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구코너] 인류의 달 착륙, 우주시대 열다

1969년 7월 24일=아폴로11호 우주인, 월석을 가지고 귀환

일반입력 :2010/07/22 17:14    수정: 2010/07/25 09:33

이재구 기자

■미국의 최대 전리품, V-2로켓 과학자들

1945년 5월 8일 독일이 무조건 항복선언을 하기 얼마전 연합군에 끝까지 맞서지 않는 독일인들의 생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였다.

독일 항복 약 두달 전부터 미국은 독일의 최고 과학자를 데리고 와 미국서 일하게 하는 소위 ‘페이퍼클립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이미 독일의 도른 베르거 장군과 폰 브라운박사는 투항하기로 결심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소련군이 곳곳에 진주해 와 있었다.

“우리들 가운데 가장 젊고 가장 영어에 능숙하고 가장 목숨이 값싼 것은 나다.”

발트해 연안 마을 피네뮌데에 설립된 독일의 로켓실험장에서 더이상 일하기를 거부하고 근처에 숨어 미군을 만나고자 하는 그들을 대표해 폰 브라운박사의 동생 마그누스가 나섰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미군진지를 향했다. 맨 처음 만난 미군은 제 44사단의 프레드 P 시나이커 일등병이었다. 그는 “정말로 그런 과학자 집단이 있다면 내일 데려오면 되겠지”라며 청년을 타일러 보냈다.

하지만 다음날 미군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획득하게 된 것은 제 2차세계대전에서 가장 값비싼 전리품 중 하나였다. 발터 도른베르거 장군과 폰 브라운 박사를 비롯, 약 120명을 헤아리는 V-2로켓의 최고 기획 담당자,과학자,기사, 그리고 1톤도 넘는 비밀서류 등을 고스란히 입수한 것이었다. 이어 미군 토프토이 대령이 하르츠 산맥의 V-2공장에서 부품을 300대의 화물차에 가득 실어 반출했다.

“이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들은 독일군을 무찌르고 베를린과 피네뮌데를 점령했다. 그런데도 미군은 로켓기술자를 가로채 갔다. 이처럼 불쾌하고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어디있는가.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을 보고만 있었는가?”

스탈린이 피네뮌데의 로켓과 관련된 모든 것을 미국에게 털린 것을 알고 세로프 장군에게 불같이 화를 낸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것은 훗날 인류 최초의 달 착륙선을 만들 기술자들을 통째로 미국에 빼앗긴 것과 같았다.

인류과학의 가장 위대한 순간을 향해

특히 V-2로켓을 만든 주역 폰 브라운은 인류최초의 달 착륙선 아폴로11호를 성공시킨 아폴로계획의 총책임자가 된다.

1969년 7월 16일 오전 9시32분. 미 동남부 플로리다의 케이프 커내버럴 39A 발사대. 36층 높이(42m), 직경10m의 거대한 우주로켓이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10,9,8,7,6,5,4,3,2,1,발사!구축함의 무게와 맞먹는 2천722톤짜리 로켓은 하늘을 향해 불을 뿜으며 플로리다해안과 육지,그리고 하늘을 온통 오렌지 색으로 물들였다.

암스트롱, 올드린,콜린스 등 3명의 우주비행사는 인류가 만든 발명품 가운데 가장 큰 소리를 만들어 내는 기계인 새턴V 로켓에 실려 달을 향해 떠났다. 새턴V 로켓은 5개의 강력한 F1 엔진을 붙여 만든 3천400톤의 추진력의 로켓으로 38만4천km떨어진 달로 가는 인간의 발이 되었다.

발사 후 매초 약 13.5톤의 연료가 엔진 가장자리로부터 연소실로 흘러 들었다. 1단 로켓은 시속 약 3만9천km로 비행해 약 2시간 후 아폴로 캡슐을 지구궤도에 올려놓고 재가 됐다.

사령선은 달궤도 우주공간에서 180도 회전해 달착륙선 독소리와 토킹해 새턴V호의 3단로켓 위에서 달착륙선을 끌어냈다. 이제 달까지는 3일이 남았다.

“달에서 느긋하게 쉬고 오라고!”

3일째 되는 날 콜린스가 사령선 컬럼비아에서 분리된 착륙선 독수리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독수리가 날개를 갖게 됐다.”

분리된 독수리호에서 암스트롱이 로켓을 분사하며 3만4천피트(10km)아래 달을 향해 하강했다.

착륙 예정 장소는 '고요의 바다'였다. 하지만 자동유도장치가 거미모양의 달 착륙선(독수리호)을 암석투성이인 크레이터 쪽으로 끌고 갔다. 암스트롱은 결국 수동으로 크레이터 서쪽 396미터 떨어진 지점에 독수리를 착륙시켰다.

드디어 달을 밟다

“휴스턴.여기는 고요의 기지, 독수리호는 달에 착륙했다.”

“닐, 고요의 바다, 지상관제소에서 말한다. 우리는 다시숨을 쉬기 시작했다 고맙다.”

휴스턴관제탑에서 응답했다.

1969년 7월 20일 미국 동부표준시 오후 10시56분. 인류최초의 달 착륙선, 닐 암스트롱은 인류최초로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지구에서는 전세계 사람들이 TV앞에서 인류의 이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날인 21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들의 역사적 달착륙에 대해 “독수리가 착륙했다. 두사람이 달 위를 걷는다”는 기사로 이 역사적 순간을 기록했다.

암스트롱이 먼저 사다리를 내려왔다. 그리고 19분 후에 버즈 올드린이 배낭을 메고도 민첩하게 내려와 암스트롱의 뒤를 따랐다.

