예외조항을 두고있지 않기 때문에 국내법을 수용치 못한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안드로이드마켓은 게임 카테고리 자체를 폐쇄했다.

등급분류를 받은 오픈마켓 게임들은 그나마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에 등록해야 판매가 가능한데, 이마저도 쉽지않다. 지난해에는 애플이 스마트폰용 게임을 개발 중인 복수의 모바일게임사에 게임을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에 올리지 말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요청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콘텐츠 업체에게 돌아온다. 실제로 모바일게임업체 컴투스는 지난해 2분기부터 일반폰의 국내 매출 감소를 경험 중이다. 국내 일반폰 시장이 스마트폰의 공급 확산과 함께 빠르게 감소되는 상황에서, 오픈마켓의 국내 게임 채널은 아직 열려있지 않아 새로운 수익 창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하 게진법)은 여가부와 문화부의 싸움에 2년 넘게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지영 컴투스 대표는 그동안 공식석상을 통해 “오픈마켓에 대한 국내 사전 심의 제도가 완화돼 국내 모바일 게임사들의 경쟁력이 커졌으면 한다”고 말해왔다.

정부 지원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지적했다. 정부나 이동통신사들의 콘텐츠 지원정책이 구체적인 실행과정과 방향성을 보여줘야 중소업체들이 공감하며 따라갈 수 있다 주장이다.

박 대표는 “모바일 콘텐츠 정책을 창업기업이나 1인 개발자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기업 규모별로 균형감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신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업계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공청회와 세미나도 열고, 탁상 행정이라는 해묵은 비판에서 벗어나 다각도로 콘텐츠 산업에 접근하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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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열풍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국내 콘텐츠 생태계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꼽힌다. 그런만큼,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콘텐츠 생태계 조성을 국가 정책과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유병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콘텐츠산업실장은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 기기의 대중화는 신개념 콘텐츠 탄생을 촉진하고 있다”며 “이제 단말기 제조와 방송통신, 콘텐츠개발 등이 개별적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