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사이보그로 변신한 최초의 사나이

1998년 8월24일=영국 레딩대 케빈 워익, 생체칩으로 통신하다

일반입력 :2010/08/19 21:07    수정: 2010/08/20 18:07

이재구 기자

■칩이 인간의 피부아래 심어진다

‘생체칩이 내 피부 아래 이식된다’ 2008년 2월 12일 비즈니스위크는 이러한 제목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생체칩의 효과와 부작용을 소개하면서 독자의 판단을 구하고 있었다.

주사기를 통해 인간의 왼쪽 팔과 어깨 사이에 이식되는 쌀알크기의 생체칩은 테프론코팅이 된 칩이었다. 16자릿수로 구성된 실리콘 메모리와 무선송수신 장치로 이뤄져 있으며 스캐너로 정보를 바로 읽을 수 있고 외부로 전송할 수도 있게 설계된 것이었다.

보도는 유사시 칩이식자의 피부를 스캔해 이를 데이터센터에 보내서 신원확인, 건강기록데이터 등의 확인을 할 수 있다는 효용에 대해 전하고 있었다.

전세계가 뜨겁게 반응했다. 대다수 사람들에겐 도대체 그런 걸 만드는 업체가 있다는 사실 조차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미 플로리다주 소재의 베리칩(VeriChip)이라는 회사가 소개됐다. 특히 이 칩이 식품과 의약 등에 관한 한 보증수표라 할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인증까지 마쳤음에도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는 소식도 전했다.

2007년초 베리칩의 자회사 X마크사는 ▲유괴로부터의 어린이 보호 ▲알츠하이머로 방황하는 노인 찾기 ▲범죄자 관리 추적 시스템 등 다양한 용도로 다양한 생체칩(RFID칩)을 만들고 있었다. 도입을 찬성하는 진영을 위한 모든 솔루션이 여기에 있었다.

이 해 6월 미 의사협의회는 “이 칩은 환자 인식에 도움이 되고 안전성,효율성이 확실해 환자기록 접근 보장에 사용될 수 있다”는 권고안을 냈다. 하지만 논란은 뜨거웠고 사람들은 그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인간은 생체칩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까?

“동물 임상실험결과 통증과 함께 종양이 유발됐다. 16자리 숫자를 읽을 수 있는 칩 스캐너를 소유한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정보를 읽을 수 있어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MRI와 함께 작동시 호환이 안돼 사용자가 화상을 입었다는 보고도 나왔다.”생체칩 도입과 관련, 반대진영의 고발과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잃어버린 프라이버시(Privacy Lost)'의 저자인 데이비드 휼츠먼의 기고문 등도 여기에 속했다.

게다가 이 회사가 2004년 10월 주식공개를 위해 증권거래소(SEC)에 제출한 사전 보고서에는 “생체칩 이식시 근육섬유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음도 뒤늦게 드러났다.

‘주라기 공원’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이미 1972년 소설 '전자칩 인간(Terminal Man)'이란 제목의 소설을 통해 ‘제어할 수 없는 칩’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도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치료용 전극 40개를 머릿속에 심었으나 부작용으로 살인마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성경의 요한 계시록 13장과 16장에 나오는 구절들은 생체칩을 무서우리만큼 정확하게 묘사하면서 하느님의 징벌을 암시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생체칩은 단순한 거부감 이상의 것이 되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육십육이라.”(13장 18절)“”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16장 1절)...”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베리칩의 스콧 실버맨 CEO는 “15년 이상 이 유리로 싸인 칩을 사용했지만 통증을 유발했다는 이의를 받은 적이 없다”며 논란을 잠재우고자 나섰다.

이 야단법석은 최소한 10년 전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지능적이 되기전에...

1998년 7월 영국 레딩대. 이 대학 교수인 한 사나이의 마음속은 온통 칩이식 실험으로 꽉 차 있었다. 6개월 전 열렸던 스위스 다보스세계경제포럼 참가 이후 ‘기계속의 진화’란 책의 저자와 토론한 그는 ‘인간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왔고 이제 그 실현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1년 전인 97년 “미래에는 로봇이 지구를 접수할 것”이란 내용을 담은 책 ‘기계의 행진’으로 전 영국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했다. 광장 공포증 치료를 위해 이마쪽 전두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한 교사출신 아버지를 둔 그는 브리티시 텔레콤에서 일한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사나이의 이름은 케빈 워윅이었다.

11년전 피터 코크란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연구소장이 쓴 내용이 그의 뇌리에 선명했다.

“피부 속에 작은 실리콘 조각이 있다면 카드,여권,열쇠없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자동차문,컴퓨터,터미널, 사고싶은 음식에 손을 갖다 대 보아라. 그러면 너는 이를 편리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카드나 열쇠가 필요없는 완벽한 자유. 이보다 더 편리할 수는 없다.”

케빈은 한스 모라벡이라는 미 카네기 멜론대 교수와 만나 나눈 대화도 떠올렸다. 그가 쓴 로봇과 인공지능의 미래에 관한 책 ‘마음의 아이들(Mind Children)'을 주제로 나눈 토론도 생각났다. 특히 실리콘으로 인간 뇌를 만드는 얘기가 그의 맘에 쏙 들었다.

“머지 않아 기계가 인간보다 더욱 지능적일 수 있어요. 인간인 우리가 기계가 되어서 이 흐름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모라벡교수의 ‘로봇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의견은 그의 연구를 더욱 확신시켜 준 것이었다. 그는 칩기술을 인간과 결합해 사이보그(Cyborg)로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 인류최초의 사이보그가 탄생하다.

“유리캡슐 속에 있는 RFID(무선주파수인식)칩을 사람의 몸속으로 옮기려 한다네.”

