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렬 KISA원장 "제 건강보다 챙기는 것 따로 있죠"

일반입력 :2010/12/21 18:31    수정: 2010/12/21 21:30

정윤희 기자

“건강관리를 생활화 하듯 보안도 마찬가집니다. 위급할 때만 바짝 신경 썼다가 지나고 나면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병을 키우는 꼴입니다.”

취임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서종렬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장은 어느새 ‘보안 건강론자’다. 보안에 대한 민간의 의식수준이 낮다는 걱정이다.

“KISA가 할 수 없는 부분은 민간이 참여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은 보안에 대해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며 푸념한다.

때문인지 의욕이 넘친다. 이를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한 달여 동안 정작 본인의 건강은 제쳐두고 업무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다.

■“보안은 건강관리다”

보수적. 그가 처음 KISA에 와서 생각난 단어다. 우수 인력이 많지만 일을 할 때 무엇이든 규정을 먼저 생각하다보니 혁신하기 어렵단 얘기다. 때문에 동기부여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1차 목표다.

“생각을 많이 해야 되겠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의 핵심 역량이 뭔지, 우리가 부족한 것은 또 뭔지, 지금까지는 이걸 모르고 그냥 규정대로 일을 해온 거죠. 사실 KISA가 얼마나 전문가 집단입니까. 우리의 전문성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안 좋은 버릇은 제때 고쳐야지, 미루다 보면 절대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 서 원장의 신조다. “지금 아랫사람들은 일을 제대로 안하면 쓴 소리 듣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KISA 업무에 대해서는 “다 해본 업무”라며 자신감이 대단하다. 네트워크·플랫폼·콘텐츠에서부터 국제협력에 이르기까지 안 해본 것이 없다. 그러나 이미 쌓은 경험보다는 앞으로 배울 것에 더 관심이 많다. 조금이라도 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아침부터 열심이다. 개인적으로 개인정보보안 기술에 대해서 더 많이 공부하고 싶단다.

“경험상 어떤 일이든 다 정답이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참을 수 없이 가슴이 뛰어요.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토론도 해보고, 답을 찾으려고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죠.”

서 원장 앞에 쌓인 숙제도 많다. 그 중에서도 본연의 업무인 개인정보보호, 인터넷침해 대응 외에 KISA 인원의 절반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와 나주 이전 준비가 가장 큰 과제다.

“현안이 많다고 허둥대면 될 일도 안 됩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그러나 열정적으로 임할 겁니다. 비정규직의 경우, KISA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가 많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계속 어필하고 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서 원장은 욕심이 하나 더 있다. 건전한 인터넷 문화 만들기에 KISA가 적극 나서겠다는 각오다.

“지난 타블로 악성댓글 사건 당시 객관적인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이들을 건전한 토론 마당으로 이끌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가지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서 원장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안주하는 순간 퇴보”

서 원장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표현도 스스럼없다. 본인을 두고는 ‘맨 땅에 헤딩하는 스타일’이라며 웃는다. 그리고 스스로 ‘맨 땅에 헤딩’이 재미있단다.

과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시절, 고정적 수입의 안정적 직장을 미련 없이 떨치고 일어난 일을 대표적 예로 꼽는다.

“이대로 있으면 비전도 없고 40~50대가 돼도 똑같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그만두고 증권회사에 들어갔죠. 88년 당시 증권회사 경쟁률이 상당히 높았는데도 다행히 붙었어요. 안주를 하지 않고 벗어났다는 것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증권회사에 들어가서도 탄탄대로를 달렸다. 지방대 출신이었던 그가 명문대, 경영학 석사(MBA) 출신들을 제치고 4년 연속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뽑혔다. 서 원장은 과감히 현실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증권회사에서는 신입이 들어오면 식품 쪽을 먼저 줍니다. 가장 쉬우니까요. 제일 중요한 것이 전자통신 부문이었는데 곧바로 제가 맡게 됐죠. 그 중에서도 이동통신 시장을 뜬다고 제가 발굴했어요. 돈을 수백억원씩 벌어다 줬죠. 엄청나게 유명한 애널리스트였습니다.”

그러고는 지난 91년 이동통신 시장에 관한 책을 썼다. 서 원장은 지금은 쉽게 구할 수도 없는 책을 기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원장실 책장으로 뛰어갔다. 세월이 흘러 누렇게 변한 책장을 넘기는 손길에 자부심이 넘친다. 이동통신시장이 맹아 단계일 무렵 이 시장의 전망에 대한 책을 쓸 정도로 그는 능력자(?)였다.

KISA도 마찬가지다. 안주하는 순간, 퇴보하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단다. 평소 직원들에게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터넷 전문기관이 되자고 파이팅을 외친다.

■사람 냄새 나는 서종렬

어느새 한 달이 지났지만 서 원장의 취임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 했다. 원장 공모 당시 최종 후보로 압축된 3명 중 서 원장이 유력하다는 ‘내정설’과 국회 진출설도 파다했다.

서 원장의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반드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질문이기에 말을 돌리지 않고 직구를 던졌다.

서 원장은 억울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오히려 “이 자리가 내가 인수위에 있었다고 해서 되는 자리냐. 그 정도로 만만한 자리냐”며 반문하는 폼이 당당하다.

“만약 제가 정말 국회의원이 되고 싶었다면 인수위-KT-KISA 이렇게 거치지는 않았을 겁니다. KT가 민간 기업인만큼 훨씬 활동하기 좋은데 왜 굳이 KISA를 왔겠어요.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오히려 제 어릴 때 꿈은 기업의 CEO였습니다. 기업 대표가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 원장은 ETRI, SK텔레콤, KT를 거친 ‘통신통’이다. 본인 스스로도 “통신 밥만 28년을 먹었다”고 말할 정도다. 관련 업무 경력이 전혀 없는 인사가 ‘줄대기’로 자리를 꿰차는 것이 소위 ‘낙하산’이라면, 본인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하다.

그래서 더 일에 열심히 인가 보다. 주위의 시선에 대해 오로지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절치부심이다.

서 원장은 만나보기 전과 만나본 후가 다르다. 인터뷰 내내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에 인간적인 호감이 갔다. ‘공공기관 원장’이라기보다는 언제든 한 번씩 찾아가 술이라도 마실 수 있는 선배 같다.

그의 희망도 앞으로 오래도록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늙어가는 징조인가 보다”라면서도 긴 세월동안 두고두고 기억하고 같이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KISA 원장’이 아닌 ‘인간 서종렬’의 냄새를 맡았다.

“제가 보기보다 정이 많습니다. 그동안 많이 배우기도 배웠고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이제 인간적으로 오랫동안 친구나 선후배로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년퇴직 후에도 같이 등산도 하고, 가족끼리도 만나고 하는 그럼 사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