암스트롱은 저 유명한 달에서의 일성을 내뱉었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달표면에 내려선 두 우주인은 달의 환경이 그들의 작업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기우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달의 암석은 오히려 반들반들해서 한쪽방향으로 미끄러져 균형을 잃을 것만 같다. 그러나 아주 자연스럽과 쉽게 몸을 바로 잡을 수 있다.”

올드린이 그렇게 달의 모습에 대해 지구로 통신을 보내왔다.

버즈 올드린은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잴 레이저 광선의 반사판,지진계,태양풍채집기를 달 표면에 영구히 설치했다.두 사람은 또 “우리는 전인류를 위해 평화롭게 찾아왔다”라는 글자를 새긴 스테인레스 판을 남겨 놓았다.

두 우주인이 달 표면에 머문 시간은 모두 2시간 31분이었다.

■“이제 하늘은 인간세계의 일부가 됐습니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달에 있는 동안 두 비행사에게 전화를 걸어 벅찬 감회를 함께 했다.

“닐, 버즈 모든 잘 있습니까? 나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달에 있는)여러분에게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백악관의 닉슨은 달과의 전화통화가 거리에서 오는 시차로 인해 웅웅거리는데다 오버랩 되기도 하고 한두 단어가 끊기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설문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닉슨의 말대로 이 대화는 “분명히 인류가 건 전화 가운데 가장 역사적인 것”이었다.

“나는 여러분들이 이뤄낸 일에 대해 우리 모든 미국인이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순간은 내 일생일대에 있어서 가장 자랑스런 순간일 겁니다.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나는 그들도 미국인들과 함께 인류의 우주 방문을 인식하고 함께 할 것으로 봅니다. 여러분들의 성공적인 업적 덕분에 이제 하늘은 인간세계의 일부분이 됐습니다.”

당시의 미,소 냉전과 이에따른 핵무기 경쟁에 더해 소련과의 우주경쟁은 이들 양국 정상의 뇌리를 떠날 수 없는 과제가 배어있는 통화였다.

닉슨은 “그리고 여러분이 지상의 우리에게 고요의 바다에서 말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평화와 고요를 지구에 가져다 주는 것 같은 기분을 불러 일으킵니다”라고 이어갔다.

그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달착륙의 한순간과 전인류를 역사를 위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진실로 하나가 됐다“고 선언했다.

■우주기지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오다.

7월 21일 오후 1시 54분. 두 사람은 독수리호의 로켓엔진을 7분18초 동안 작동시켜 달궤도에 진입했고 이미 달궤도를 돌고 있던 사령선 컬럼비아와 도킹에 성공했다.

콜린스의 환영을 받은 두 사람은 다시 사령선으로 옮겨 탔다. 이제 지구로 돌아가는 비행만 남았다. 독수리호는 대기권 진입 16분전에 떼어버려야 했다. 재돌입할 수 있는 구멍은 지구상공 120km에서 지름64km이내다.

마침내 지름 25m의 낙하산 세 개를 펼치고 초속 9m의 속도로 태평양에 내려앉았다. 지구를 출발한 지 195시간 18분 21초만이었다. 7월24일 오후 4시50분(UTC)이었다. 이로써 존 F. 케네디가 1961년 5월 25일 상하 양원 합동연설에서 언급한 “...나는 미국이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다가 다시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 것 만큼 인류에게 흥미롭고 인상적인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떤 값비싼 대가라도 치를 것이며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것입니다”라는 말이 마침내 이뤄졌다.

미국의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키는데는 약 2만개의 회사와 40만명의 인원이 동원됐고 230억달러(현재 2300억달러 이상)가 들었다.

말그대로 전인미답의 달에 처음 도달한 것은 과학소설(SF)에서만 보던 우주식민지나 우주기지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우주SF의 대가인 아서 클라크는 아폴로11호 발사 10년 후 “달은 행성간 비행의 보급기지로서는 더없이 유리하다. 물론 우주선을 만들기 위한 전적당한 재료가 달에 있어야 한다. 달세계에서 과학기술과 산업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그는 그 이유중 하나로 “달 표면에서 날아오르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지구에서 시속4만km가 필요한 탈출속도가 20분 1 이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달 식민지에는 마치 남극에서처럼 장차 수백명의 과학자들이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서 클라크의 말대로 우주선의 연료보급이 달 비축기지에서마 이뤄질 수만 있다면 달과 지구간 비행코스트는 대폭 절감된다.

암스트롱은 달표면에서 월석 31kg을 채취해 왔다. 아폴로 11호의 비행사인 암스트롱,올드린,콜린스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름붙인 ‘아르맬코라이트(Armalcolite)’는 지구 광석보다 엄청난 양의 티타튬과 크롬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2009년 달 궤도선은 달 북쪽에 6억톤에 이르는 물 얼음덩어리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클라크는 마치 일본 SF만화 '은하철도999'에 등장하는 모습같은 개념도 꺼냈다.

“인간을 태운 우주선을 충분한 가속으로 달에서 발사하기 위해서는 이 발사레일은 적어도 30km의 길이가 필요하다. 어렵긴 하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로켓연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지구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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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항공우주국(NASA 나사)는 이와같은 달 발진기지를 루나트론(Lunartron)이라 명명하고 이미 수십년전 이론적 조작 가능성을 자세히 연구한 바 있다.

한편 2010년 들어 일본은 “향후 5년내 달에 로봇우주기지 건설을 하겠다”고 밝히는 등 우주개척에 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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