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들에게 전자책은 놀이터"

일반입력 :2010/12/15 10:05    수정: 2010/12/15 10:11

남혜현 기자

작가들에게 전자책은 상상력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종이책에서 실험해 볼 수 없던 다양한 형식을 전자책에서는 시도해 볼 수 있는 거죠. 전자책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놀이터가 될 겁니다.

로맨스 소설 '화홍'으로 유명한 작가 이지환 씨를 지난달 경기 안산동에서 만났다. 전자책에 대해 묻기 위해서였다. 혹시나 했던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디지털 세대와 소통하지 않는 작품은 화석이 될 것이다고 말하는 전자책 지지자였다.

이지환 작가는 로맨스 소설 1세대 작가다. 지난 10년간 스무편의 작품을 출간했다. 출판계에서도 그는 '찍어내면 팔리는' 블루칩으로 통한다. 10년 전, 온라인에서 처음 연재했던 작품이 그야말로 '히트'를 치면서 그는 종이책 시장서도 승승장구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스스로를 '종이책에 더 적합한 작가'라고 칭한다. 그럼에도 전자책은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단언한다. 지금 10~20대 젊은 층들이 디지털화에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과 소통하지 못해 읽히지 않는 책은 존재이유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국내 유명 작가 중 유일하게 전자책으로 신간을 먼저 출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전자책은 종이책과 보완관계…작가들엔 '놀이터'종이책으로는 비용과 시간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을 전자책에선 해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작가가 생각했던 두 가지 결말을 하나는 종이책으로, 다른 하나는 전자책으로 내볼 수 있죠. 두 가지 결말을 독자가 모두 종이책으로 구매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나머지 하나가 전자책이라면 비교적 쉽게 사볼 수 있을 거에요.

그는 작가들이 전자책을 통해 그동한 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마치 십여년전 유행했던 예능 프로그램 '인생극장'처럼 소설의 결말을 다양한 변주로 풀어내는 것도 전자책에서 가능한 실험이라는 것이다. 취향에 따라 행복한 결말과 슬픈 결말을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 선택해 구매해 볼 수도 있다.

이는 전자책 가격이 종이책의 60% 선에서 매겨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독자들이 똑같은 책의 다른 결말을 보기 위해 종이책 구매에 선뜻 지갑을 열지는 못하지만 전자책이라면 부담이 적다고 그는 설명한다.

작가들간 협업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는 동일한 주제와 시나리오를 가지고 작가들이 어떤 식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공동창작도 전자책을 통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하나의 특집처럼 주인공과 주제, 첫문장이 같은 상태에서 작가들이 어떻게 가지를 뻗어 나갈 수 있는지 실험해 볼 수 있다는 것. 독자들 입장에선 좋아하는 작가들의 입심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전자책의 가능성에 대한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좋은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종이책으로 출간할 여유가 없을 때, 먼저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것도 가능하죠. 어떻게 보면 초고의 역할을 전자책이 대신할 수 있는 건데요, 이야기를 먼저 발표하고 나면 저작권이 인정 되기 때문에 작가들 입장에선 유용한 통로로 활용될 수 있죠.

■전자책, 독자에게 약일까, 독일까?

흔히들 출판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전자책이 신인작가들에게 훨씬 유리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신인 작가들이 늘어나 읽을 책이 많아지면 독자들에게 과연 좋은 일이기만 한걸까? 이지환 작가의 생각은 다소 부정적이다. 유명작가에 더 큰 기회가 될 것이란 설명이다.

콘텐츠 종류가 다양해져서 골라서 볼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생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경쟁이 치열해져 읽히는 작품을 내기는 더 힘들어 질 수 있어요. 또 독자들 입장에선 가짓수는 많은데 정작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작품수는 적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황이라고 할까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전자책에서 더 심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팔리는 작가 작품만 팔리는 건데, 독자들이 기존에 잘 알던 작가들 작품만 찾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쌓인 신뢰가 있어서죠.

전자책 시장 활성화를 위해 그가 우수한 콘텐츠가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가 말하는 콘텐츠의 질은 '펀'(Fun)이 키워드다. 재미없는 콘텐츠는 자리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재미가 있어야 사람들이 책을 사죠. 최근 전자책 시장이 장르물에 치우쳤다고 이야기 하는데, 아무래도 온라인에서는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저작물이 인기를 얻게 되더군요. 아무래도 독자들은 인문서같이 무거운 책은 종이책으로 사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까지 강합니다. 전자책이 승부를 보려면 재미라는 오락기능을 강화하면서도 품질이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작가․출판사'가 전자책에 대처하는 자세

그는 전자책이라는 플랫폼이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작가들과 독자들의 인식이 우선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질이 떨어진다는 편견 말이다.

아직까지 작가들은 종이책으로 내기에는 함량부족인 작품을 전자책으로 낸다고 이야기를 하지요. 오프라인에서 성공한 작가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합니다. 작가들 중 일부는 '전자책 작가'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걸 달가와 하지 않는 경우가 많죠.

작가들 스스로도 '책은 역시 종이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온라인에서 출판하는 경우도, 성공 후 오프라인 진출을 꿈꾸는 경우가 허다하다는게 그의 이야기다. 작가들 스스로도 당분간 최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을 전자책으로 내지는 않을 거라고 그는 전망했다. 이 작가는 당분간 전자책은 보다 짧고, 빨리 읽히는 가벼운 이야기가 대세를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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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때문에 전자책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출판사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이지환 작가는 말한다. 종이책보다는 출판사의 역할이 줄어드는만큼, 교정·교열이 취약하고, 또 스토리 구성에서도 취약한 부분이 눈에 자주 띈다는 설명이다.

독자들이 전자책에서 바라는 것은 비교적 짧으면서도 자극적인 내용이죠. 전개가 빠르고 압축적인 내용이 선호된다는 게 종이책과는 달라요. 종이책을 전문으로 출간하는 출판사가 있는것처럼 전자책에 특화된 전문 출판인이 생겨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작가가 써놓은 이야기를 전자책 독자층 입맛에 맞게 조리해줄 수 있다면 콘텐츠 질에 대한 이슈는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