1998년 봄 케빈은 인공두뇌학과 연구실에 가끔씩 들르던 6~7년된 자신의 주치의에게 말을 건넸다.

“감염이 가장 큰 위험이 될 수 있네. 그리고 몸이 이식을 거부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두게.”

1998년 6월 말 케빈이 신체에 칩을 이식해서 지능형 건물과의 통신 시도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 주치의 조지 불로스가 주의를 주었다.

“그렇다면 대학원생들에게 그런 위험을 지게 할 수는 없겠지. 내가 직접 하겠네. 아내 이레나에게도 말해 두겠네.”

그해 여름 케빈은 인류최초의 신체 칩이식실험을 통해 통신으로 사이보그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봄부터 시작된 칩과 감응하는 설계구조로 만들어진 지능형빌딩도 이미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7월말 레딩대 인공두뇌학과 빌딩. 이식장치를 감지할 수 있는 현관문이 몇군에 설치돼 칩을 이식한 실험자가 지나가면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현관로비에도 같은 방식으로 음성상자 전등이 하나 걸렸다. 문으로 들어가면 컴퓨터가 말을 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케빈은 77년 코크란 BT소장이 책에서 이야기 속 실험을 현실화함으로써 그 스스로 코크란 소장보다 더 인상적으로 인류사에 남게 될 순간을 맞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가 기계를 이용해 평범한 한계를 넘어 육체적 능력이 확장된 인간으로 묘사된 사이보그가 되는 최초의 실험을 한 인물이 되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1998년 8월24일. 그는 자신의 팔에 그가 말한 실리콘칩을 이식해 통신을 하는 실험을 현실로 만드는 작업을 시도했다.

■안녕, 미스터 칩!

1998년 8월 24일 오후 4시 경. 케빈교수는 레딩대의 옥스포드거리를 지나 30분 거리에 있는 조지 불로스의 수술실을 향해 운전하고 있었다. 일정보다 약 30분 늦게 틸레허스트 병원의 수술대에 오른 그는 약 20분간 인류최초로 팔에 통신용 RFID칩 이식수술을 받았다.

사전에 귀띔해 준 BBC의 브라이언 기자는 그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장면을 찍었다.

수술이 잘못되면 오른손을 못쓰게 될지도 모르기에 왼팔에 칩을 이식하기로 해두었던 터였다. 피부바깥층에서 근육으로 구멍을 뚫고 이식장치를 밀어넣는 수술이 시작됐다.

주치의 조지 불로스는 BBC카메라를 보면서 수술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었다.

“과연 현관문에 깔린 코일과 이식장치의 코일이 강력한 신호를 주고 받을 수 있을까?”

25분 후인 5시경 BBC,INS 등 2개 매체와 학교로 돌아간 케빈은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능형빌딩의 현관으로 들어섰다.

케빈은 팔안의 이식장치가 자리잡도록 하려고 이식장치를 적절한 각도로 옮겼다.

“만세”

그가아무리 팔을 뒤틀어도 이식장치는 제대로 작동했고 현관을 통해 움직일 때 보내는 경로 신호도 정확했다. 문틀에서 1미터 벗어난 지점까지 이식장치가 100% 신뢰도로 기능했다. 카메라맨은 케빈이 현관을 지나면 불빛이 깜빡이는 것을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그의 출현에 대한 반응으로 컴퓨터에 그의 홈페이지가 뜨도록 되어 있었지만 이것은 작동되지 않았다. 이 과정의 촬영분은 생략되었다.

BBC기자들은 사이보그가 된 케빈 워윅교수가 컴퓨터로 운영되는 지능형 건물과 너무도 잘 통신하는 모습을 보고 만족해 했다.

■인류최초의 사이보그 부부

다음 날인 8월25일 오후 1시.

“실리콘 칩이 한 영국 과학자의 팔에 성공적으로 이식되었습니다. ...컴퓨터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원격으로 추적하고 있습니다....”

BBC의 수 넬슨기자가 인류 최초로 칩을 팔에 이식해 건물 속의 기기들과 통신하는 사이보그 케빈 워윅교수의 모습을 특종보도하고 있었다.

전날 케빈이 자신의 학과 지능형건물에서 BBC와 INS기자에게만 공개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튿날 전세계 TV,라디오,신문에서 케빈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다음날 영국의 전국지 중 케빈의 마음에 가장 흡족한 제목으로 기사를 낸 곳은 ‘선(Sun)지였다. 제목은 “안녕, 미스터 칩”이었다.

케빈은 실험이후 “컴퓨터는 내게 초감각을주었고 그것이 있음으로써 나는 행복했다. 그대있음으로 나는 행복하였노라. 신용카드 하나 더 갖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뇌의 복잡한 주제들이 느린 기계 움직임 신호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키보드난 무우스대신 이러한 기계로 의사소통의 방해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좋을 것이란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생각은 케빈의 아내에게도 반영돼 2002년 6월 그의 아내 이레나는 스스로 칩을 이식했다. 수술실에서 케빈이 손을 움직였을 때 칩을 이식한 이레나는 케빈의 손 움직임을 느꼈다. 그들은 인류 최초의 사이버부부가 됐다.

AP에 따르면 2007년 9월까지 전세계에서 베리칩을 이식한 사람의 숫자는 2천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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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0일 생체칩인 베리칩의 FDA승인이 효력을 발생하는 날. FDA의 베리칩 승인당시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당시 건강서비스부 장관이었던 토미 톰슨은 이 회사로 전직했다. 그는 “나도 자신도 베리칩을 이식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그 자신은 이식하지 않았다고 당시 비즈니스위크 기자는 전했다.

지금도 생체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별도의 웹사이트(spychips.org)'를 통해 생체칩이식 반대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