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여성가족부가 대통령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

기자수첩입력 :2011/01/12 09:06    수정: 2011/01/13 10:11

전하나 기자

최근 한 게임 개발자 A씨가 입주 건물 주차장 지붕 탓에 오픈마켓 게임 등록에 실패한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등급 심의를 받기 위해 필요한 게임제작업체 등록증이 불법건축물에 세들었다는 이유로 발급되지 않은 것이다.

A씨가 “지붕을 헐거나 벌금을 물 수 없다면 이사 가라”는 구청 직원의 조언을 들어야 했던 사연을 올린 인터넷 게시판은 순식간에 들썩였다. ‘좌절 개그’라는 제목의 글은 누리꾼들의 공감을 얻으며 트위터, 블로그 등으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겹겹의 규제 장치와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힘없는 개인의 창작의지를 꺾었다는 의견들로 달궈진 인터넷의 열기가 채 식지도 않은 때였다. 지난 10일 라디오를 타고 “젊은이들이 창의력을 펼치며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기 바란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궁금했다. 한국판 마크 저커버그를 키우겠다는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자신이 글로벌 시장 개척자로 꼽은 박지영 컴투스 대표의 고민. 박 대표는 공식석상에서 “오픈마켓에 대한 국내 사전 심의 제도가 완화돼 국내 모바일 게임사들의 경쟁력이 커졌으면 한다”고 누차 말해왔다.

박 대표의 발언은 현행 게임법에서 비롯된다. 현행법은 게임물사전심의에 대한 예외조항을 두고 있지 않아 국경 없는 오픈마켓에서 글로벌 표준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내법을 수용하지 못한 애플의 앱스토어나 구글의 안드로이드마켓에서는 게임 카테고리를 볼 수 없는 까닭이다.

오픈마켓 자율등급제가 담긴 게임법 개정안은 2년 넘게 국회서 표류 중이다. 파행의 주범은 여성가족부(여성부)다. 여성부가 게임중독 해결 카드로 특정 시간대 청소년 게임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를 들고 나오면서 관련법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지리한 싸움을 해온 것이다.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게임물 직접 규제에 나선 여성부는 업계의 반발에 대해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게임이용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게임산업이 망하지 않는다”며 “업계가 엄살을 부리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산업에 빨간 딱지를 붙인다고 해서 청소년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여성부는 셧다운제를 온라인게임 뿐 아니라 온라인 연동이 되는 스마트폰용 게임까지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과몰입의 부작용이 적은 모바일게임의 산업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다. 또 글로벌 오픈마켓에서 국내법을 강요하는 것은 무모한 시도다.

셧다운제는 안그래도 말 많고 탈 많은 제한적 본인 확인제를 장치로 삼을 공산이 크다. 결국 게임사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일일이 알아야 하는 일종의 인터넷검열이 반복되고, 주민등록번호를 기입하지 않는 해외 스마트폰 게임의 유입 통로는 꽉 막힐 지 모른다.

근시안적 규제만을 들이대는 바람에 정작 여성부가 걱정하는 게임중독의 면면을 따지기도 어렵다. 병리적 현상을 둘러싼 환경 먼저 살피지 않고, 무조건 막고 보자는 힘의 논리를 휘젓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청소년도 소비자도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마크 저커버그를 기르겠다는 나라에서 구체적 로드맵도 없는 일방향의 규제 논리가 판을 친다. 그 사이 젊은 상상력은 가로 막힌다. 실력 있는 개발자들과 똑똑한 소비자들도 오픈마켓의 국경을 넘어 한국 시장을 떠나고 있다. 여성부가 대통령의 말을 제대로 새겨들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